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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chie Hawtin의 레이브와 댄스뮤직, 그의 첫 턴테이블
Highsnobiety Magazine이 진행한 Richie Hawtin의 인터뷰
Bianca Giulione | 2017-11-02
Richie Hawtin은 날이 갈수록 더욱 큰 무대에 DJ 셋을 올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한 번도 언더그라운드의 방향성을 잃은 적이 없다. 그는 새로운 퍼포먼스 방식을 통해 관중들에게 자신의 초기 레이브시절을 소개하는 목표를 고수하며 창작을 하는 사람들을 흡수하여 권한과 능력을 부여하고 있다. 본 기사는 본래 [Highsnobiety Magazine] 15호에 실린 것으로, 현재 온라인스토어에서 구입할 수 있다.

지난 5년 즈음 동안 수많은 저널리스트들이 이제는 DJ들이 새로운 락스타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수요 많은 DJ로서 전세계를 여행하고 수천 명의 관중이 몰리는 대형 페스티벌에서 공연을 하는 Richie Hawtin은 그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현대의 DJ들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에 이의를 제기한다. 바로 ‘주먹을 허공에 내지르며 몸을 흔드는 것’이다 Hawtin의 커리어는 언더그라운드의 뿌리를 고수하면서도 디제잉의 기량을 혁신하고 라이브공연의 본질을 지속적으로 재시험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특징지어진다.





캐나다 온타리오(Ontario)주 윈저(Windsor)에서 자란 Hawtin은 툭하면 국경을 넘어 디트로이트에 찾아가 당시 초기 형성기를 보내고 있던 레이브에 참석했다. 그는 테크노의 개척자인 Derrick May와 Kevin Saunderson을 비롯해 아버지를 통해 접하게 된 독일의 초기 일렉트로닉 뮤지션 Kraftwerk와 Tangerine Dream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Hawtin은 테크노를 경험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자기 부모님 댁의 지하실에서 턴테이블 두 대와 믹서 한 대를 가지고 음반들을 믹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직접 DJ 공연을 뛰기 위해 디트로이트로 향하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어린 시절부터 컴퓨터를 좋아했고 일찌감치 Roland의 TR-909와 303 같은 드럼머신의 매력에 눈을 뜬 Hawtin은 자신의 있을 곳을 테크노에서 찾았다. 그는 90년대 초에 첫 음반을 발매했고, 곧 최면적인 댄스뮤직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을 가지고 있는 아티스트로 세계적인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다. Hawtin은 John Acquaviva와 함께 세운 레이블 Plus 8과 M-nus의 음반들로 미니멀한 서브장르를 개척하며 테크노의 제 2의 물결을 일으켰다.

어떤 계통에서는 Plastikman이라는 활동명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그는 애시드한 느낌에서 앰비언트로 넘어가며 라이브공연에서 빠지지 않는 비주얼장치와 최면적으로 공명하는 테크노를 제작한다. 전적인 몰입이라는 퍼포먼스의 본질을 고심하기 시작한 첫 번째 일렉트로닉 아티스트라고 할 수 있는 Hawtin은 좋은 의미로 정신 없는 레이브 시절로부터 영감을 얻어 그 자신과 그의 장비들, 댄서들간의 거리감을 없애 잊을 수 없는 경험을 만들어낸다. 가장 최근에는 CLOSE를 시작하여 즉흥성과 동시성을 통해 디제잉의 예술을 강조하는 중이다.

발코니에는 천장에서부터 종이전등이 늘어져있고 주방 벽에는 물 건너 일본에서 온 병들이 줄지어 있는 Richie Hawtin의 작업실에 찾아가 어떻게 해서 테크노의 길을 걸어오게 되었는지, 패션과 기술, 음악에서 탐구한 진동수, 사케를 마시는 것, 향후에 도전하고 싶은 모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처음으로 레이브를 할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 기억나?
내 첫경험은 내가 음악과 춤을 얼마나 좋아하는지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 나는 볼거리를 위해 레이브에 간 게 아니었거든. DJ를 보러 간 게 아니었지. 나중에는 DJ들의 테크닉을 보려고 부스에 들어가보기도 했지만. 그게 아니면 댄스플로어에서 그냥 내 세계에 빠져들어 춤을 췄어. 진동수에 둘러싸인 채 눈을 감고 있으면 최면에 빠져드는 것만 같았어. 나는 내가 트는 타입처럼 보컬 내러티브가 명확하게 없는 일렉트로닉뮤직을 들으면서 정신을 놓는 걸 정말 좋아해. 진동수에 의한 스토리텔링과 업앤다운(ups and downs), 긴장감을 점점 구축해나가는 것… 내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게 바로 이거거든. 내가 내 역할을 제대로 해낸다면 사람들은 가끔씩 비주얼에 너무나 빠져들어서 자기가 뭘 보고 있는지조차 더 이상 알 수 없게 될 거야. 나는 사람들이 정신을 놓고 자신만의 특별한 세계에서 자기자신을 재발견하기 원해.



