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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ying Differently: Richie Hawtin과 그의 DJ 슈퍼군단
Amsterdam Dance Event에서 한 자리에 모인 그들
글: Dave Jenkins 사진: Stephanie Pistel 헤어/메이크업: Anita Jolles | 2016-12-23
일렉트로닉뮤직계에서 아마도 기술적으로 가장 혁신적인 아티스트인 Richie Hawtin은 거의 20년간 DJ 기술의 발전에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이제 그가 DJ 슈퍼군단을 소집해 자신의 새로운 믹서, MODEL 1을 소개한다.

Richie는 기술의 추구를 하나의 예술형태로 바꿨다. Hawtin의 방식을 이렇게나 간단명료하고 인상적으로 표현한 게 우리였다면 정말 좋았겠지만 우리가 한 말이 아니다. Richie의 듬직한 친구들 중 한 사람, ENTER.의 레지던트이자 MODEL 1의 홍보대사인 Hito가 한 말이다.

“걘 너무 착해.” Richie가 웃음을 터뜨린다. “인간과 기계 사이에서 발생하는 거, 기계가 다양한 사람들을 위해 다양하게 작동하는 무한한 방법들이 진짜 예술형태지. 우리가 기계들을 조작하는 다양한 방법을 끊임없이 찾아내는 게, 우리와 기계의 관계가 우리에게 어떤 영감을 주는지가 예술이야.”

관계성: 그가 올해 초에 출시한 믹서 MODEL 1의 중심 테마다. 그는 비슷한 정신을 가진 정예멤버들을 소집해 MODEL 1을 속속들이 시험하고 세상에 공개했다. 그 배후에 있는 철학은 DJ들로 하여금 자신의 기술과 기계, 관중과의 관계를 평가해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좀 더 개인적인 관계들도 있다. Richie의 아버지와 MODEL 1의 엔지니어이자 클럽 스탠다드 Xone 믹서를 만든 전 Allen & Heath 발명가 Andy Rigby-Jones처럼 말이다. 그들은 16년 전에 처음으로 마주쳤는데 바로 거기서부터 MODEL 1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1999년으로 돌아가보자: Richie에게는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당시엔 그의 셋업이라고는 턴테이블 두 대, 믹서 한 대, 909 한 대, Ensonique DP/4 이펙트 박스뿐이었다. 그러다 세 가지 사건이 발생했다. Richie와 John Acquaviva가 네덜란드 기술회사 N2IT와 함께 Final Scratch를 출시했고, 프로덕션/퍼포먼스 플랫폼인 Ableton이 출시되었으며, Richie가 가장 좋아하는 스튜디오 믹서 제조사 Allen & Heath가 Xone:62로 DJ 부문에 입문했다. Richie는 어찌나 신이 났던지 그걸 시사회에서 봐야겠다며 프랑크푸르트로 향했는데 거기서 Rigby-Jones와의 첫만남을 가진 것이다.




이 행사들을 통해 새로운 디지털 시대를 맞이하는 Richie의 방식이 바뀌게 된다. 2005/6년의 ‘디지털 혁명’이 있기 수 년 전, Richie는 한 대학교에 초청강사로 가서 컴퓨터기반 라이브뮤직 퍼포먼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미래를 예견한 바 있다. 학생들은 그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지만 업계는 딱히 그러지 않았다.

Richie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한다. “사람들은 우리가 악마인 줄 알았어! Final Scratch가 바이닐 업계에 부정적인 파문을 일으켰지. 그건 알아둬야 해. 하지만 디지털 디제잉의 시작이 일렉트로닉 뮤직의 디지털 유통을 도운 것도 사실이거든. 내가 볼 땐 그렇게 되면서부터 오늘날 일렉트로닉뮤직이 이렇게 붐을 일으킬 수 있었던 거 거든. DJ 10명만이 가지고 있었던 비밀스러운 음반을 넘어설 필요가 있었어. 음악을 사람들에게 좀 더 가까이 가져다 줘야 한다고 생각했지.”

이 시기에 공연 전문이었던 Richie는 Ableton으로 루프를 돌리는 그의 셋들의 첫 번째 버전에 근접하고 있었다. 그런 방식이 일반적으로 쓰이게 되기까지 5년이나 앞서있었다. Ableton은 Richie가 새롭게 사고하도록 영향을 미쳤는데 그것은 루프 충만한 2002년작 ‘DE9 – Closer To The Edit’ 앨범에 가장 잘 묻어났다. 하지만 뭔가가 부족했다.

“믹서가 내 손끝에 좀 더 혼연일체 될 필요가 있었어. 그래서 아빠랑 같이 Xone:62를 분해하고 오디오 채널 하나를 미디 채널로 바꿨어. 그렇게 최초의 오디오/MIDI 하이브리드 믹서가 탄생했지.”

