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의 광대하고 황량한 풍경은 방문객들을 두 팔 벌려 환영하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상하게 친숙한 느낌이 든다. 극적인 화산지대의 점판암과 화강암, 달표면을 연상시키는 기괴하고 황량한 풍경, 폭포와 빙하가 장관을 이루는 아이슬란드는 [왕좌의 게임]과 [프로메테우스]에서도 그 위용을 드러냈다. 이렇게 쌀쌀한 날에 곳곳에서 증기가 뿜어져 올라오는 풍경은 특히 기묘하다. 택시운전사가 설명하길, 지면 아래 깊은 곳에서부터 분출되는 열기란다. 지열에너지는 아이슬란드에서 그 쓸모가 많다. 천연이고, 지속 가능하고, 게다가 고갈될 걱정이 없는, 영구한 에너지. 아이슬란드의 자랑 Björk의 상상력의 샘도 그렇다.
Björk Guðmundsdóttir가 마지막으로 [Mixmag] 커버를 장식한 때는 1993년 11월, 첫 솔로앨범 ‘Debut’를 발매하고 나서다. Björk 마니아들이 처음 생겨난 때, 마치 히피들(혹은 엘프들?) 사이에서 자란 요정 같은 신동의 주문에 온 세계가 걸려든 때였다. 그녀는 수수께끼를 노래하는 것만 같았고, 그녀의 노래는 그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것이었다. 우리는 그녀의 앨범을 이렇게 표현했다. ‘독보적이다. 그 어떤 것보다도 앞서 있다. 이전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지만 늘 꿈꿔왔던 격렬한 다방면의 곡들의 컬렉션이다.’
헤드라인 ‘Bonkers’는 그녀의 이질적인 외모와 색다른 개성에 대한 미디어의 집착에 초점을 맞췄을지 몰라도 Björk는 ‘Black Dog’를 리믹스로 선택한 것이나 가장 좋아하는 DJ가 Darren Emerson이라는 것에 대해 말하는 Björk는 세상 행복해 보였다. 그때부터 24년이 지나는 동안 그녀는 여덟 장의 앨범과 딱히 분류하기 힘든 수많은 혁신을 선보였고, 세상에 자신의 전대미문의 확고한 팝/아트 비전과 지칠 줄 모르는 음악적 정신, 음악계와 영화계와 패션계의 천재들과 협업하는 능력을 증명해냈다. 우리는 여전히 Björk의 주문에 걸려있다. 그녀는 한 세대의 프로듀서, 아티스트, 뮤지션, 가수, 디자이너, DJ, 창작인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어 왔다. 일렉트로닉뮤직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사람이 되었고, 여전히 그녀와 일렉트로닉뮤직, 그리고 클럽컬처는 서로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십대일 때부터 디제잉을 했어. 도저히 그만 둘 수가 없었어!” Björk이 늦은 아침의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말한다. “나는 레이캬비크에서 인구 8만 명의 도시에서 자랐어. 제대로 놀고 싶은 밤이면 바를 통째로 차지해서 놀았어. 친구들을 초대하는데 바가 작을수록 더 좋아. 그러면 나만의 파티 같거든. 다 끝나고 치울 필요도 없고! 그러다 그게 점점 커져서 브루클린에 가기 시작하면서 거기서 디제잉을 했어. 친구들의 커뮤니티도 있고, 테마도 있고 한데 그 중 하나는 베이스라인이었어. 나랑 Alex Ross, Brandon Stosuy, Dirty Projectors의 David Longstreth가 오후 네 시에 모이곤 했어. 중고서점에 가서 베이스라인, 바흐의 첼로 콘체르토를 들으면서 커피를 마시고 수다를 떠는 게 내 판타지였어. 그게 점차 발전해서 한 잔씩 하고 조금 알딸딸해지면 Public Enemy 베이스라인이나 애시드하우스 베이스라인, drum ’n’ bass 베이스라인으로 마무리를 하곤 했지. 그 다음엔 핸드클랩, 모로코 트라이벌 핸드클랩 트랙들을 듣다가 Steve Reich를 듣다가 60년대 걸그룹을 듣다가 r’n’b로 마무리를 했어. 8시간 뒤에 보니 하도 박수를 쳐댄 통에 손바닥이 시뻘개졌다니까!”
Björk를 만날 때 생기는 기대감은 그녀가 화려한 커스텀 마스크와 미래적인 기모노, 어쩌면 백조 차림으로 나타날 것만 같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슬란드에서 커피를 마시는 그녀는 실용적인 신발에 수수한 메이크업, 단정한 헤어컷, 네크라인에 자수가 들어간 짙은 보라색의 긴 드레스를 입은 일반인이다. 그녀의 고향 레이캬비크 근처에 있는 어느 친절한 카페의 2층, 환하고 간소하면서도 편안한 방에서 만난 Björk는 따뜻하고 편안한 태도와 빙하도 녹여버릴 듯한 미소를 가지고 있었다.
