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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Feel Love: 오늘날 댄스뮤직의 본보기를 창조한 Donna Summer와 Giorgio Moroder
1977년은 디스코계의 기념비가 세워진 해였다
Bill Brewster | 2017-07-26

1977년 4월 26일, 뉴욕의 Studio 54가 문을 열었다. 속살이 비칠 듯 말 듯한 빨간 드레스를 걸친 비앙카 재거(Bianca Jagger)는 나체의 남자가 이끄는 흰 말을 타고 등장했다. 그녀의 사진은 하룻밤 만에 전 세계에 퍼지며 디스코의 가장 상징적인 이미지가 되었고 Studio 54는 화려함과 방종의 대명사가 되었다. 5달 후, 헐리우드에서는 스크린 너머로 디스코를 직접 전달하는 영화가 개봉했다. ≪토요일 밤의 열기(Saturday Night Fever, 1977)≫였다. 존 트라볼타(John Travolta)가 충격적인 슈트를 입고 오로지 춤을 위해서 사는 브루클린(Brooklyn) 청년을 열연했다. 디스코의 투지 넘치는 뿌리와는 상관 없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이제 디스코는 모두를 위한 음악이 되었으니까.


그 두 사건 사이에 있었던 것이 Giorgio Moroder와 Pete Bellotte가 만들고 Donna Summer가 완벽하게 표현한 ‘I Feel Love’였다. 40년 전에 나왔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여전히 미래적인 사운드를 가진 ‘I Feel Love’부터 댄스뮤직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곡을 통해 우리의 일렉트로닉 디스코, 하우스, 테크노, 그 이상으로 이어지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게다가 Patrick Cowley의 과감한 사이키델릭 버전은 역대 최고의 리믹스의 영감을 불어넣었다.





Musicland Studios 패거리에겐 좋은 시절이었다. 뮌헨 보겐하우젠(Bogenhausen) 지구의 Arabella 고층빌딩의 지하 깊은 곳에서 이 범유럽인 집단은 디스코의 판도를 뒤엎는 히트작을 연달아 선보였다. Giorgio Moroder와 Pete Bellotte가 공동프로듀서로 이끌었던 이 팀은 Donna Summer가 부른 히트곡 ‘Love To Love You Baby’로 엄청난 성공을 거머쥐었다. 이 곡은 장르를 넘어 팝 차트에까지 올랐지만 너무 섹시하다는 이유로 Radio 1에서 금지되었다.


Donna Summer는 당시 녹음산업이 전성기를 이루고 있던 뮌헨에서 볼 장 다 본 순회 뮤지션 및 공연아티스트 도당의 일원이었다. 본래 독일의 히피뮤지컬 ≪헤어(Hair)≫의 배역이었던 그녀는 수요 많은 세션가수로 빠르게 자리매김했다. 스튜디오 셋업에서 그녀의 역할은 인기가 좋았다. Moroder는 말한다.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되었어. 그녀의 재능은 놀라웠지. 즉흥연주도 가능했지만 그러면서도 기본이 굉장히 잘 잡혀있었어. 인간적으로도 아주 재미있는 친구였어.” Bellotte의 말에 의하면 Donna와 함께 일하기가 쉬웠던 이유 중 하나는 그녀가 녹음과정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함께 일하는 동안 마찰은 아주 조금도 없었어. 운이 정말 좋았지. 그녀는 제작에는 아무 관심이 없었거든. 보통 오후 네 시에 스튜디오에 와서 몇 시간이고 수다를 떨곤 했지. 그러다가 시계를 보고는 이렇게 말하곤 했어. ‘아, 나 가야겠다!’ 그러곤 녹음실에 들어가 대체로 원테이크로 노래를 부르고 갔어.”





Donna의 5집 앨범 ‘I Remember Yesterday’ 세션은 신속하게 움직였다. Bellotte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게 빠르게 진행됐어. 우리 엔지니어 Jürgen도 빨랐고, 뮤지션들도 빨랐어. 앨범도 빠르게 진전되었어. 조금도 질척이지 않았지. 우리는 일하는 팀이었고, 딴 짓 하지 않고 일만 했어.” 산더미 같은 코카인을 연료 삼아 돌아가던 그들의 미국 및 영국 레이블 Casablanca Records와는 대조적으로 Musicland Studios에서는 방종함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Bellotte와 엔지니어 Jürgen Koppers는 술을 입에도 대지 않았고 Giorgio도 과음은 하지 않았다. 약을 하는 일도 없었다.