Rigby-Jones와 Allen & Heath가 Hawtin 부자의 시도를 환영하며 도식을 보내왔다. 그들 역시 미래의 역량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때는 2001년이었다. 디지털 DJ 퍼포먼스는 현실이었고, Richie와 Andy는 앞으로 함께 걸어갈 길이 창창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 머릿속에 있는 걸 끄집어내야 할 때가 있다면 가장 먼저 찾아보게 되는 게 기술이야. 만약 그게 아직 없는 기술이라면, 그리고 딱 맞는 사람들이 나를 도와준다면 뭔가를 수정해서 그걸 해내겠지. 그게 바로 이 업계 전체의 근간에 있는 DIY 정신이고 나한테는 테크노의 심장이자 영혼이야. 바로 미래라는 거지.”

Allen & Heath가 Xone:92를 출시했고, Richie와 그의 아버지가 그걸 커스터마이징했다. Final Scratch와 Traktor가 합병해서 Traktor Scratch가 탄생했고, Richie는 그걸 발전시키고 대중화하는 것을 도왔다. 2005년도 앨범 ‘DE9: Transitions’에서는 수백 개의 트랙을 쪼갰다가 새롭게 재구축함으로써 Ableton을 DJ 담론의 수준까지 밀고 나갔다.

발전에 발전을 거듭할수록 플레잉과 퍼포먼스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2009 Livid Instruments 컨트롤러 CNTRL:R은 랩톱을 보지 않고도 조작할 수 있어서 믹서와 컴퓨터간에 더 많은 대화가 이뤄지게 했다. 그 동안, 2010년에는 Griid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공연에 iPad를 사용하는 초창기 사례를 만들어냈다.

Plastikman Live를 개발할 때였어. 그걸 위해 음향, FX, 조명 등 모든 걸 제어하고 있었는데 컨트롤러 한 대로 그 모든 걸 다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지. 그래서 iPad를 추가하고 싶었어.”

기술을 좀 더 잘 제어하고 통합하고자 하는 열망은 나날이 커져갔고, 그의 ENTER. 컨셉트를 키워가던 중 마침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지나고 나서 보니, 이벤트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 앱(Smudge)을 제공하는 라이브 체험은 Hawtin이 유일하게 재고해볼 시도였다.

“최고의 밤, 최고의 경험은 마치 최면 같아. 그 주파수에 눈이 저절로 감기면서 어디론가 또 다른 현실로 실려가는 느낌이 들지. 그러니까 사람들도 기꺼이 자기들 폰 꺼내서 치워놓는 거지. 그 상호작용은 너무 좋았는데 그게 체험의 포커스를 바꿔버린 것은 생각해볼 여지가 있는 것 같아.”

이제 Hawtin의 주된 임무는 번지르르한 것들을 벗겨내고 그 또 다른 현실을 강화하는 도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우리는 기술 면에서 해답을 찾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알아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은 게 뭔지 판단해야 하는 시점에 있다. Cue: MODEL 1. 온갖 부가기능을 다 추가하기보다는 DJ가 Rigby-Jones의 가장 상세하고 퀄리티 있는 최신 오디오 스펙, 독특한 주파수를 만들어내는 EQ와 필터들을 통해 사용하고 싶어 하는 모든 툴을 작동시키기 위한 6채널을 제공하는 믹서다.

“똑같은 기능을 하는 진부한 믹서들이 범람하면서 여러 DJ들과 아티스트들의 스타일이 굉장히 비슷해질 수 밖에 없는 이 상황을 볼 때, 우리 너무 위태로운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아. 여러 가지 이펙트 기능이 내장된 믹서도 좋지만, 도구가 유연해지고 모듈식일수록 우리가 창출해낼 수 있는 기회도 많아지거든. 이걸 쓰는 아티스트들이 지금껏 겪어온 그 모든 엄청난 시간들, 디제잉에 대해 배워온 모든 것들, 가장 좋아하는 음반들을 생각해보고, 이렇게 물었으면 좋겠어. ‘이걸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플레이해볼 수 있을까?’ 내가 볼 땐 그게 탁월한 DJ 고수의 기본정신이거든.”

진정한 예술이 기술과 융합하는 방법에 있는 것이라면 MODEL 1은 Richie가 지금까지 만들어온 것 중 가장 큰 백도화지다. 재미있는 것은 그게 Richie와 그의 홍보대사들의 스타일 변화에 영향을 미친 방식이다. 툴과 레이어, 복잡성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테크닉을 다 덜어냈다. Liebing은 좀 더 트리피한 조합을 하기 시작했다고 말하고, Dubfire는 다시 관중과 교감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Richie가 말한다. “덕분에 우리 중 몇몇은 플레이 속도를 늦추게 됐어. 두 가지 정도만 레이어를 씌우고 그냥 믹서를 써서 조작하는데 시간을 들이게 되었지. 내가 하고 싶었던 게 그거야. 믹서가 메인 장비가 될 수 있도록 재조명을 하는 거. 믹서가 가장 중심에 있을 수 있도록. 나에게 영감을 준 선구자들이 그랬듯, 또 우리가 미래를 향해 나아갈수록 새로운 세대에게 영감을 줄 선구자들이 그러듯 말이야.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테크노의 심장과 영혼이 바로 거기에 있는 거니까.”

