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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 THE NETWORK: KIRARA
국내 전자음악 뮤지션 KIRARA 인터뷰
MIXMAG KOREA | 2017-10-31
키라라 님을 소개해주세요.

한국에서 전자 음악을 만드는 키라라입니다. 컴퓨터로 만드니까 전자 음악인 것 같긴 한데, 계속 생각 없이 만들고 싶은 걸 만들다 보니 어느 장르에도 속하지 못하는 희한한 음악을 만드는 꼴이 되었습니다.




음반 [KM] 발매 기념으로 행사가 두 개 있었잖아요. 어떤 이야기를 나누셨나요?

토크쇼, 음감회 두 가지를 했죠. 토크쇼에서는 [KM]에서 저에게 리믹스를 당한 음악가들을 모셔서 원곡과 리믹스를 어떻게 들었냐는 소감을 나눴어요. 그다음 주에는 ‘재미공작소’에서 음감회를 했어요. 음반이 워낙 길어서 음악을 끊고 말을 할 수가 없어서 음반을 통째로 틀어놓고, 스크린에 워드프로세서를 띄워놓고 하고 싶은 말을 쭉 썼어요. 그런데 오히려 사람들이 그런 형식을 더 재밌게 봐주신 것 같아요.




키라라 님의 음악을 들어보면, “키라라는 이쁘고 강합니다. 여러분은 춤을 춥니다.”라는 문구가 들려요.

어느 날 친구들이랑 떠들다가 자연스럽게 나온 제 음악에 관한 캐치프레이즈예요. 재미도 있고, 어딘가 제 음악을 굉장히 정확히 수식하는 느낌이 있어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제 음악을 들어본 분들도 다행히 공감을 해주시더라고요. 멜로디는 이쁘고, 비트는 강하게 만들어진 음악이 문자 그대로 들려서 그런 거 같아요. 이 말을 계속 미니깐 사람들이 더 다양한 해석을 해주시더라고요. 제 성 정체성에 기대어 해석하신다든지요. 저도 처음에 제 음악이 어떤 음악인지 규정하기 어려웠어요. 하우스, 테크노 이런 장르는 정말 모르겠더라고요. 그러다가 제가 저를 하우스 음악가, 테크노 음악가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보다는 저만이 쓰는 수식어를 쓰는 게 더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원래 수식어를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해요. ‘이쁘고 강한’, ‘울면서 춤출 수 있는’ .




키라라 님의 2012년을 떠올려보면, ‘이쁘다’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지금의 키라라 님 음악은 ‘춤을 춥니다’에 초점이 맞춰지는 거 같아요.

제가 공연 활동을 하면 할수록 사람들과 호흡하는 움직임에 관해서 고민하게 되다 보니 춤추는 음악에 점점 더 가까워진 느낌인 거 같기도 합니다.




이쁘고 강한 거 말고, 그냥 이쁘거나 그냥 강한 걸 해볼 생각은 없으신가요?

모두 해보려고 노력했었지만, 실패했던 것 같아요. 제가 자신 있게 만드는 저의 음악은 꼭 두 가지를 모두 기본값으로 가지고 있어야만 했던 것 같아요. 이쁘기만 한 음악은 어떻게 잘 나오는데, 제가 오글거려서 자제하는 구석이 있어요. 강하기만 한 것은 만들기가 어렵더라고요. 그건 애초에 만들기도 어려운 음악이잖아요.




말씀하셨듯이, 키라라 님의 음악을 특정 장르로 묶긴 어려운데요. 그래도 이번 [KM]은 ‘리믹스’로 묶을 수 있을 거 같아요. 리믹스 음반을 만든 동기는 뭐였나요?

너무 직관적인 이유가 딱 하나 있어요. 제가 너무 좋아해서 평생의 스승으로 모시는 음악가들이 몇 정해져 있는데요, 그들이 리믹스 음반을 냈기 때문에 저도 자연스럽게 어렸을 때부터 쭉 내고 싶었어요. 그런 꿈을 드디어 이룬 거죠.




[KM]은 어떤 음반인가요?

이 앨범은 감사입니다. 저는 이 음반을 소개할 때, 항상 원작자와 제가 어떤 인연인지를 소개해요. 제가 19살 때, 음악 하는 사람들을 처음 만났을 때는 지금보다 더 성격이 찐따였는데요, 그런 저에게 같이 음악 하는 친구들이 생기고, 존경하던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도 했던 그 순간들이 되게 소중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그 사람들을 향한 감사죠. 저의 스무 살 이후의 모든 삶을 돌아보는 마음으로 저와 인연이 있는 모든 사람을 이 앨범에 집어넣었어요. 리믹스 원작자들뿐만 아니라, 음반의 아트워크 그림의 배경이 `한 잔의 룰루랄라’인거나, 음감회를 한 곳이 `재미공작소’인 것도 그렇죠. 음반 아트워크 하신 분도 <네이버 온스테이지> 영상을 만들어주신 분에게 부탁을 드렸었고, 음반 마스터링 하신 분도 2014년에 제 데뷔 공연의 기획자셨어요.




