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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tia: 새로운 별이 떠오르다
복잡함과 대담함과 혁신… 그리고 애증의 디제잉과 성공
글: Joe Roberts 사진: Kevin Lake | 2017-03-24
여기는 스위스 알프스의 Caprices Festival 2016 현장, 4월의 어느 화창한 오후다. Nastia가 텐트 속 무대에 오른다. 그녀의 티셔츠에 적힌 ‘Are You Gluten Free?’라는 문구가 대세인 다이어트 트렌드를 비웃는 듯하다. 그녀가 올해 하게 될 131개의 다른 공연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 하루이지만 다만 매니저 Miguel이 바로 전 날 소개된 새로운 스트리밍 기능 Facebook 라이브를 시도하는 중이다. 그리고 29살의 우크라이나 DJ가 바이닐과 USB를 오가며 퍼커시브 테크하우스와 나긋나긋한 테크노, 브레이크비트를 아우르는 셋을 시작한다. Miguel은 영상을 찍는다. 몇 분 지나지 않았는데 그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Nastia를 쿡쿡 찌른다. 조회수와 댓글, 좋아요 수가 수백 개씩 늘더니만 이내 수천 건이 넘었다. Thanks to a trick of light on the CDJ 디스플레이 조명 때문인지 그녀의 셋이 페이크라는 악플도 잔뜩 달린다. The Martinez Brothers에게 바톤 터치를 하는 Nastia는 미소를 잃지 않고 있지만 인터넷상의 증오에 당당하게 맞선다. “그냥 되도 않는 소리라서 진지하게 대꾸할 가치가 없네요.” 단호박 같은 그녀의 대응이다.

2017년으로 되돌아와보면 그 되도 않는 소리의 수준이 엄청나게 뛰어올라있다. 이제 그 영상의 조회수는 2백 3십만 건, 댓글 수는 1만 7천 개에 달하며 Nastia는 댄스뮤직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스타다. 재충전의 시간을 가진 1월을 제외하고 2월 한 달에만 15건의 공연을 했다는 것은 그녀에게 악평 따윈 없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특히 댓글란의 자칭 ‘전문가’들은 한참 틀렸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Mixmag Lab LDN에서 D’n’B을 선보였을 때 그녀의 믹싱과 트랙 셀렉션은 전적으로 완벽했다.

하지만 2016년 동안 소셜미디어가 그녀의 삶을 어떻게 바꿨는지를 보면 Caprices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새로운 사랑이 꽃피우게 돕는 것과 우크라이나 언론에 의해 비난 받는 국내 유명인사가 되는 것, 심지어 러시아와 지속적인 암투를 벌이고 있는 모국을 위한 정치적인 인물이 되는 것에 있어서 Facebook의 영향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고작 소수의 인식을 일깨웠다가 DJ 커리어가 단명될 뻔했다.

Nastia의 고향 키예프 레스토랑으로 손꼽히는 Under Wonder에서 만난 자리,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그녀가 말한다. “내가 말하는 거는 뭐든 써먹어도 돼.” 아티스트 인터뷰에서 쉽게 들을 수 없는 말이다. 바깥은 영하 7도의 추운 날씨인지라 두꺼운 검은색 울 재킷을 입고 나타났지만 식당 안에서 재킷을 벗으니 검은 점퍼와 검은 진에 부츠를 신은 심플한 차림새다. 그녀가 메뉴선정을 도와준다. Nastia는 성공적인 DJ로서의 삶의 불편한 진실을 지속적으로 드러내왔다. Mixmag의 커버를 만드는 동안 그녀는 성공을 일궈낸 지금, 현실을 미화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그녀가 입을 연다. “처음에는 디제잉이 열정 그 자체였어. 반드시 해야만 했지. 지금은 정반대야. 일이고, 이 일로 돈을 충분히 벌고 있지만 예전처럼 즐겁지는 않아.”

공연이 크고 많을수록 성공과 동일시되는 숫자에 미친 업계에서 배부른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Nastia에게 있어 성공은 다른 우선순위들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었다. 디제잉이 아예 재미 없어졌다거나 그녀의 공연에 Richie Hawtin부터 R&S를 세운 Renaat Vandepapeliere에 이르는 팬들의 마음을 빼앗은 대담한 일렉트리시즘이 줄어들었다는 건 아니다. 오스트레일리아 데뷔 투어 때 브리즈번에서 야외공연도 하고 멜버른을 배회하며 건축물을 감상하고 분위기에 한껏 취했던 경험을 얘기하는 그녀에게는 열정이 넘친다. “그들에게는 똑같이 평범한 하루였겠지만 내게는 축하 분위기였어.” Cocoon Ibiza의 매니저 Johannes도 “좀 더요, 훨씬 더.”를 외쳤던 Nastia의 근사했던 작년 여름 데뷔를 기억한다.