미래는 Richie의 심장과 영혼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PLAYdifferently의 미래와 마찬가지로 그는 이게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지금 당장 그에게 중요한 것은 이미 혼란스러운 시장을 더 시끄럽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만 다른 무언가가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찾아 그 자리를 채워줄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뿐이다. “가끔은 해결책을 찾아내고 싶을 때가 있잖아. 또 가능성을 만들어내고 싶을 때가 있고. 하지만 우리가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DJ와 관중 사이에 존재하는 놀라운 동시성이야. 좋은 DJ라면 공연하는 밴드 마냥 다들 잘 아는 베스트 송 10곡만 플레이하지 않아. 우리는 관중을 관찰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과 함께 움직여. 다 함께 떠나는 여행인 거야.”




프로덕션에 대한 인지도 없이 지난 10년을 견뎌온 DJ는 극소수다. 바이닐만으로 살아남은 경우는 그보다도 더 드물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Hito의 독특한 입지를 보장하는 요소다. 세 번째는 그녀의 철학적인 관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녀가 말한다. “다들 이걸 왜 하는 거냐고 물어. 나도 스스로에게 질문해보고.” 그녀가 잠시 생각한다. “Traktor와 USB를 써봤는데 Hito스럽지가 않아. 내가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 때문인 것 같아. 가장 자연스럽게 느껴지거든. 내가 뭘 하든 그게 연장되는 거야.”

Hito가 바이닐을 선택한 게 아니다. 바이닐이 그녀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바이닐의 매력에 푹 빠져 살았다. 바이닐만 쓴다는 것은 곧 최고의 트랙들을 파헤쳐 점과 점 사이를 연결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인 만큼, 그녀의 셀렉션은 더욱 창의적이다. 그녀는 디지털로 조작할 수 없는 음반 믹싱이 주는 물리적인 도전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 스릴과 리스크가 너무 좋아.” 일본에서 태어나 베를린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녀의 말이다. “바이닐에는 끝이 있잖아. 기계를 사용하지 않는 한은 루프가 없단 말이지. 음반의 규칙대로 믹싱을 해야 되고. 한 트랙에서 다른 트랙으로 넘어가는 그 스릴 넘치는 순간들을 뒤쫓아 가는데, 일진이 안 좋다 싶으면 비트매칭을 엉망으로 하기도 해. 그런가 하면 믹싱이 너무 잘 나오는 완벽한 날도 있고. 날씨가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는 것처럼 말이야.”

그녀의 창의적인 철학을 뒷받침해주는 것이 세심한 기술적 소질이다. 그녀는 덱 기계학과 잊혀진 지 오래인 턴테이블 TLC 기술을 공부하기 위해 도쿄를 향하기도 했다. “투어매니저랑 같이 일본에 가서 내 DJ 사부인 Ko Kimura와 함께 공부했어.” 그녀의 또 다른 독특함이 묻어나는 말이다. DJ 기술에 있어 스승의 역할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Ko는 도쿄의 Frankie Knuckles나 David Morales라고 할 수 있어. 정비 쪽에도 일가견이 있어. 차도 고치고, 스피커, 헤드폰, 물론 턴테이블도 고칠 수 있어. 그에게서 정말 많이 배웠어. 다양한 시나리오를 어떻게 짜는지, 진동을 어떻게 피하는지, 케이블류가 부실하다거나, 니들이 안 좋다거나, 니들 높이 설정하는 거. 이게 되게 중요하거든. 무게가 얼마나 나갈지 아는 것은 다양한 환경에서 교정해야 하는 거고. 세세한 기술적 사실들이지.”

그녀의 균형 잡힌 철학과 기술성, 신중함, 세심함은 Richie Hawtin의 ENTER. 컨셉트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것이었다. 비록 두 사람이 2008년에 베를린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 둘을 이어주는 게 음악이나 기술일 거라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지만.

그녀가 기억을 더듬는다. “우린 원래 사케를 공부하고 있었어. 사케로 이어진 인연이었지. 음악이 아니라. 각자 하는 음악도 굉장히 달랐어. 그러다가 2012년에 ENTER.Sake가 시작하면서 그가 나를 불렀던 건데, 그때 꽤나 놀랐나 봐. 좋은 의미로. 그 이후로도 계속 나를 초대했거든.”

Hito의 겸손함은 자아의 홍수 속에서 단연 돋보인다. MODEL 1 홍보대사라는 역할도 그와 마찬가지로 독특하다. 그녀는 그들만의 독특한 연합에 광범위한 기술을 포용하는 DJ 정예부대의 일원으로서 PLAYdifferently의 컨셉트를 색다른 방식으로 플레이한다.