[KM] 수록곡 대부분 곡을 직접 찾아가 허락을 받으셨다고 했는데요. 선정 기준은 뭐였나요?

제가 좋아하는 음악이죠. 옛날부터 제가 좋아하는 음악가에게 무작정 매달렸던 것 같습니다. 마치 애정표현처럼, 제가 좋아하거나, 팬이거나, 저에게 가르침을 주셨거나, 존경하는 분이라면 무작정 리믹스를 해도 되겠냐고 부탁을 드렸어요. 6년 정도 걸렸네요.




리믹스란 작업은 어떻게든 리믹스를 한 사람의 색이 들어가는데요. 이 음반에 키라라 님의 색은 어떻게 들어갔을까요?

제가 저의 색을 표현하겠다고 작정해서 되는 건 아닌 듯해요. 단순한 마음으로 그저 이 곡을 리믹스해보면 재밌겠단 생각으로 임했던 것 같고요. 밴드 음악과 전자 음악을 다루는 거에 대해서는 확실히 다른 기분이 들었던 거 같긴 해요. 전자 음악 같은 경우에는 음악가들이 이미 만든 소스를 재배치한다는 느낌으로 작업한 게 많다면, 밴드 음악은 이것을 어떻게 제 문법으로 바꿔야 하는지를 고민했어요. 보컬이 있는 밴드 음악을 편곡할 때는 보컬만 남겨놓고 나머지를 제가 만드는 방식으로 한 게 많아요. 예외는 신해경씨 음악인데, 신해경 씨의 음악은 제가 목소리 포함해 모든 소스를 다 잘라 놓았어요. 소위 제 표현으로 ‘뿌수다’인 것이죠. (웃음)




단편선과 선원들 리믹스는 원곡의 흐름을 그대로 살렸고, 플로팅 아일랜드(Floating Island) 곡은 해체되어있는데요.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직관적인 이유로 곡마다 방식이 달랐겠네요.

그렇죠. 제가 음악을 다 만들고 나서야 어떻게 만들었는지 그 결과를 관조할 수 있더라고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키라라의 색’으로 잘 부숴놓은 완성품을 들었을 때의 묘한 쾌감은 있었습니다. ‘아 나는 역시 키라라구나’라는 마음으로 즐겁게 곡을 프로모션할 수 있었죠.




키라라 님의 음악은 잘게 잘린 소스들이 귀에 들어와요. 이런 걸 ‘뿌순다’라고 표현하시는 거 같은데요. 이런 방식을 사랑하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코넬리우스(Cornelius)의 [Point]라는 음반 때문입니다. 그 음반이 제가 소리를 자르는 방법을 다 가르쳐준 거 같아요.




코넬리우스의 이야기를 여러 번 하셨더라고요. 영향을 많이 받으셨나봐요.

언젠가 다른 인터뷰를 할 때 했던 말을 정리해보니, 저에게 영향을 준 음악가가 딱 셋 있는데요. 케미컬 브라더스(The Chemical Brothers), 신이치 오사와(Shinichi Osawa), 코넬리우스더라고요. 신이치 오사와는 저에게 제가 좋아하는 사운드 톤을 가르쳐주었고요. 케미컬 브라더스는 제가 댄스 음악을 만드는 사람으로의 정체성을 갖추게 해준 사람이고, 코넬리우스는 정말 제가 예술가가 되고 싶게 만들어준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피아노를 치는 방법을 프리템포(FreeTEMPO)가 가르쳐주셨다고 하신 적도 있어요.

프리템포의 어떤 음반을 들어보면, 피아노를 부드럽게 치지 않고, 모두 같은 세기로 같은 타이밍에 땅! 하고 치거든요. 마우스로 찍은 티가 많이 나는 피아노 소리에 관한 애정과 자신감을 가지게 해준 음악가가 프리템포였기에 그런 말을 했던 거 같아요.




[KM]의 수록곡 대부분이 길어요. 이렇게 길어진 이유가 무엇인가요?

긴 음악을 좋아하고, 그런 제가 음악을 만들다 보니 길어진 거겠죠. 음악을 전략적으로 생각을 하고 만드는 유형이 전혀 아니에요. 왜 그런 음악을 만드냐고 하면 매끄럽게 대답하기 어려워요.