‘I Remember Yesterday’는 Bellotte가 Anthony Powell의 소설 ≪A Dance to The Music Of Time≫ (LP의 오리지널 타이틀도 같다)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또 다른 컨셉앨범이다. 앨범의 곡마다 각기 다른 시대의 분위기를 담았다. 40년대의 스윙부터 60년대의 Shirelles과 Supremes, 70년대의 펑크, 당대 디스코를 거쳐 마침내 마지막 트랙 ‘I Feel Love’으로 미래적인 분위기를 일깨운다.


미래적인 사운드를 내기 위해 합성음악을 사용하는 것은 공상과학영화에서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1951년, B급 영화 ≪지구 최후의 날(The Day The World Stood Still)≫에서는 테레민(theremin)이 쓰였고 미국의 일렉트로닉 선구자 Wendy Carlos는 Stanley Kubrick의 디스토피아적 작품인 ≪시계태엽 오렌지(A Clockwork Orange)≫를 신스로 흠뻑 적셨다.


Moog Modular 3P로만 곡을 제작하는 것이 계획이었다. 단 하나의 문제라면 그들에게 그 장비가 없다는 것이었지만 다행히 클래식 작곡가 Eberhard Schoener가 가지고 있었다. Moog는 다루기 어렵기로 악명이 높았기 때문에 그들은 Schoener의 조수이자 엔지니어인 Robby Wedel을 고용해야 했다. Moroder는 이렇게 인정했다. “내가 Moog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더라고 그가 필요했을 거야. 나 혼자서는 그걸로 그 어떤 사운드도 얻어낼 수 없었을 테니.”


네 개의 캐비닛과 끝이 안 보이는 패치베이(patch bays)를 가진 Moog의 모습은 흡사 소형 타디스(Tardis: 《닥터 후》와 그 스핀오프 작품 《토치우드》, 《사라 제인 어드벤처》 등에 등장하는 차원 초월 시공 이동 장치) 같았다. Bellotte는 Wedel이 그 괴물을 통제해내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첫 번째 라인을 녹음했어. 그러자 Robby가 이랬지. ‘자, 다음 트랙을 동기화할 겁니까?’ 우린 그게 무슨 말인지도 몰랐어. 그가 말하길, ‘이 Moog에서 싱크 톤을 깔았으니 다음 트랙에서 녹음하는 것은 다 그 안에 잡힐 겁니다.’ 우리가 그 다음 트랙으로 넘어갔을 때 결과는 흠잡을 데가 없었어. 정말 신세계였지. 이 모든 것의 숨은 영웅인 Robby Wedel의 가장 놀라운 점은 Robert Moog 자신도 그걸 몰랐다는 거야. 그는 그런 동기화가 가능한지도 몰랐어.”





그들은 점차 조각을 맞춰갔다. 하이햇을 위해서는 머신의 덮개를 이용한 잡음을 만들어 잘라냈고, 특유의 베이스라인은 Wedel이 만든 연속적인 사운드였다. 하지만 킥드럼의 소리를 충분히 크게 만들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기존 드러머인 Keith Forsey가 유일한 인간요소로서 7분 가량의 포투더플로어 패턴을 제공했다. Moroder는 말한다. “Moog를 가지고 작업하는 건 정말 재미있었지만 문제는 그게 몇 분마다 음정이 나가곤 했다는 거야. 정말 재앙이었어. ‘I Feel Love’를 할 때는 20~30초 정도 하다가 멈추고, 다시 조율을 하고 다시 시작하고 그랬을 걸. 꽤나 수고로웠지.”


가사는 Summer와 Bellotte가 쓰기로 했기 때문에 Pete가 어느 날 밤 그녀의 집을 찾아갔다. Summer는 통화 중이었기 때문에 그가 먼저 작업을 시작했다. 세 시간이 지나 가사가 완성된 후에야 Summer가 오더니 Bellotte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 진짜 미안해. 뉴욕에 있는 내 점성가랑 통화 좀 하느라고. 내 관계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


Bellotte는 이렇게 회고한다. “Donna는 Peter Mühldorfer라는 남자를 만나고 있었는데 그때 막 Brooklyn Dreams의 Bruce Sudano를 만나 푹 빠져 있었어. Bruce의 별자리운세를 알아보려고 점성가한테 전화했던 거야. 점성가는 Donna에게 Bruce를 만나야 한다고 말했대. Donna가 내려와서 이렇게 말했어. ‘결정했어’.” 그렇게 가사를 건네 받은 Donna는 스튜디오에 나타나더니 원테이크로 노래를 마쳤다.