Mixmag이 Nastia의 첫 커버는 아니다. 그녀는 2008년에 딸 Uliana를 밴 나체의 모습으로 우크라이나 잡지인 DJ AM의 커버에 등장한 적이 있다. 여전히 Nastia를 당시의 활동명인 ‘DJ Beauty’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녀의 안티팬들이 너무나도 믿고 싶어 하는 사실의 핵심을 찌르는 이름이다. 바로 그녀가 뜬 이유는 5년간 Kazantip에서 레지던트를 했을 정도의 실력이 아니라 외모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Nastia는 2007년에 도네츠크(Donetsk) 대표로 미스 우크라이나에 참가하기도 했다. YouTube로 당시 영상을 본 그녀가 말한다. “완전 딴 사람이네.” 그녀의 태도가 감정적 격렬함과 장난스러운 유머감각 사이를 오간다. “나 1라운드에서 떨어졌었어.” 그녀가 웃음을 터뜨리며 덧붙이지만 사실 그녀는 관객상을 수상했다.

본명 Anastasia Topolskaia를 줄인 새 이름 Nastia로의 리브랜딩은 그녀의 실제 재능의 빛을 바라게 하지도 않을뿐더러 성공적인 DJ의 숨막히는 스케줄 성사를 도왔다. 그녀의 말로는 Caprices 공연 이전부터도 이미 싱글맘으로서 공연을 일주일에 최소 세 개씩 감당해야 하는 것이 어려웠다고 한다. 그 기복은 가식이란 하나도 없는 그녀의 Facebook 피드에서도 일상적으로 볼 수 있다. 2015년 말에 심각한 우울증을 앓은 그녀는 키예프의 자기 집 옆집을 몇 주간 빌려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친구들과도 대화할 힘마저도 없는 상태였다. “내 주변에 내 것들이 없길 바랐어. 그냥 팟캐스트로 일했지.”





학생 시절에 공부했던 러시아 작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책들을 다시 순서대로 읽기로 결심하고, 마지막 저서인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까지 읽고 나자 그녀만의 암굴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덕분에 험난한 해로 기록된 뜻밖의 관심이라는 첫 번째 급류도 잘 헤쳐나올 수 있었다. 그녀가 이제 도무지 답이 없어 보이는 안티 팬들에 대해 입을 열었다. “어쩌면 명예회복을 위해 싸워야 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듣지를 않는 사람들과 싸우는 건 멍청한 짓이잖아. 무슨 짓을 해도 마음에 안 들 걸.”

차를 마시는 타이밍에 Nastia의 약혼자 Serhiy Leshchenko가 도착한다. 3월부터 교제를 시작해서 로마에서 New Year’s Eve 공연을 하기 전에 스페인광장의 계단에서 청혼을 받았다고 한다. 농구선수 만한 키에, 짧고 짙은 수염과 머리카락, 안경을 쓴 그는 36살의 유명한 탐사보도 저널리스트다. 우크라이나의 비리를 폭로했으며 2014년에 하원의원이 되었다. 일생의 일렉트로닉뮤직 팬인 그는(Nastia 덕분에 그의 차를 얻어 탔을 때 Plastikman의 싸인이 그려진 ‘Sheet One’ 앨범을 발견했다) 한 파티에서 Nastia를 만났다. 그 후 Nastia가 브라질 투어를 가고 나서도 그들은 틈만 나면 Facebook 메신저를 주고 받았다고 한다. “5월 30일에 귀국했는데 31일로 넘어가는 자정에 공원에서 만나서 드디어 현실 데이트를 할 수 있었지.”