Hito가 말한다. “믹서는 악기야. 믹서를 사용한다는 건 연주를 하는 거지. 악기가 좋으면 좋을수록 소리를 더 멀리 밀어붙일 수 있어. MODEL 1로는 주파수를 좀 더 세세하게 조작할 수 있어. 단순히 고-중-저가 아니라 좀 더 정교한 소리를 낼 수 있는 거야. 믹스 안에서 그 주파수를 느낄 수 있지. 덕분에 내가 소리를 느끼고 보는 방식이 완전히 바뀌었어.”

Hito는 PLAYdifferently HQ에서 MODEL 1로 처음으로 공연할 때 이 변화를 느꼈다. 딱 두 시간 동안의 연습(혹은 그녀의 말을 빌자면 ‘공부’)하고 나서였다. 그 다음엔 가장 유명하고 인정받는 테크노 베뉴인 프랑크푸르트의 Robert Johnson에서 MODEL 1으로 디제잉했다.

“모든 사람한테 다 보였어. 그때 생각만 하면 아직도 무시무시하다니까! 하지만 가장 무서웠던 날은 그 믹서를 런칭했던 라이브스트림 공연이었어. 온 세계가 지켜보고 있었지. 이제야 웃으면서 말하지만. 그렇게 무서웠던 경험은 난생 처음이었다고. 하긴 DJ라면 누구나 마주해야 할 리스크긴 하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자신의 한계를 넓히는 것 말이야.”




과학과 기술: Ali Dubfire는 과학과 기술에서 너무나 강한 영감을 받은 나머지 자신의 레이블 이름에도 집어넣었다. 그는 25년 전 처음으로 턴테이블 앞에 선 이래 셀렉션부터 공연장비까지 여전히 정통적인 접근방식을 유지해오고 있다. Dubfire에게 있어 디제잉의 핵심은 자기만의 사운드를 찾는 것이다.

“뭘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가지고 있는 걸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지.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게 뭔지를 찾는 거야. 예를 들어 Dice의 셋을 들어보면 Dice라는 걸 딱 알 수 있잖아. 그가 FX를 쓰는 방식, 믹싱을 하는 방식, 선곡까지도, 딱 Dice니까. 모든 아티스트가 궁극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게 바로 그런 거 거든. 사람들이 듣자마자 바로 알아채는 사운드를 갖는 것 말이야.”

하지만 Ali 자신도 이것이 그 어느 때보다도 쉬우면서도 또 어렵다는 모순을 이해하고 있다. 그는 수많은 해답을 가져다 주는 기술을 사랑한다. “USB 한 쌍 가지고 클럽에 불쑥 등장하는 것보다는 좀 더 창의성을 발휘하면서 관중을 존중할 수 있지.” 하지만 소매(retail)와 세트의 균질화가 곧 유니크한 사운드를 확립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는 뜻이라는 것 역시 알고 있다.

“다운로드 차트의 인기와 더불어, DJ가 되는 걸 너무도 쉽게 만들어준 몇몇 제조사들 덕분에 기술에서 개성이 사라질 위험이 있어. 바로 그것 때문에 우리 중 일부가 그 모든 장비를 다 이고 다니는 거야. 독창성과 개성을 되살리기 위해서. 편안한 마음으로 실험을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기술과 연계하는 것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거든. 그 느낌이 궁극적으로 관중들에게까지 전해져서 그들도 화답하고, 호응할 수 있는 거야.”

이 쌍방의 소통은 Dubfire의 초기 때부터 그의 자극제가 되어 주었다. 덥플레이트를 자를 여유가 없어서 자기만의 트랙을 플레이하기 위해 휴대용 DAT 플레이어를 갖고 다니던 때였다. 요즘 그는 Traktor, Xone K1 컨트롤러 두 대, Ableton Push, 그리고 이제 MODEL 1을 사용한다. 부가적인 채널 덕분에 관중과 더 깊이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모든 걸 K1 두 대랑 MODEL 1로 컨트롤해. 그런 점에서 전통적인 덱 두 대랑 믹서 셋업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 더 이상 구부정하게 기계를 조작할 필요가 없어. 믹서를 쓰니까 관중과 마주볼 수 있어서 훨씬 잘 통하는 느낌이야.”

새로운 튠을 듣자마자 그 주말에 그걸 가지고 홈런을 치리란 걸 아는 것. 장르와 시대와 활동무대를 불문하고 DJ들을 하나되게 하는 건 바로 그 짜릿함이다.




“절대 못 잊을 거야.” 지인들 사이에서는 Gavin Lynch로 통하는 Matador가 슬그머니 웃는다. “주중에 음반을 사서는 주말까지 기다렸다가 플레이를 하는 기분이란. 말로 표현 못하지. 이제 그 흥분 때문에 아예 새로운 튠을 써야 한다구!”