파블로프의 리믹스 같은 경우는 원곡의 드럼 브레이크를 살렸더라고요. 왜 그 곡만 그랬나요?

오리지널 곡이든, 리믹스든, 저의 모든 작업은 어떤 연대기 속에 있는데요. 어느 시기는 어느 소리에 꽂혀서 계속 만들어내고 그런 게 있는 거 같아요. 그때는 한창 제가 빅 비트에서 많이 쓰이는 드럼 소리 질감에 애정이 생겼던 때였던 거 같아요. 드럼 소리에 새츄레이터라는 이펙터를 걸면 소리가 와장창한 느낌으로 커지는데, 그런 소리에 재미를 들렸던 시기였던 거 같아요. 사람들은 “퍽이나” 리믹스의 도입부를 듣고 블러(Blur)의 “Song 2” 같다고 얘기하기도 하더라고요. 의도하진 않았지만요.




원곡 대부분이 홍대 인디 신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인데요. 음악가 각각의 질감 차이 같은 부분은 어떻게 접근하셨나요?

리믹스 작업을 워낙 많이 하다 보니, 살리고 싶은 걸 살리고 나머지를 지우다 보면 남은 부분이 그게 그거더라고요. 목소리는 살리고 싶고, 노래에서 튀는 리프가 있으면 넣고 싶고요. 제 음악을 들어보시면 아시겠지만, 다양하게 만든 것도 아니죠. 결국, 다 비슷해질 걸 저도 알아서인지 굳이 질감의 차이 같은 것을 고민하진 않은 것 같아요.






키라라 님하면 떠오르는 ‘겨울’ 소리가 있잖아요. 이번 음반도 그런 부분이 많이 살아있어요. 이제는 정체성으로 굳어진 거 같아요.

저도 그런 느낌을 저의 정체성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저는 제가 만든 음악이 다 좋거든요. 항상 고음역의 쏘는 부분을 좋아하는 거 같고요. 귀에는 물론 안 좋겠지만…. (웃음) 공연장에서 EQ를 잡을 때도 사람들의 귀를 조금은 불편하게 잡으려고 해요. 그런 영역을 왠지 포기할 수 없었던 거 같아요. 어떻게 연결되는진 모르겠지만, 제가 겨울을 좋아해요. 쨍하고, 차갑고, 편하지 않고, 작업할 때도 일부러 추운 곳에서 힘들게 작업하거든요. 제 에이블톤 라이브 스킨도 가장 쨍하고 하얀 거로 쓰고 있습니다.




그런 소리와 음악을 좋아하게 된 건 개인의 성향 때문이겠죠?

그렇죠. 그리고 저는 뭔가 항상 절박한 음악을 만들려고 해요. 절박함을 내는 방법은 어딘가 아픈 거더라고요. 어딘가 아픈 상태에서 작업하고, 술, 담배를 많이 하고, 추운 곳을 찾아가 작업하고…. 소리도 춥게 만들고요. 그런 지점이 아닐까요?




[KM]은 전체적으로 보컬이 담긴 곡이 담겼는데요. 킴 케이트(Kim Kate) 님의 음악은 그렇지 않잖아요. 접근 방식이 조금은 달랐나요?

확연히 달랐죠. 킴 케이트가 만든 소리가 너무 좋았고, 해치고 싶지 않았어요. 저에게 킴 케이트의 음악가의 이미지는 ‘존잘’입니다. 정말 잘 만드시는 분인데, 그분이 만든 유니크한 소리 소스를 굳이 곡해하고 싶지 않았어요.




신해경 님의 ‘다나에’ 리믹스가 두 곡 담겨있잖아요. 하나는 많이 ‘뿌쉈고’, 하나는 원곡의 무드를 살렸는데요. 두 곡을 모두 실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리믹스를 할 때 신경 쓰는 지점 중 하나이자, 자신 있고 없고를 판단하는 부분이 바로 BPM이에요. 저는 BPM이 120에서 135 사이의 곡을 가장 잘 만들고, 어차피 그렇게 만들게 되기도 해요. 거의 이렇게만 하기도 하고요. 그러나 신해경 씨의 음악은 그에 비해 이미 곡이 발라드였고, BPM이 80 정도여서, BPM을 두 배로 빠르게 해석해도 보컬이 이상하게 들릴 문제가 생겼어요. 그렇다고 신해경 씨의 다른 곡 중에서 리믹스가 자신 있을 곡도 없더라고요. 이런 곡을 어떻게 리믹스해야 하는가에 관한 고민을…. 솔직히 안 했죠. 자신 없으니까 뿌수는 방법밖에 없겠다 싶어서 뿌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완성을 하기엔 어딘가 제 마음이 불편한 거예요. 신해경 씨에게 미안했다기보다는 어떤 과제를 해결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절치부심하고 오기를 가지고 다시 어떻게든 신해경 씨의 노랫말이 들리게 애써서 만든 결과물이 또 하나 나온 거지요. 두 개의 리믹스가 보여주는 각자의 방식이 너무 다르고, 그 다른 지점이 너무 재미있어서 사람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두 곡을 병치해서 실었던 거 같아요.