언제부터 퍼포먼스에 비주얼을 쓸 생각을 한 거야?
아마 90년대 말이었을 거야. 전형적인 500명 단위 클럽을 벗어나 페스티벌과 좀 더 큰 레이브 무대에 서기 시작할 때였지. 사람들이 서서 나를 쳐다보고 있고, 내가 좋든 싫든 간에 어쨌든 공연은 진행되고 있는 거야. 2000년대 말에 Contact를 비롯해 물론 Plastikman Live를 진행하면서는 조명 설계사들하고 좀 더 긴밀하게 작업할 수 있는 방식을 연구했어. 특히 내 친구인 Ali Demirel이 전형적인 스트로브 조명과 다색조명, 비주얼 오르가즘 포르노를 넘어서 내가 내 음악을 가지고 만들고 있던 진동수를 시각화하는데 큰 도움을 줬어.

초기 레이브를 보면 모든 게 최면적이었어. 그냥 어두컴컴한 방에 스트로보 조명 하나만 딱 있었지. 시각적 정보는 거의 없었어. 음악에만 빠져들 수 있게 뇌를 헤집어놓을 수 있는 장치 몇 가지를 제외하면 거진 음악적 경험이 다였지. 그렇다면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서도 최면성을 잃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뭐겠어? 모든 요소가 그 자체만의 가치를 지녀야 했어. 그러면서도 그걸 다 합쳤을 때 완벽하게 들어맞아야 했지.



새 CLOSE 체험을 창작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어?
처음 발상은 4-5년 전이었어. 나는 DJ 체험이라는 것이 시각적으로 꽤나 시시하다고 생각하거든. 관중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말이야. 거대한 LED 화면들이 있고 온갖 번쩍거리는 시각효과 속에 사람 몸뚱이는 제대로 보이지도 않잖아. 비주얼 프로그래밍과 조명이 아무리 좋은 것과 별개로 DJ의 미학과 페스티벌의 미학이 뒤죽박죽이 되지.

그것도 상당한 체험이 될 수 있지만 나는 그게 미학적으로 영 끌리지가 않더라고. 동시성이나 조직성이 거의 없어. 그 모든 이유 때문에 나는 아름답게 설계되고 인간의 형태와 장비들간의 상호작용을 강조하는 공연을 만들어내고 싶었어. 사람들과 현대 DJ의 창조성의 간극을 좀 더 줄여주고 싶었거든.

나는 디제잉을 하나의 예술형태로 생각해온 사람이야. 디제잉이 창조성과 즉흥성의 극도의 형태로 승화될 수 있다고 봐. CLOSE는 사람들로 하여금 예술형태가 어떤 노력을 해서 어떤 것을 지향하는지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하고자 하는 시도였어. 테이블을 치워서 사람들이 내 온몸을 볼 수 있게 하고, 내가 내 장비들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1만 명이 들어선 필드의 맨 뒤에 있는 사람이라도 볼 수 있게 함으로써 말이야.







음악을 만들기 위해 처음으로 사용한 장비는 뭐였어?
나는 Numark 믹서와 Technics 턴테이블 하나, 속도를 변환할 수 없었던 아빠의 턴테이블 하나로 부모님 댁 지하실에서 2년 정도를 보내면서 음악을 만들었어. 완벽하다고는 볼 수 없는 셋업으로 어떻게 비트를 믹싱하고 매치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했지. 내 믹서는 내가 당시 디트로이트에서 관찰하던 DJ들이 쓰는 것과 비슷한 5대역 EQ를 가지고 있었어. 그 장비로 사운드를 잘라내면서 음반에 극적인 변화를 줄 수 있었어. 그게 지금까지도 내 플레잉 스타일에 강한 영감을 주었지. 내가 80년대 말에 진짜 좋아했던 음반들은 디트로이트 테크노 음반들이야. Derrick May와 Kevin Saunderson 모두 이 특정한 미래적이고 메탈릭한 퍼커션 사운드를 가지고 있었지.

그러다 온타리오 런던(London)에 있는 내 파트너 John Acquaviva의 집에 갔는데 걔가 Roland TR-909 드럼머신을 가지고 있었어. 나는 그때 이미 음악을 가지고 이런 저런 장난을 치고 있던 때였는데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오는 일은 없었어. 그런데 그 장비를 켰는데 디트로이트의 주역들이 쓰는 것과 같은 완전히 새로운 음악적 진동수와 사운드의 팔레트가 펼쳐지는 게 아니겠어? 나는 그 순간 이렇게 다짐했어. “좋아. 이 장비가 있는 곳이 내가 갈 길이다.”