Gavin이 의미 있고 심오한 테크노를 100% 라이브로 공연한지는 몇 년 됐다. 하지만 2000년대 초에 바이닐에 빠져있었을 때만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복잡한 셋업에는 눈길도 안 줬다.

“대부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턴테이블로 시작해서 음반 컬렉션을 쌓았어. 하지만 그러다가 대부분의 경우처럼 나도 나만의 음반을 만들고 싶어졌지. 그래서 다시 대학에 들어가서 엔지니어링과 음악기술을 공부했어. 6~7년 정도 빡세게 보내고 본격적으로 내 사운드를 연구하다가 Rich를 만났어.”

여기서부터 일이 재미있어진다. 이 시점에 Gavin은 여전히 Tracktor와 디지털 컨트롤러로 믹싱을 하는 철저한 DJ였다. Minus man과의 만남은 Matador의 인생을 바꿔버린 기회를 제공했는데, Richie는 라이브공연을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블린 출신의 그가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때와 장소가 딱 들어맞았던 것 같아. ‘Minus 투어를 위한 라이브 공연’이 필요하다는데 내가 완전 하고 싶었지.”

Gavin에게 있어 ‘발전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의 셋업 역시 끊임없는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늘 당연한 거였지. 턴테이블이나 드럼머신 같은 게 있으면 꼭 업어왔으니까. 내 세팅은 늘 발전하고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이 진화는 라이브 셋업이 스튜디오 작업에 영향을 미치는 그의 사운드에도 담겨있다. 이번 해 봄에 발매된 그의 1집 앨범 ‘Ructions’는 절제되고 희소하면서 방대한 소리의 밀도를 선보인다. Minus와 계약하기 전에 Cocoon과 Trapez, Perc 등의 레이블에서 10년 이상 활동한 경력을 가지고 있고, 최근에는 라이브 공연들을 전개하고 있는 그의 내공이 묻어나는 앨범이다.

“라이브 플레잉은 작업실에서 하는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는 날카로운 학습곡선이야. 단순히 뭔가를 라이브로 공연하는 것보다 훨씬 원초적이야. 나는 라이브로 플레이할 때 909랑 드럼 몇 대를 추가해. 그럼 트랙에 뭐가 필요하고 뭐가 빠져 있는지 알아내는데 도움이 되거든. 끊임없이 살아서 움직이는 거야.”

사실 Gavin이 보든 공연과 제작은 너무도 긴밀히 연계되어 있어서 그가 MODEL 1을 쓰는 방법은 다른 홍보대사들과는 살짝 다르다. 그의 MODEL 1은 총괄 믹서, 실질적으로 스튜디오 믹싱 데스크다. MODEL 1이 16개의 트랙을 여섯 개의 채널로 요약하면서 그가 트랙들을 라이브로 쪼개는 방식이 완전히 바뀐다.

디제잉 기술 역시 그와 비슷한 실천적인 방식으로 그의 작품활동에 영향을 미쳤다. 그는 더 이상 Korg Kaoss를 갖고 다니지 않지만 이 2000년대 초반을 주름잡은 이름없는 DJ 테크 영웅은 여전히 스튜디오 작업에 한 몫 하는 영광을 누리고 있다.

그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한다. “나한테는 이름있는 영웅이야. 아직 작업실에 Kaoss Pad를 가지고 있어. 즐거운 사고를 터뜨리기 딱이야. 거기다가 리드 선을 끼워보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데. FX 페달도 마찬가지야. 나는 실험하는 걸 좋아해. 가끔 예상치 못한 사운드가 나오기도 하거든.”

다음 공연이 이틀 남은 상황에서 그런 게 있는 작업실에 새로운 리믹스와 그를 내버려뒀으니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을지는 불 보듯 빤하다.

“요 며칠 동안은 아침 7시에도 작업실에 있었어. 주말에 쓰려면 제 시간에 완성해야 할 텐데!”




어떤 DJ들은 트랙 두 개를 믹싱하는 게 전부다. 어떤 DJ들은 서너 개를 믹싱한다. Chris Liebing의 믹싱은 끝없이 겹쳐지는 루프의 향연이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카펫을 짜는 거다.

“소리의 카펫이지.” 독일의 혁신자인 그가 씩 웃는다. “뭐가 끝이고 뭐가 시작인지 안 들릴 정도로 말이야. 원하는 만큼 루프를 지속시킬 수 있는 것, 제대로 리듬을 타면서 레이어를 넣고, 넣고, 또 넣는 것. 나한테 중요한 건 그게 다야.”