음반 안에서 코스모스 슈퍼스타 님의 곡은 리믹스보다는 두 분이 같이 만든 곡 같았는데요.

코스모스 슈퍼스타는 제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보컬입니다. 나중에 유닛으로 활동한다면 무조건 코스모스 슈퍼스타랑 함께할 것이고요. 반은 농담처럼 말하지만, 평생 같이하고 싶은 보컬입니다. 코스모스 슈퍼스타의 목소리 자체도 굉장히 쏘는 목소리잖아요. 그래서 좋았던 거 같기도 해요. 다른 음악과 똑같이 코스모스 슈퍼스타를 알고 난 직후에 무작정 리믹스를 하고 싶다고 졸라서 받아낸 스템 파일이었다보니, 굉장히 오래전에 만든 음악입니다. 지금의 음악이 강한 쪽에 가깝다면, 몇 년 전에는 강하기보다는 이뻤기 때문에, 이쁘게 나온 거 아닐까 싶어요. 제가 만든 곡 중 이쁨으로 손꼽을 수 있는 음악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코스모스 슈퍼스타 씨가 재녹음을 했다고 들었어요. 완성된 곡을 듣고 다시 녹음하신 건가요?

맞습니다. 2014년에 만들었고, 음반을 만들기 위해 다시 믹스를 하는 과정에서 코스모스 슈퍼스타가 보컬을 아쉬워했던 게 기억났어요. 음반 기획을 설명하고, 재녹음을 하고 싶어했으니 해보자고, 무조건 타이틀 곡이라고 말하고 재녹음을 했죠.




과거 ‘마스터링이 무섭다’고 하신 적이 있어요.

제가 주로 좋아하는 음악이 일본에서 온 전자 음악인데요. 제가 좋아했던 일본 음악처럼 대범하게 와장창 큰 소리를 만들어주는 마스터링 엔지니어를 찾기 어려웠어요. 근데 이게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보편적으로 잘 된 마스터링이 아니더라고요. 모른 채 레퍼런스로 들고 갔다가, 레퍼런스부터 잘못된 마스터링이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때 제가 좋아하는 소리에 대해 많이 재고하게 된 거 같아요. 소리를 크게 만들어달라고 하면, 큰 소리가 좋은 소리가 아니란 이야기를 항상 들었어요.




믹싱/마스터링 과정에서 충돌이 있었군요.

[moves] 앨범을 만들 때, 마스터링 엔지니어께서 큰 마스터링이 좋은 마스터링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시면서 다프트 펑크(Daft Punk)의 음반을 언급하시더라고요. 항상 라우드니스에 대해서 고민하고 멘붕했던 것 같아요. 얼마 전, 한 SNS 채널에서 ‘다프트 펑크의 [Random Access Memories]는 라우드니스를 고려하면서 진짜 사운드를 찾은 음반이다’라는 뉘앙스의 글을 보았는데요. 그럼 저의 소리는 진짜 사운드가 아니라는 이야기잖아요. 엔지니어는 문제가 있으면 고쳐야 한다는 생각을 하실 테고, 듣기 편하게 만들어야 하는 사람들인 거 같아요. 제가 만들어놓은 소리를 누군가가 지적하고 바꾸기도 하면서, 그 사람들은 좋다고 하는데 저는 이상하게 느껴지는 딜레마 속에서 ‘나는 잘못된 것인가, 누가 옳고 그른 것인가’라는 고민을 많이 했죠. 그 과정이 불행했던 거 같아요.




이번에는 굉장히 만족스럽다고 하셨어요. 어떤 차이가 있었나요?

이번에 마스터링을 해주신 김창희 님은 제가 무대륙에서 와트엠(WATMM)이라는 기획 공연에 참여했을 때의 기획자셨어요. 키라라가 어떤 음악을 하고 싶어하는지 깨달아주셨다고 처음 느낀 분이기도 해요. 그리고 나중에 그분이 마스터링 스튜디오를 만들었단 이야기를 듣는 순간 무조건 그분에게 마스터링을 맡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마스터링 할 때는 리믹스 음반에 수록된 원작자 음악가들도 대부분 와트엠 참여자였던 만큼, 많은 추억을 이야기하면서 즐겁게 작업했어요. 원래 아는 사이니까 더 그럴 수 있었고요. 예를 들어서 마스터링 스튜디오에 갔을 때, ‘키라라 이거 한 번 들어보세요’라면서 코넬리우스의 LP를 틀고 스펙트럼을 보여주신다든지요. 그분이었기에 즐거웠을 수 있었던 거 같아요.