1977년 8월 13일, Vince Aletti는 칼럼에 이런 글을 썼다. “‘I Feel Love’는 최대한도로 활용된 신시사이저와 Summer의 몽환적이고 의욕적이고 황홀한 보컬의 근사한 조합이다. 맹렬한 페이스와 특히 공격적이고 정서적으로 격렬한 신시사이저 효과로 마음을 사로잡는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것은 Summer, Moroder, Bellotte가 지금까지 해온 것과 완전히 다르다.” 마찬가지로 독일에서 녹음된 David Bowie의 ‘Low’ 앨범 세션 중 프로듀서 Brian Eno는 ‘I Feel Love’를 처음으로 듣고 하루 만에 달려와 이렇게 말했다. “미래의 사운드를 들었어. 바로 이거야. 다른 건 볼 것도 없어. 이 싱글은 앞으로 15년간 클럽뮤직의 사운드를 바꿔버릴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Casablanca 내부에서는 이 곡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Giorgio는 이렇게 회상한다. “처음에는 [Casablanca MD] Neil Bogart가 관심이 있었는데 내 생각만큼은 아니었어.” 실제로 ‘I Feel Love’는 본래 발라드 ‘Can’t We Just Sit Down (And Talk It Over)’의 B면으로 발매되었다. 그들이 무슨 짓을 한 건지 아무도 깨닫지 못하는 눈치였다. Bellotte는 말한다. “우리에게 그건 그냥 트랙 하나였어. 그걸 싱글이라고 여기지도 않았지. 그게 발매되었을 때 그래, 뭐, 특별한 걸 만들어내긴 했다고 생각은 했지만 혁명적이라는 느낌은 없었어.” 하지만 곡은 영국에서 먼저 날개 돋친 듯 히트를 치기 시작했고, 빠르게 A면으로 전환되었다. ‘I Feel Love’는 Donna Summer의 영국 최대 히트작이 되었고 미국의 Hot 100 차트 6위를 차지했다.


‘I Feel Love’ 이전의 신시사이저는 Keith Emerson, Jean-Michel Jarre, Tangerine Dream처럼 진지한 뮤지션들의 영역이거나 Hot Butter의 ‘Popcorn’이나 심지어는 Moroder와 Bellotte의 첫 번째 히트곡 ‘Son Of My Father’ 같은 일회성 곡들에 쓰이는 참신한 소품 정도였다. ‘I Feel Love’는 순수한 즐거움을 위해 신시사이저의 관념화를 거부한 사례였다.


그 영향력은 빠르고도 강력했다. 그 DNA는 Throbbing Gristle의 독특한 명곡 ‘Hot On The Heels Of Love’ 같은 다른 곡들에도 자연스럽게 번졌다. 당연히 디스코에 미치는 영향력이 엄청날 수밖에 없었다. Kebekelektrik의 ‘War Dance’나 Blondie의 팝 히트 ‘Heart Of Glass’ 역시 마찬가지였다. Debbie Harry는 후에 이런 코멘트를 남겼다. “Chris와 나는 Donna와 ‘I Feel Love’를 완전 사랑했다.” 당시 이것은 매우 획기적이었고 상업적이었으며 도발적이었다.