현재 Traktor 덱 여섯 대와 Maschine Jam, Ableton Push, Cycloops 루퍼의 위용을 자랑하는 Liebing의 테크 라이더는 그가 학교 디스코텍에서 사용했던 테이프 덱 두 대에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을 이룬 것이다. 그리고 그 발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정말 살아있기 좋은 시대야. 그 어느 때보다도 창작의 욕구가 만족되는 느낌이야.” 하지만 모든 것이 완벽한 건 아니다. “나한테는 모든 게 너무 기계적이고 로보틱해서 인간적인 감성이 빠져있어. 그게 관중에게 전달되면… 부유나 흐름, 영혼의 여지가 없지. Native Instruments에게 트랙들이 약간 뜰 수 있게 하는 기능을 더할 순 없겠냐고 제안했어. 턴테이블처럼 말이야. 다시 밀고 당기기를 조금씩 하면 좋을 것 같아서.”

그 동안, MODEL 1은 그에게 밀고 당기기를 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주고 있다. 믹서의 역량은 밀고, 관중은 더 가까이 당기는 것이다.

그가 웃으면서 말한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나는 실제로 다르게 플레이(play differently)하고 있어. 필터 느낌이 뭔가를 더하는 느낌이야. 사실은 뭔가를 빼버리는 건데도 말이야. 화성학 덕분에 셋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어. 좀 더 미묘하고 길게 해서 훨씬 트리피하게 가지. 이제는 변화를 줄 수 있는 선택지도 훨씬 많고, 지금보다도 더 독특하고 심오한 소리의 카펫을 짤 수 있어.”

디제잉의 세계로 향하는 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늘 DJ를 꿈꿔왔고 독특한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인지도를 쌓기 위해 프로듀서가 되었거나, 늘 음악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퍼포먼스도 해야 한 경우다.




그런가 하면 다른 관점에서 다른 길을 통해서 온 사람들도 있다. 바로 그런 부류인 Nicole Moudaber는 Intec과 Drumcode에서 등장한 뒤 그녀만의 색깔이 뚜렷한 그루브 가득한 음반사 MOOD를 설립하기까지 최근 10년간 가장 오래가는 성공스토리로 테크노계를 뒤흔들었다.

카리스마, 단호한 야심, 충성스러운 팬 층까지, 이 모든 것은 프로모터였던 그녀의 과거에 뿌리를 두고 있는 특색이다.

그녀가 레바논과 런던의 느린 말투로 말한다. “DJ가 될 생각은 없었어. 애초에 음악을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은 논외였지. 처음에는 파티에 대한 열정에 너무 끌려서 음악 관련해서 일하게 됐어. 이비자에서 한 빌라를 개조하는 프로모션에 시간을 좀 들이고 난 뒤에 프로듀서로서 음악계에 복귀했어. 나는 아직 프로모터의 시야를 가지고 있어. 그게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네.”

자신의 고향베이루트의 밤문화를 위한 기반을 쌓는 것을 도울 때와 마찬가지로, Nicole의 프로모터적 시야는 런던의 전설 Turnmills에서 매주 열리는 그녀의 Soundworx 파티 곳곳에 묻어난다. 한껏 어둡게 버무린 트라이벌 테크노로 메인 룸의 트랜스를 보완하며 쌓은 기술과 이해는 아직도 여전히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무엇보다 Nicole을 비롯해 신중하게 선정한 소수의 게스트들로 구성된 라인업으로 세계 최고의 언더그라운드 클럽에 자리하는 브랜드 나잇인 In The Mood 시리즈는 그녀의 실력이 단연 돋보이는 파티다.

“우리가 DJ로서 집중해야 할 부분은 단순히 개별적으로 플레이하는 작은 역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파티 전체여야 해. 난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어. 너무나 중요한 거니까. 사람들도 그런 특별한 순간들을 원하니까 파티에 가는 거잖아. 오랫동안 뇌리에 남는 순간들 말이야.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고, 마음을 열고. 음악 덕분에 정말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거 아니겠어?”

DJ들이 올바른 기술을 만나면 관중에게나 아티스트 본인에게나 완전히 새로운 영역으로 음악과 그 모든 경험을 옮겨다 놓을 수 있다. MODEL 1은 Nicole의 공연방식을 통해 패러다임의 변화를 만들어냈고, 그녀의 수준을 DJ에서 Traktor, Ableton, Ableton Push와 세 가지 컨트롤러(NI X1 두 대와 Xone K2 한 대)로 구성된 무기고를 가진 하이브리드 DJ로 끌어올렸다. 덕분에 파티를 장악할 수 있는 잠재력 역시 높아졌다.

“사운드카드까지, 모조리 싹 다 바꿨어. 지난 주 내내 장비들 세팅을 재설정하면서 보냈어. 내 삶의 경로도 재설정했고. 내 머릿속 칩들까지 포함해서.” 그녀가 웃는다.
“늘 결국에는 라이브 쪽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해왔었지만 지금까지는 빡빡한 일정 때문에 그게 불가능했었거든. 숙제도 많고, 작업실에서 준비해야 할 것도 많고, 연습도 엄청 많이 해야 하니까. 그 많은 레이어 작업과 라이브 요소를 그때그때 해내려면, 그것도 잘 해내려면 기술을 제대로 꿰고 있어야 해.”