확실히 음악을 만들고 디제잉을 하는 방식에 기술이 막대한 영향을 미치지. 컴퓨터는 언제부터 쓰기 시작했어? 그게 퍼포먼스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궁금해.
80년대 동안 내 베프는 컴퓨터게임과 컴퓨터였어. 나는 프로그래밍을 진짜 좋아했어. 게임을 만드는 것이든, 화면을 번쩍거리게 하는 것이든, 모뎀을 통해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든 내가 하고 싶은 걸 컴퓨터한테 시키는 거잖아. 음악을 하기 전에는 내 내면을 깊이 탐구할 수 있는 자극제가 컴퓨터였어. 당시에는 DJ 부스에서 컴퓨터를 볼 수 없었지만 그래도 음악은 굉장히 기계적이었고 전자적이었고 컴퓨터화되어 있었지. 음악이란 게 뼛속까지 기술이 스며들어 있는 거거든.

아무튼 원래부터 컴퓨터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던 지라 90년대 말에 DJ 부스에 Final Scratch 같은 컴퓨터가 자리잡기 시작했을 때 나도 주저 없이 그 흐름을 탔어. 나는 늘 기술과 뭔가 통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덕분에 가능하리라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것들을 할 수 있게 되었어. 상자와 노브들로 이뤄진 장비들인데, 이게 또 늘 변화하잖아. 그리고 “이번에는 어떤 걸 해볼까? 이번에는 뭘 발매해볼까? 뭘 어떻게 해야 할까? 뭐가 맞고 뭐가 틀릴까?” 이런 질문들이 내게는 그 모든 것의 중심에 있어. 바로 그게 도전과제고, 바로 그게 재미지.



MODEL 1 믹서를 개발한 후로 디제잉 스타일이 어떻게 바뀌었어?
지난 10년간 나는 비슷한 믹서와 비슷한 장비들을 가지고 특정한 스타일로 음악을 틀었어. 디자이너 Andy Jones와 같이 앉아서 이렇게 생각했어. “만약에 우리가 새로운 DJ 믹서를 만들어내는 것에 에너지를 들일 거라면 좀 더 나은 사운드를 내는 측면에서 기존의 믹서들보다 더 나은 것을 만들어낼까,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뭔가를 만들어낼까?” 우리는 후자를 택했어. MODEL 1은 필터와 EQ 레이아웃을 새롭게 해서 색다른 플레이를 할 수 있게 해줘. 다른 믹서나 다른 플레잉 방식보다 더 낫다 아니다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대안이 되는 거지.

내가 좋아하는 말이 있어. “X까, 나중에 생각하지 뭐. 일단 해보자.” 내 프로젝트를 할 때 내가 이런 식이야. 나는 탐구하는 걸 좋아하고, 나를 코너로 몰아세우는 문제와 씨름하는 걸 좋아해.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내가 누구인지를 재평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좋아하지.



일렉트로닉 뮤직게임을 시작한 지 꽤 됐는데, 그 문화가 어떻게 바뀌어 왔다고 생각해?
일렉트로닉뮤직은 늘 DIY성이 강했어. 사실상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아있는 특정분야의 커뮤니티였지. 이제는 EDM 때문에 그 비밀스러운 커뮤니티가 다 까발려졌어. 그래서 우리의 익명성과 통제력, DIY만의 미학을 유지하는 게 더 어려워졌지.

예전에 같이 레이블을 했던 John과는 이제 투자회사를 같이 하면서 거의 100명 가까이 되는 DJ들을 초청해서 자금을 공동출자해서 창작을 하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기업들과 기술에 재투자할 수 있게 하고 있어. 어떤 면에서는 25년 전에 작은 음반회사를 세웠을 때보다 정말 많이 달라졌다고 할 수 있겠지. 이 씬이 얼마나 거대하고 복잡한지, 이게 어떻게 하나의 산업이 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결과야. Kraftwerk와 다른 몇몇을 제외하고 이 시기에 도달한 DJ나 일렉트로닉 뮤지션은 없어. 우리 중 대부분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잘 몰라. DJ의 직업수명이 얼마나 될까? 우리는 이제 여기서부터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이제 나이가 50줄 60줄 들어서면 템포 좀 낮추면서 20대들이 가는 클럽의 부스에 서지 말아야 할까? 아니면 바로 그게 이 모든 마법의 일부인 걸까?