[moves]를 내기 전부터 ‘키라라 소품집’을 꾸준히 내셨는데요. 이 음반은 어떤 시리즈인가요?

저의 소품집인 [cts] 시리즈를 설명하기 위해서 ‘ct’라는 두 글자를 설명해야 합니다. 저의 음반을 보면 “ct14074” 같은 제목이 있는데요. 이건 14년 7월에 네 번째로 만든 곡이란 뜻이에요. ct 시리즈는 제가 07년도부터 만들었고, 알파벳은 의미가 없습니다. 알파벳 두 개와 일련번호를 붙이면 멋있을 거 같아서, 정말 아무거나 알파벳 두 개를 정한 겁니다. 그걸 모아 소품집을 내야겠다 생각했던 게 [cts]였던 것이지요. 복수 -s가 붙은 거죠.




[cts] 시리즈의 음반 아트워크는 어떻게 만들어진 건가요? 간결한 문양이잖아요.

[cts]를 2014년에 처음 내겠다고 마음먹었는데요. [cts] 음반 커버를 고민했을 때, 당시 상황이 저는 어떤 절망에 빠져있었습니다. 키라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비관에 차서 ‘난 망했다’라는 마음으로 커버에 ‘X’ 를 크게 적으려고 했어요. 근데 엑스엑스(The XX)랑 너무 똑같은 음반 아트워크가 나올 거 같은 거예요. 그래서 앨범을 [cts1], [cts2] 로 나누어서 하나는 /, 하나는 반대로 획을 그으려고 했습니다. 근데 [cts1]을 내고나서 [cts2]를 내려고 생각해보니, 그쯤 뭔가 잘 풀리는 일도 있었고, 제가 굳이 ‘X’를 아트워크로 써 부정을 타고 더 망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들어서 이번엔 긍정을 해보려고 했어요. [cts1]은 부정을 해서 ‘X’의 반이었으니까, [cts2]는 긍정의 반이라 반원인 겁니다. [cts3]부터는 다른 의미의 다른 컨셉의 음반 아트워크를 냈고요. 그렇게 쭉쭉 낼 거 같아요. 제가 2014년 12월에 낸 첫 정규 음반이 [rcts]인데요. Regular cts 입니다. [moves]도 원래는 [rcts2]였는데, 그때 즈음 일련번호로 계속 음악을 내는 것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되어서 [moves]로 바꿨죠.




현재 한국의 전자 음악 신이라는 게 있다면, 이태원과 디제잉일 텐데요. 키라라 님은 홍대에서 공연 위주의 활동을 하고 계셔요. ‘홍대 신의 전자 음악가’라는 수식어에 관하여 할 말이 있으신가요?

어렸을 때 꿈꿨던 전자 음악가의 삶이라면 믹스믹스 TV(Mixmix TV)에 나오는 그런 모습이었던 거 같아요. 하지만 음악을 해야겠다고 작정하고 처음 오프라인으로 나왔을 시기에 어쩌다 처음 만난 곳이 두리반이었고, 한받 님, 단편선 님 같은 분을 동경하면서 음악 활동을 시작했던 것 같아요. 제가 홍대 신의 전자 음악가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그렇다면 그때의 생각들이 저에게 영향을 미쳤겠죠. 공연하다 보니 어쩐지 자꾸 섭외해주는 사람들이 홍대에서 공연 기획하는 사람들이고, 평소에 ‘한잔의 룰루랄라’에 자주 가서 그런지, 밴드나 포크 하는 사람들과 더 친해요. 제가 디제잉과 이태원 신과 멀어진 이유라면, 어느 순간 제가 클럽에 잘 맞는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음악은 재미있지만, 태생적인 찐따 기질? 이 있다 보니 주위에 이쁘고 멋진 사람들 구경하며 위축이 되기도 하다 보니 이렇게 된 걸지도 모르겠어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에 가까워요. 저도 의아해요. 분명 어렸을 때의 꿈은 그랬는데, 지금은 아니에요. 며칠 뒤면 제 생애 두 번째로 댄스클럽에서 공연하는 날이 오는데요. 댄스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는 사람인데 왜 댄스클럽에서 공연을 자주 하지 않았는지를 평소에 저도 궁금하기도 했던 거 같아요. 저도 궁금하네요.