역시 Facebook을 통해 공개된 두 사람의 관계는 ‘복잡한 연애’로 정의되었다. Sergii는 대통령과 같은 이름의 여당인 Petro Poroshenko Bloc 소속임에도 불구하고 Donald Trump를 판에 박은 듯이 닮은 억만장자 사업가라고 포로셴코 대통령을 비난하는 통에 미디어의 타깃이다. Nastia가 설명한다. “정부 최상층은 그에게 적대적이야. 어떻게든 그에게 불리한 스캔들을 찾아내려고 하고." Nastia도 그 여파를 고스란히 감당하고 있다. 9월, 두 사람이 우크라이나 중심에 있는 아파트를 구입했을 때 미디어는 그가 감당할 수 없는 비용이라며 비리 혐의를 제기했다. Nastia는 자신의 상당한 소득을 공개했고, 그녀 만이 아니라 디제잉을 전반적으로 떨떠름하게 여기던 사람들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국가적 유명인사가 되었다. 각종 신문사와 TV 방송사에서 앞다투어 그녀를 인터뷰했고, 영어를 쓰는 Kiev Post는 그녀를 우크라이나의 ‘20대 리더 30인’ 중 한 사람으로 꼽았다.

그녀의 솔직함은 이슈가 되었다. 그녀가 Facebook에 올리는 모든 것이 미디어에 뿌려졌다. 12월에는 러시아의 비행기 추락사건을 고소해하는 듯한 국내 분위기에 대한 불쾌감을 드러내는 글을 올렸다. Serhiy가 말 없이 옆에 앉아 Nastia의 어깨에 팔을 두르는 동안 그녀가 말했다. ”도저히 못 참겠더라고. 사람이 죽었는데 좋아하면 안 되지. 아무리 전쟁 중인 나라라고 해도 말이야. 똑같이 행동할 거면 뭐 하러 판단을 해? 친구들이랑 저녁을 먹는데 그러더라. 그렇게 말을 할 수 있는 용감한 사람이 거의 없대. 내 친구들도 나와 같은 감정이었지만 걔네는 그런 글을 절대 못 올려. 두렵거든.”

후폭풍도 없지 않았다. 러시아가 크림 반도를 침략한 후, 러시아어를 쓰는 Nastia는 오늘날의 그녀의 정체성을 형성한 언더그라운드 클럽인 Arma17에서의 레지던스를 제외하곤 그곳에서 들어오는 모든 섭외 요청을 거절했다. “거긴 내 가족 같은 곳이니까.”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영감 넘치는 설립자 Natasha Abelle을 칭찬한다. “밤하늘에 밝게 빛나는 별과 같아서 내가 따라갈 수 있는 존재랄까.” 하지만 Serhiy와의 관계를 공개한 이후부터는 그마저도 포기해야 했다. “이제 러시아로 가는 게 더 이상 안전하지가 않아. Serhiy를 건드리기 위해서라면 내 가방에 마약을 몰래 넣어놓고는 나를 체포해서 감옥에 보낼 수도 있거든.” 고향에 계신 아버지와 러시아인 점유지에 사는 두 자매들마저 보러 갈 수 없는 상황이다.

“나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러시아 사람들보다 훨씬 낫다고 믿어 왔었어. 하지만 하는 행동을 보면 다 똑같더라.” 그녀가 말한다. 다만 그녀는 우크라이나의 분노에 공감한다. 러시아의 전략은 ‘200년 전부터’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란다. 끝까지 목소리를 낼 것이지만 지금 당장 자신의 개인 페이지에 올리는 게시물들은 사진에 제한되어 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신문들은 그녀의 공식 아티스트 페이지에는 관심이 없다. “신경 안 써. 다만 이걸 언제까지 계속 할 수 있을진 모르겠어."





우리는 다음날 밤 느지막한 시간에 또 다른 24시간 식당에서 만났다. 가능한 해답을 논하기 위해서다. Nastia는 1년 반 정도 되면 아이를 한 명 더 갖고 휴식을 취하고 싶다고 한다. 그녀는 아이를 적어도 세 명은 갖기 원하는데 셋째는 입양을 하는 게 목표다. “복귀를 하게 될지는 모르겠어. 하더라도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겠지. 스위치를 내려서 들려오는 온갖 것에서부터 귀를 닫을 필요가 있어. 그런 다음에 원점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야. 뭔가 실제적인 걸 하려면 정신이 또렷해야 하니까.”