당시 NYC의 디스코의 제왕은 The Gallery의 Nicky Siano였다. 그는 Casablanca의 프로모션 책임자 Mark Paul Simon이 1977년 여름에 사람들로 꽉 찬 클럽에 등장해서 그때 아직 발매되지 않았던 싱글 레코드판을 건네주며 틀어달라고 했던 때를 기억한다. 자기 헤드폰으로 그 곡을 듣기로 했던 Nicky는 말한다. “사람들로 꽉 찬 클럽에서 곡을 먼저 들어보지도 않고 막 트는 DJ는 없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지. 나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그 묵직한 디스크를 내 세 번째 턴테이블에 올렸어. Donna Summer/Giorgio 프로덕션이라면 믿을 만하니까 기대를 하면서 내 귀를 갖다 댔지. 그런데 왠걸, 그렇게 신박한 싱커페이션을 쓴 신스 라인은 정말 간만이었어. 새 음반 정도가 아니라 새로운 스타일의 프로덕션이었지. 나는 본능을 믿고 그것을 셋에 믹스해 넣었어. 관중이 처음 듣는 음악에 열광하는 일은 거의 없잖아? 그날 룸은 거의 폭발하다시피 했고 나는 클럽 송을 영원히 바꿀 사운드를 경험했어.” Marc는 Nicky가 음반을 간직하지 못하게 했고, 그러자 Nicky는 그를 클럽 밖으로 쫓아냈다. “나는 그때 음악업계에서 너무 중요했기 때문에 그는 Donna Summer가 내게 직접 전화해서 사과하게 했어. 그렇게 화해했지.”


Moroder가 말한다. “처음에는 ‘I Feel Love’가 그렇게 뜰 줄 몰랐어. 하지만 몇 달 지나자 다른 음반들에서 똑 같은 베이스라인이 들리기 시작했지. 이제는 ‘I Feel Love’ 베이스의 일종을 가지고 있지 않은 EDM 곡을 찾는 게 더 어려워. 귀에 딱 들리지 않는다고 해도 있긴 있을 때가 많아. 오히려 그걸 아예 사용하지 않는 게 더 어렵지.”







Sven Väth는 말한다. “1977년에 부모님이 프랑크푸르트 근처에 나이트클럽을 열었어. 이 놀라운 곡이 발매되었을 때가 진짜 생생하게 기억나. 나는 그걸 귀가 닳을 때까지 들었지. 집에서도 듣고 부모님의 클럽에서도 들었어. 그러다가 1980년에 디제잉을 시작하면서 이 곡을 이따금씩 틀었어. 지금까지도 마법 같은 순간에 딱 맞는 음반이야.”


사실 이 곡은 발매된 시점부터 클럽에서 꾸준히 틀어졌다. 파리의 DJ Deep은 말한다. “Laurent Garnier는 이 곡을 트는 바로 그 특정한 순간에 그날 밤을 어떻게 끌고 가고 싶은지에 따라 이걸 하우스뮤직이나 테크노에 녹여냈고, 아직 풋내기 DJ였던 나는 매번 감명을 받곤 했어. Derrick May도 이걸 테크노로 트는 그만의 방식을 가지고 있었어. 아예 새로운 테크노 음반 같았지.”


Ewan Pearson 역시 이 원대한 곡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또 다른 모던 프로듀서였다. 그는 말한다. “‘I Feel Love’의 사운드, 그 모터릭(motorik)한 아르페지오 베이스라인은 댄스뮤직이 하나의 장르가 되기 전 내가 가장 좋아한 댄스음반들의 사운드였어. 나도 리믹스를 할 때 그런 베이스라인을 많이 썼어.” 모던 디스코의 별종인 Horse Meat Disco는 가장 적절한 순간에 망설임 없이 Donna 카드를 꺼내 든다. Jim Stanton은 말한다. “오늘날 모든 일렉트로닉 댄스뮤직의 청사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아직도 이걸 틀면 백발백중이야. 나는 늘 이 곡에 대해 평소에 남발하지 말고 아껴놨다가 딱 필요한 순간을 기다리는 느낌이 들어. 이 곡은 아직도 건재하고 다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어. 궁극적인 ‘프리패스’ 카드랄까.”


Erol Alkan도 동의한다. “댄스플로어에서건 결혼식에서건 더럽고 땀에 젖은 나이트클럽에서건 자기 옷 입은 것처럼 잘 어울리는 음반이야. 나는 음악이란 걸 처음 알게 되었을 때부터 이 음반을 알았는데 아직도 이 곡을 들으면 짜릿짜릿해. ‘I Feel Love’는 인류의 성공사례로 외계행성에 보내기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야. 의심의 여지 없이 역대 최고의 사운드레코딩이라고 할 수 있지.”


우리는 아직까지도 ‘I Feel Love’가 예언한 미래주의를 뒤쫓아가려고 애쓰는 느낌이다. 어쩌면 앞으로 40년은 더 그래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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