사케를 정말 좋아하는데, 이야기 좀 들려줘. 처음 마셔봤을 때 어땠어?
나는 음악을 틀 때 나와 공명하는 진동수라든지, 진동수 이야기를 많이 해. 나는 우리 모두가 약간씩 다르게 진동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 그런데 우리가 함께 모이면 그게 음악이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이든, 여러 명의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든 합이 딱 맞을 때 동일한 진동수로 진동하기 시작하는 거지. 나는 1994년에 처음으로 일본에 갔는데, 나한테는 모든 게 말이 안 되는 거였어. 완전히 어안이 벙벙했지. 미래에 온 기분이었어.

나는 일본장비들로 음악을 만들던 사람이었으니까 내게는 마치 일렉트로닉과 기술과 테크노의 탄생지로 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 나는 그냥 가능한 많은 것을 흡수하고 싶었어. 클럽에 가기 전에 사람들과 함께 진짜 순수한 일본사케를 마시는데 그때 테이블에서 정말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어. 모두가 하나로 통했어. 그 느낌, 그 분위기, 그 대화, 모든 게 댄스플로어에 있을 때와 무대 위에 있을 때를 연상시켜줬어. 굉장히 최면적이었고 굉장히 자극적이었어. 심지어 당시 내가 만들던 음악도 꽤나 자극적이었어. 그때는 Plastikman이었고, 애시드 풍으로 가고 있었고, 밤늦게 나잇파티를 열면서 오픈마인드로 다양한 시도를 하던 때였어.

일본에서 기술에 둘러싸인 채 사케를 마시면서 이 자극적인 술에 취하는 게 내가 틀던 음악과 맞아 떨어지기 시작했어. 그러다가 2008년에 사케를 양조하는 친구를 한 명 만났는데 그 친구가 나보고 사케 소믈리에 과정을 들어보라고 권했어. 사케를 공부하고 사케의 세상에 깊이 빠져들면서 이 술을 기반으로 하는 레이블을 만들어야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어. 음악을 발매하는 아티스트들 대신에 비슷한 방식으로 사케를 발매하는 일본의 양조업자들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거야. Minus와 Plus8을 하면서 배운 모든 것들을 쏟아 부어서 새로운 여행을 시작해보는 거지. 그 모험이 지금도 진행 중에 있는 Enter Sake야.



패션으로부터는 어떤 음악적 영감을 받아?
초기에는 굉장히 강렬한 비주얼 미학을 가지고 있는 Erasure와 Depeche Mode 같은 밴드들이 있는 런던의 Mute Records로부터 영감을 얻었어. 내가 하는 것에도 그런 것을 구현하고 싶었어. 처음에는 음반 디자인부터 시작해서 차차 무대 디자인과 비주얼에까지 영역을 넓혀갔어. 그러다가 특정 시점에 나 자신을 미학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생각보다 강력한 힘이 있다는 것과, 그래서 사람들이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개념을 이해한다는 것을 깨달았지.

2000년대 중반에 전환기가 온 적이 있어. Raf Simons와 Rick Owens 등 내가 찾고 있던 미학을 가진 디자이너들을 찾은 거야. 나는 원래부터 블랙과 미니멀룩을 좋아했지만 내게 있어 패션에서 기능성을 빼놓을 수는 없는 거거든. 나는 호리호리하고, 안 그래도 약간 외계인 내지는 로봇 같은 분위기를 풍기기 때문에 사람들이 내게서 발견하기 바라는 것은 기계 안에 들어가 있는 어린 아이와 기계들 사이를 오가는 운동감과 거기서 발생하는 진동수야.

나는 가끔씩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우리가 다양한 감각을 가지고 어떻게 이 세상을 받아들이고 있는지 생각해. 사람들은 무대 위에 있는 내 음악을 듣고, 내가 말하는 걸 듣고, 내 사진을 보고 있는데 내가 누구인지 가장 잘 표현해낼 수 있는 방법이 뭘까?







아직 탐구해본 적 없는데 도전해보고 싶은 창조적 시도가 있어?
나는 사람들이 이전에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경험을 하게 하는 걸 정말 좋아해. 음악에서부터 시작해서 도망칠래야 도망칠 수 없는 완전히 몰입적인 360도 뷰를 구축하고 있어. 나는 함께 콜라보를 하고 있는 Anish Kapoor라든지 그냥 걸어 들어가기만 해도 모든 게 현실 같이 느껴지는 환경을 만들어내는 Tadao Ando와 Raf, Rick 같은 사람들을 정말 좋아해.

건축설계사들하고도 일하면서 음악을 위한 특별한 공간을 설계하고 싶어. 그 체험의 일부가 되는 모든 것이 특정한 모습과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는 디자이너들하고도 일하고 싶고. CLOSE와 이전 Plastikman Live 공연들을 넘어 3차원 안으로 들어가 공간의 더욱 깊은 곳을 탐험하고 싶어.



본 기사는 본래 [Highsnobiety Magazine] 15호에 실린 것으로, 현재 온라인스토어에서 구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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