그녀가 실제적인 게 무엇인지 확신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아마 보는 곳마다 쉽고 공허한 해결책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DJ는 두 시간 동안 플레이를 하는데 들리기로는 이펙트 약간 있는 하나의 트랙 같잖아.” 독특하고 자극적인 사운드로 명성을 날리다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똑 같은 메인 룸용 음악을 위해 그걸 내다 버린 여러 헤드라이너들의 이름을 대더니, 이번에는 타협하지 않고 실험적인 사운드를 추구하는 아티스트로 Helena Hauff와 Margaret Dygas를 꼽는다. 현재 그녀가 끝없이 추구하는 것도 바로 그런 것이다. 그 때문에 팬들이 떨어져 나가기도 하지만. “이상한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프로듀서들이 존경스러워. 예상치도 못한 사운드에 이해하기도 어려운 음악이지만.”

그녀를 Renaat과 가까이 맺어준 것도 바로 이런 새롭고 신선한 음악을 향한 친밀감이다. Nastia는 ADE 패널에서 Renaat을 처음 만난 이래 그로부터 막대한 영향을 받아왔다. “그러니까 그가 James Blake를 발굴하고 Aphex Twin의 작품을 발매했지.” 그녀는 Laurent Garnier의 ‘Electrochoc’ 같은 책을 잔뜩 가지고 자신이 놓친 시기를 어떻게든 채워보려고 한다고 한다. “그는 뒤돌아보는 걸 좋아하지 않아. ‘한 번 경험한 음악은 더 이상 흥미 없어’ 이런 식이야.”





Nastia의 퍼포먼스를 최근 2년간 본 공연들 중 최고로 손꼽는 Renaat 역시 상기된 얼굴로 어떤 사람들은 태생적으로 DJ라고 말한다. “하고 싶은 걸 해.” Nastia가 R&S에 처음 등장할 때 그가 한 말이다. “대단한 셋이었어. 엄청났거든. 그래서 Nastia한테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은 듣지 말라고 했어.” 그녀는 그의 충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녀는 B.Traits가 Radio 1을 위한 팟캐스트 시리즈를 요청했을 때 미니멀한 하프타임 d’n’b와 Mixmag 믹스로는 불규칙한 리듬으로 된 셋을 선보였고, RA가 ‘머릿속에 있는 컨셉에 맞는 음악이 나올 때까지’ 하라고 했을 때는 팟캐스트를 무기한으로 끌기도 했다. 이런 의제설정적인 태도와 더불어 자신의 Propaganda 레이블과 Kiss FM 및 Ibiza Sonica 위클리 쇼를 통해, Nastia는 세계를 정복하는 발판을 쌓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이 모든 것이 얼마나 덧없는지 알고 있다. 그녀가 담담하게 말한다. “커리어는 마치 먼지 같아. 오늘 있던 게 내일이면 사라져.” 그리고는 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이유로 파티에서 자신이 원하지도 않는 음악을 트는 덫에 갇혀 있는 수많은 불행한 DJ들에 대해 설명한다. “심지어 그런 방법으로는 진정한 친구도 얻을 수 없어.” 우크라이나 밖에서 그녀가 진정한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의 수는 한 손에 꼽는다고 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매년 그녀의 생일마다 키예프에서 친구들과 함께 즐기는 Strichka 페스티벌이 그녀의 ‘커리어를 통틀어 한 것 중 가장 좋아하는 프로젝트’다. 더 높은 곳을 향해 가는 상상도 해볼 수 있지만 그녀의 방식대로 한다는 전제 하에서다. 그녀가 디저트를 맛보며 말한다. “지금 내 삶은 복잡해. 원하는 것도 다 가졌고, 필요한 것도 다 가졌어. 더 이상 싸우기 싫고, 더 이상 어떤 것의 뒤를 따라 달려가기도 싫어.”

이 말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Nastia는 자신의 별이 가장 밝게 빛날 때 디제잉에 작별을 고할지도 모른다. 최소한 잠정적으로라도 말이다. 그러니 그녀의 별빛을 즐길 수 있을 때 즐기자. 그런가 하면 그녀의 솔직한 이야기는 업계 전체에 한 가지 교훈을 말해주고 있다. 관계의 붕괴에 대한 이야기부터 Benga와 Ben Pearce를 괴롭힌 정신건강 문제까지, 끝없이 투어를 하는 DJ의 삶에는 고통이 따른다는 것이다. 휴식기를 가진다고 하면 상업적인 면에서는 마치 자살과도 같이 들리겠지만 일회성의 유행과 쉽게 잊혀지는 DJ 툴이라는 쳇바퀴를 벗어나 자신만의 행복관을 이뤄가기로 선택한다면 늘 다른 누군가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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