외로움 같은 게 있었을 거 같기도 해요. 혼자 음악을 한다는 거의 고충? 반대로 장점도 있겠죠.

외롭고 서러운 건 사실인 거 같아요. 어쩌다 대체 여기에 섞여 공연하며 살고 있는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전자 음악에 관한 이해가 없는 공연장도 많아요. 주위를 보며 끊임없이 부러워하고 고민을 하는 거 같습니다. 그렇다고 딱히 어떻게 하자고 결론을 내린 것도 아니고, 그저 아직 기회가 닿지 않았고, 시기가 조금 늦을 뿐이지 언젠가 같이 음악하고 기획도 할 수 있는 저와 비슷한 전자음악 친구가 더 생기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음반 작업 외에도 아카데미나 레슨, 공연을 많이 하셔요. 공연이 특히 궁금한데요. 키라라 님의 공연은 어떻게 준비되나요?

제 모든 악기는 랩톱이고요. 랩톱에 있는 에이블톤 라이브를 제어할 컨트롤러 2개 정도가 일반적이죠. 다른 사람들처럼 합주실을 빌릴 필요 없이, 집에서 장비 깔아놓고 헤드폰 끼고 연습을 하면 돼요. 공연이 있으면, 셋을 일주일 정도 짜고요. 공연 전날과 전전날 이틀 동안은 집에서 공연을 시뮬레이션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매번 공연 때마다 다른 셋을 들고 가려고 노력은 하고 있는데, 솔직히 잘 안되는 것 같아요. 결국, 옛날 셋에서 끝에서 한두 곡만 바꾼다든지 순서만 바꾼다든지. 요즘은 공연이 하도 많다 보니, 셋 짜고 연습하느라 집에서 모든 시간을 보내는 거 같아요.




의욕을 가지고 지속해서 음악을 만들고 발표하실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첫 번째로 제 성격이 무식해서 그런 거 같습니다. 하고 싶은 건 해야 하고, 워낙 꿈을 많이 꿨고, 앞으로도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요. 두 번째는 제가 절박하고 우울하고 안 좋은 상황일 때 곡이 많이 나오는 거 같아요. 제가 생각할 때 저라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면, 저의 성에 대한 문제일 것이에요. 저는 실제로 제 성 정체성을 싫어합니다. 이 문제는 해결할 수가 없는 거잖아요. ‘하면 된다’고 바뀌는 거도 아니고, 수술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지난 세월과 앞으로 평생 제 삶 전체를 아우르는 문제가 있는 거죠. 이게 원동력이 되는 거죠. 집에서 가만히 거울만 봐도 우울해지고, 우울하면 뭔가 곡이 나오고요. 그런 맥락이라고 생각해요.




과거 케이크샵 앞에서 제가 질문을 드리기 어렵단 이야기를 했는데요. 비슷하게 SNS에 ‘사람들이 어떤 빻은 질문이라도 물었으면 좋겠다’라고 하셨어요. 키라라 님의 성 정체성을 의식하는 분이 많아서겠죠.

그 글은 그 날의 어제 있던 술자리에서 나왔었던 이야기에요. 어떤 분이 ‘키라라 씨에게 말을 걸고 싶지만, 실례할까 봐 말을 못 하겠다’라는 말을 저에게 하셨고, 그 자리에서 그러지 말아 달라고 똑같이 얘기했거든요. 그렇게 말을 하고 나니까 페이스북에 왠지 한 번 더 쓰고 싶더라고요.




월세 때문에 레슨을 시작하셨다고 들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음악은 음악 외적으로 생존에 관해서도 연관되어 있는데요. ‘생존’에 관한 이야기가 오늘 자주 나왔던 만큼, 생존으로의 음악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요.

일단 저는 배가 부른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레슨을 하는 것도 음악으로 먹고사는 거로 들어가는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먹고 사는 거잖아요. 제가 어렸을 때, 스무 살쯤 인터넷을 통해 만났던 성 소수자 중에서 MTF, FTM 친구들이 꽤 많았던 거 같아요. 그런데 지금 제가 26살인데 그 중 딱 한 명 말고는 탈조선 혹은 탈반(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해서 번복하는 것)하거나, 자살했어요. 딱 한 명 남은 거죠. 그 한 명 남은 친구와 우리는 뭐가 잘나서 잘살고 있는가를 토의해보면, 저는 결국 제가 음악을 했기 때문에 그랬던 거더라고요. 어쩌다 제가 하고 있던 게 음악이라는 것이 큰 운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학교나 회사에서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 사람이었다면, 저도 어쩔 수 없이 마주쳐야만 하는 불행한 현실이 있었을 것이고, 결국 저도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기도 해요. 저는 소위 말하는 ‘빻은 사람’을 만날 일이 없잖아요. 제가 음악, 홍대, 이태원 어디든 만나는 사람들은 최소한 안 빻은 척이라도 하잖아요. 그런 사람들 사이에 있어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저를 생각하면 살아가면서 참 갚을 게 많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음악으로 먹고살고, 이상한 상도 타고 그럴수록 갚고 싶고, 감사한 게 많은 거 같아요. 그럴수록 말을 하고 싶고, 그게 제 사명이라는 느낌도 들어요. 그런 생각으로 저의 작업을 하려는 거 같습니다.