바로 그래서 Nicole이 준 컬트 수준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일정이 아무리 바쁘든, 기술적으로 아무리 깊게 파고 들어가든, 그녀는 늘 음악에 대한 현실감과 열정을 유지한다. 대부분의 DJ들은 두 가지 경로를 통해 게임에 뛰어들지 몰라도 Nicole이 걸어온 길은 파티 정신이며, 바로 그 길을 통해 우리 모두가 지금 여기에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올드스쿨 정신과 뉴스쿨 사고방식. Loco Dice의 뿌리 깊은 힙합 정신은 그의 미래지향적인 스타일에서 한 번도 멀리 벗어나본 적이 없다.

그가 씩 웃는다. “난 늘 힙합을 할 거야. 그 지저분하고 거친 스타일이 너무 좋아. 늘 하나만 가지고 믹싱하진 않아. 종종 두 개나, 심지어 세 개를 가지고 믹싱을 해. 난 곡이 어떻게 쓰였는지 보다도 그런 걸 통해서 그루브를 느껴. 그래서 내 DJ 셋업을 업그레이드하고 싶을 때면 무엇을 추가하든 내 스타일이 없어지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해. 내 그루브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거면 딱 좋은 거고, 아니면 패스하는 거지.”

Dice의 그루브를 최적화하는 장비는 Traktor 덱 네 대(턴테이블에), Cycloops 한 대와 Boss 디지털 딜레이 유닛이다. 옛 것과 새것의 조합이 패기 넘치는 Dice에게 딱 어울린다. MODEL 1 역시 그와 비슷하게 그의 정신을 반영한다.

“올드스쿨이 되살아난 느낌이야. 손으로 직접 뭔가 하는 거 있잖아. 손잡이부터가 엄청 크지. 진동수로 플레이해서 자기만의 사운드를 만들어낼 수 있던 시절에 Carl Cox 같은 위인들이 우리한테 영감을 준 전설적인 Rane과 Bozac 믹서들의 풍부한 필터도 그렇고. 센 걸 원하면 여분의 드라이브를 추가하면 되고, 부드러운 걸 원하면 커다란 스우핑 필터를 쓰면 되고. 옵션이 아주 다양해!”

뒤셀도르프에 거점을 둔 그는 also believes MODEL 1의 더블 큐잉 기능이 다중 DJ 세션을 위한 창의성을 자극할 뿐 아니라 무수한 옵션이 딸린 기술의 유일한 단점인 어설픈 DJ 교대를 방지한다고 말한다.

“요즘엔 다들 뭔가 진지한 걸 한단 말이지. 두 명의 DJ가 다 믹서에 링크할 수 있고 공연을 하고 있는 DJ한테 영향을 안 주면서 자기 음악을 체크할 수 있는 셋업이 있다면 그게 판도를 바꿀 수 있거든. 무대전환이 워낙 재앙이어야지. 내 다음에 하는 사람이 자기 셋업을 가지고 왔다가 정신이 없어지기 시작하고 관객이 그 소동을 봤다 하면 그게 얼마나 프로답지 못한지 다 드러나는 거야.”

한편 Dice는 여전히 능숙한 프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의 무기고에 추가할 것들을 찾고 있는 중이다. 유일한 문제라면 그만의 스타일에 맞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두 곡을 믹싱하는 작업을 위해 DJ용으로, 또 비DJ 용으로 나와있는 옵션이 굉장히 많아. 그냥 컴퓨터에 꽂을 수 있는 플라스틱 컨트롤러 하나 대신 하드웨어와 아날로그적인 것들, 샘플러들을 주는 거야. 아무거나 막 눌러대다간 망하는 거야. 무대 위에서 라이브를 하고 있는 걸 실제로 사람들이 다 보는 거라고.”




Fabio는 요즘 빠르게 부상 중이다. 라이브 퍼포먼스 셋업만 고수하던 그가 어떻게 지금과 같은 다이나믹한 DJ 하이브리드가 되었을까? 고향 프라토(Prato)의 유서 깊은 테크노 안식처 999의 레지던트였던 그는 거기서 자신만의 독특한 장비 세트와 퍼포먼스 스타일을 구축했다.

공연무대에 서기 전까지 오랫동안 프로듀서였던 Fabio가 말한다. “턴테이블도 해봤는데 나한텐 안 맞더라고. 나는 한꺼번에 트랙 여러 개씩 이어서 플레이하고 싶거든. Ableton 덕분에 내 작품을 모두 플레이할 수 있게 되었지. 하지만 999 레지던트가 되면서 문제가 하나 생겼어. 관객이 대부분 고정이었다는 거야. 매주 똑 같은 라이브셋을 할 수 없었던 거지.”