[한국 대중 음악상]에서 ‘친구들이 자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며 만들었다’라는 말을 하셨는데, 이 말을 후회하신다고.

후회합니다. 두서가 없던 게 가장 아쉬웠어요. 사실 상을 타기 전에 상을 타면 어떤 말을 해야 한단 상상은 속으로 해봤어요. 성 소수자에 관한 이슈를 꺼내긴 꺼내겠다 생각했어요. 그런데 상 타러 올라가 수상소감을 하는데, 성 소수자 트랜스젠더 이런 말이 입 밖으로 안 나오는 거예요. 인터넷 생중계로 보고 계신 부모님 때문에요. 그래서 `자살하지 말자`라는 말로 대신했던 거죠. 그때 느꼈던 혼란이 오래갔어요. 지금도 우리 가족과 갈등하는 문제는 제가 활동하면서 성소 수 자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일에 대한 것이에요. 어떤 부모가 좋아하겠어요. 특히 트랜스젠더라면요. 그래서 후회를 했던 거 같아요. 그런 고민은 지금도 이어져요. 이 인터뷰도 부모님이 보실지 안 보실지 모르겠지만, 보신다면 상처를 받으시겠죠. 문제는 제가 그런 가족을 너무 사랑하고, 그러니 계속 잘 지내고 싶다는 것인 것 같아요. 계속 대화를 하려고 해요. 항상 감사하고, 미안한 가족입니다.




‘평생 꿈꿔온 프로젝트’란 이야기로 SNS에 글을 올리셨어요. 영상 작업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어떤 프로젝트인가요?

창피하네요…. 하지만 우발적으로 쓴 건 아니에요. 저는 항상 제 공연에서 연주하는 제 뒤에 커다란 LED 또는 스크린으로 영상과 같이 퍼포먼스 하는 그림을 꿈꾸고 있어요. 하지만 혼자 하기엔 4~5년이 넘는 엄청난 시간이 필요하고, VJ 할 줄 아는 친구가 있다고 해결되는 부분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어요. 제 공연에 사용할 영상을 만드는데 프로그래밍 언어를 사용하는 방법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어떤 신호를 줘서, 컴퓨터가 음악에 맞춰 무엇을 하게 만드는 식으로는 전혀 욕구가 충족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하나하나 노가다로 편집하고 그려준 게 더 좋더라고요. 화면에 쿵 하면 쿵, 짝하면 짝이 그대로 나오는 영상을요. 돈도 없으니 혼자 만들어보려고 공부도 해보려고 하고, 조명도 빌려서 해봤는데 어느 순간 우울해지더라고요. 혼자 뭐하나 싶었어요. 제가 <네이버 온스테이지>를 몇 달 전에 찍었잖아요. 모션(Motion)이라는 프로그램으로 동그라미, 네모를 하나하나 직접 그렸어요. 동그라미가 튕겨서 움직이는 걸 할 줄을 몰라서 빠르게 그리고, 느리게 그린 것을 잇는 식으로. 천 개 넘게 그렸을 거예요. 그걸 만들면서도 우울했어요. 솔직히 전 음악이나 하고 싶었거든요. 근데 그걸 본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 좋고, 엄청 잘되어버렸어요. 사람들은 제가 그걸 무슨 첨단기술이라도 쓴 줄 알고, 저를 엄청난 미디어 아티스트인줄 알더라고요. 저는 노가다로 그린 건데요. 그 영상 때문에 실제로 제가 미디어 아티스트인줄 알고 그런 쪽에서 섭외가 자꾸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걸 거절하고 있는 것도 너무 서럽고…. 조급해진 거죠. 뭐라도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었어요. 그 글을 올리겐 된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최근에 코넬리우스가 새 음반을 냈는데요. 유튜브에서 자꾸 뭘 공개하는데, 보면서 배가 너무 아픈 거예요. 나는 언제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싶은 거죠. 그 아저씨는 다른 아티스트가 50년대에 필름으로 했던 걸 재현하는 거라고 인터뷰에서 그러는데, 저는 지금 제 눈앞에 있는 코넬리우스도 못 하고 있으니까요. 물론 저는 아직 젊고, 오랫동안 음악을 할 거지만, 조급하고 우울한 건 어쩔 수 없었어요. 하고 싶은 작업이 있고, 상상도 이미 다 하지만 할 수가 없으니까요. 그렇게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 고민해보니 당장 행동하고 싶더라고요. 공부라는 건 당장 결과물이 나오는 게 아니잖아요. 먹고 사느라 레슨 하고, 공연하느라 동그라미, 네모를 그릴 시간도 적고요.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던 거 같아요. 물론, 저의 취향이 지독해서 그렇게 랜덤한 누군가가 영상을 만들어주신다고 막 쓰게 되진 않을 거 같아요.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은 거죠. 솔직히,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운명의 상대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조금 있었습니다.