Fabio는 재빨리 그만의 셋업을 구축했다. Traktor로 시작해서 드럼 레이어를 위한 Maschine Mikro, Traktor 리믹스 덱, Xone K2 컨트롤러 두 대의 구성에 이제 MODEL 1이 합류했다.

“우리는 음악의 즐거움과 감동과 흥미를 유지할 수 있는 고무적인 방법들을 찾아야 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은 사람들이야. 초기 DJ들과 개척자들이 애를 많이 써서 모든 것이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를 만들어줬지. 이젠 훨씬 쉬워. 프로모션도, 연결성도, 우리의 문화도 하나의 예술형태로 받아들여지잖아. 가만히 앉아서 숟가락이나 얹을 순 없지. 다음 세대를 위해 이걸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하는 거야.”

테크노의 신세대가 벌써 차세대를 생각한다고? 미래는 Fabio의 손 안에서 안전하다. Richie의 이비자 파티의 스트리트 팀 PR 자리 오디션을 본지 4년 만에 그 교묘한 DJ 성배를 좇는 테크를 가지고 ENTER.의 핵심인물이 된 거다.

“뭔가를 하고 있을 때 그게 바로 그 순간에만 존재하고 앞으로 다시는 경험하지 못할 거를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어. 갖가지 레이어에, 이 트랙의 고음과 저 트랙의 베이스, 라이브 드럼, FX까지... 완전 깊이 몰입하다가 갑자기 깨닫는 거지. 바로 그것과 완전히 똑 같은 콤비네이션은 앞으로 절대 없을 거라는 걸. 진짜 감격적이지.”




Paco Osuna와 Hawtin의 관계는 Paco가 Richie의 Plus 8에서 몇 가지 펑크풍 그루브를 릴리스한 약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이제 Minus 식구의 대표주자이며 Richie의 더 없는 절친이다. 하지만 Paco가 그 시간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었더라면 지금과는 다른 상황이 전개되었을 것이다.

“난 그때 음반점을 운영하고 있었어. Richie가 Final Scratch를 시작한 날, 난 바이닐의 붕괴를 예상하고 있었고 결국 가게 문을 닫았지”

‘그땐 그랬지’ 시절을 산 사람에게는 도전적인 내용일 수도 있었지만 확실히 Paco는 다르다. 테크노 계에서 23년간이나 명성을 유지해온 그다. 대신 그는 애초에 DJ 기술을 정립한 정신을 유지했다. 바로 함께 가거나, 먼저 가는 거다.

“난 바이닐 마니아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난 DJ지. 지금까지의 내 셋업을 모두 통틀어 지금에 가장 만족해. 이게 DJ 세상을 바꿀 거라는 걸 알면서 싫다고 할 이유가 있겠어? 작업실에서 음악을 만들고 있을 때는 새로운 발전이라면 모두 환영하게 된다고. 공연을 하는 입장에서도 그러지 말란 법은 없잖아? 내가 매주 받는 프로모션이 30GB야. 1,000곡 정도 되지. 그 중에 바이닐은 겨우 100곡 정도고. 그러니 다른 트랙들 중에 진짜 괜찮은 걸 놓치게 될 수도 있단 말이야.”

그의 발견을 중심으로 선정된 그의 셋업은 컨트롤러 세 대와 Traktor, Ableton으로 구성되어 그에게 손맛 나는 라이브 느낌의 셋업을 제공한다. 그는 해묵은 기술이라도 곧바로 버리지 않는다. Dice와 Liebing처럼 Paco도 MODEL 1의 각 채널의 음향적 일관성과 독립성 덕분에 자신의 오래된 Cycloops를 다시 꺼내 그 위에 쌓인 먼지를 털어냈다. 2000년대 초에 나온 깔끔한 포켓사이즈 루퍼 Cycloops로 플레이되는 트랙의 이전 바의 루프를 빠르게 만들어낼 수 있다. 멋지고 창의적인 장비로, 이제 300달러 이상에 중고거래된다.

“난 두 개 가지고 있어. 금덩이 같은 애들이지. DJ 역사에 길이 남을 장비라고 생각해. 오리지널 909처럼 말이야.” 바르셀로나의 전설 Club4와 Mindshake 레이블의 배후에 있는 그가 말한다. 하지만 클래식 장비들에 특별한 애착을 가지고 있는 그를 정말로 매혹시키는 것은 미래다. “미래엔 DJ 기술이 어떻게 될까? 대형 음악회사라면 하나도 빠짐없이 이 질문을 자문해봐야 한다고! 누가 알아?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은 기술이 우리 삶을 더 낫게 만들고, 창의성을 향상시킨다는 거지. 난 그걸 따라갈 거야.”

Paco Osuna와 Hawtin의 협력관계는 이제 10년을 찍었을지 몰라도 비슷한 영혼을 지닌 그들은 테크노가 최초로 탄생한 순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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