키라라 님의 지금까지의 음악 경력을 정리한다면 어떤 거 같나요?

제가 살아온 인생 자체가 그동안 하고 싶은 거만 하고 살았던 거 같아요. 앞으로 안 그럴 것도 아니긴 하지만요. 음반을 내고 싶어서 냈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했고, 다행히도 하고 싶은 게 끊이지 않고 있어요. 월세를 낼 수 있는 경제력으로 이어지는 것도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하고 싶은 걸 계속 하려고 해요. 저에게 뭐라고 할 속한 회사도 없어요. 앞으로도 없을 거 같아요. 누가 한국에서 제 음악과 같이 일을 하고 싶겠어요. 없을 거라고 감히 생각해요. 지켜봐 주시는 분들만 관심을 주시면, 계속 열심히 할 수 있을 거예요. 앞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도 너무 많아요. 들려드리고 싶은 음악도 많고, 다음 정규 음반 곡도 많이 만들어놨어요. 그렇게 일이 굴러가고 있으니,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해요.

제가 12월에 해외 공연을 다녀와요. 돌아온 이후 잠시 잠적을 타려고 해요. 키라라 오피셜 공백기 같은 거죠. 얼마 전 코스모스 슈퍼스타가 트위터에서 한 해시태그를 가지고 하던 것이 생각나요. ‘멘션 온 나이의 썰을 풀어보자’라는 해시태그가 있었고, 몇 살이라고 멘션이 오면 그 나이 때의 썰을 푸는 건데요. 재밌어 보여서 저도 신나서 해보려 했다가 결국 우울해져서 다 지웠던 적이 있어요. 12살 때는 미디를 시작했고, 17살 때는 성 정체성 때문에 너무 힘들어했고, 20살 때는 학교에 붙었지만, 다니기 싫어서 계속 땡땡이치고 ‘한 잔의 룰루랄라’에 와서 작업만 했단 식이었거든요. 너무 성 정체성 때문에 힘들어했거나 음악한 것밖에 없는 거예요. 때때로 저는 사람이 아닌 거 같아요. 그냥 키라라지, 제 인간으로서의 자아가 없단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평소 제 고민이 놀 줄 모른다는 건데요. 쉴 줄도 몰라요. 며칠 전 코스모스 슈퍼스타 집에 가서 뭐 하고 노냐 물어봤더니 뭐가 매우 많더라고요. 게임도 하고, 집에 가만히 앉아있는 것도 좋아하고 책도 많이 읽더라고요. 저는 그게 없고 전부 에이블톤 라이브인 거예요. 그런 고민에 대해서 생각도 해보려고 해요.




키라라의 궁극적인 음악은 어떤 건가요?

세상에서 영감도 많이 받고, 기계적인 음악에서 더 인간적인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저는 쓸데없이 분류하고 수식하는 걸 좋아하는데, 저는 제 맘대로 세상의 모든 음악을 우주의 음악과 지구의 음악으로 나눠요. 저는 제 음악이 모두 우주에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지구의 음악을 하고 싶어요. 그런 탐구를 하기 위한 오피셜 공백기입니다. 아마 추운 곳으로 여행을 떠나 있지 않을까요. 제 생각에는 다음 정규 음반은 [moves]보다 훨씬 좋을 거 같습니다. 언젠가 나올 키라라의 지구 음악을 기대해달란 포부를 밝히고 싶습니다!




키라라 님이 추천하고 싶은 한국 음악가는?

레슨을 하도 많이 해서 제자들이 많아요. 이런 자리에서는 제 제자를 밀어야 할 거 같아요. 장명선 씨의 음악을 꼭 들어보라고 이야기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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