약속시간 15분 전에 도착한 Björk는 손을 흔들며 우리를 맞아주었다. 그리곤 우리가 헤드폰을 끼고 신보 ‘Utopia’를 처음으로 감상을 마칠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었다. 이제 51세에, 두 아이의 어머니인 그녀는, 뭐, 여전히 Björk다웠다. 나이를 먹지 않는 듯한 동안에 아이슬란드의 ‘rrrrs’ 억양과 스마트한 영어 구어체가 혼합된 특유의 말투까지. 요즘 그녀는 브루클린과 레이캬비크의 집을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 두 장소 모두 그녀의 유명세가 문제 되지 않는 곳이기 때문이리라. 그녀는 클럽컬처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 아홉 번째 솔로앨범에 등장하는 최신 컬래버레이터들과 공동프로듀서들이 바로 그 증거다. 그런 그녀가 이때부터 클럽 공연, 심지어는 바르셀로나의 Sonar Hall 등 보다 규모 있는 무대에 오르고 있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최근에는 런던의 Corsica Studios의 Hyperclub에서 비공개 DJ 셋을 펼치기도 했다.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디제잉을 한지 1년 반 됐어.” 1년 반이라면 그녀가 야외공연을 훨씬 선호한다는 사실을 깨닫기엔 충분한 시간이다. “밀폐된 공간은 싫어. 못 견디겠어. 창문이 좋다고! 그래서 내가 꼭 창문과 햇빛을 찾는 거야. 낮에서 밤으로 가는 게 좋아.” 그녀는 또한 DJ 컬처의 본래 순수한 의도인 음악의 공유를 추구한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번갈아 가면서 하는 걸 좋아해.”
“자기의 곡 컬렉션이나 모아놓은 자료들을 공유하고 서로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곡들을 소개시켜주는 거야. 내가 이렇게 말하긴 해도 나는 Pro Tools를 꽤 잘 다루거든. 그래서 몇 주씩 셋 에딧을 하면서 보내곤 해. (휴스턴의 유명한 프로듀서) Rabit과 (파키스탄의 작곡가 겸 뮤지션) Abida Parveen의 매쉬업도 여러 번 했어. 도쿄의 과학박물관에서 했던 것 같은 네 시간짜리 셋은 내 Digital 공연의 보완 같은 거였어.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한 시간 정도는 가벼운 음악을 하다가 와인 몇 잔 들고 나서는 r’n’b를 트는 거야!” 즐거워 보인다고 했더니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정말 즐거워. 그 여정이 정말 좋아. 하나로 통일되는 것보다는, 나는 세상의 모든 음악의 풍요로움을 축하하는 것 같은 디제잉을 좋아해. 진짜 찾기 힘든 월드뮤직부터 시작해서 Rihanna 음악까지 다 해. 하지만 그런가 하면서도 내 테크노 음악도 좋아하니까 진짜 강렬하고 거침없는 짐승테크노를 하는 파트가 꼭 있지. 나는 중도는 별로거든!”
테크노를 향한 Björk의 열망은 최근 몇 년 동안 그녀의 음악을 보다 흥미롭게 형성해왔다. 그녀의 2015년 앨범 ‘Vulnicara’는 어두움과 비탄으로 가득했지만(가사 예: ‘our love was a womb/but our bond was broken’) ‘Utopia’는 밝은 빛을 향해 그 방향성을 180도 틀었다. ‘Blissing Me’ 는 ‘서로에게 MP3를 보내는데 푹 빠져 있다가 한 곡을 사랑하게 되는 두 음악광’을 노래하고, ‘Feature Creatures’는 ‘사랑으로부터 5분 거리에 있는 것 같다’는 고전적인 가사를 친다. Björk와 베네수엘라의 프로듀서 Arca, 여성들로만 구성된 플루트 오케스트라의 순수한 콜라보의 결과다. “들리는 플루트 소리는 모두 12인 플루트 오케스트라에서 시작된 거야. 운이 신기할 정도로 좋았던 건 그 사람들이 다 금요일마다 시간이 나서 다 같이 내 오두막에 가서 리허설을 할 수 있었던 거야. 통짜로 플루트 앨범을 만들려면 가능한 다양한 색채를 담아야 하니까!”
‘Loss’의 멜로디와 프로덕션은 너무나 짜임새 있어서 개별적인 가닥의 처음 시작이 언제인지 알 수 없을 정도다. 이 트랙은 특별이 Rabit이 제작에 참여했으며 단점이 없는 앨범에서도 특별히 돋보인다. Björk과 다시 한 번 함께 일하게 된 것이 어땠냐고 Arca에게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토록 아름다운 것에 대해 함부로 말하기가 어려울 정도야. 마치 꿈꾸는 것 같으면서도 한 꺼풀 벗겨내면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께 음악을 만드는 순수함으로 가득해. 과장도, 축소도 하고 싶지 않지만 내가 지금껏 경험해본 가장 심원한 음악적 공감을 느꼈어. 보람과 도전, 자극, 에너지, 행복… 그 모든 게 다 있었어. 함께라야만 비로소 할 수 있는 뭔가를 하자, 이게 처음부터 약속한 목표였어. 경험과 시야를 초월하는 뭔가를 만들어내는 것이었어. Björk이 편곡과 가사를 다 했는데 내가 합류하면서부터는 우리 둘 다 같은 공간에 함께 있는 걸 좋아했어. 런던, 레이캬비크, 뉴욕, 어딜 가든지. 어쩔 때는 도쿄의 한 호텔에서 함께 곡을 듣기도 했어. 그 앨범의 모든 곡이 내게 의미가 있어. 음양의 조화가 있는 음반이고, 필요할 때는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기도 해.”
앨범의 하이라이트는 ‘Body Memory’다. 정신의 힘에 대한 서사시적 고찰로, 장장 10분 짜리다. “전 앨범에 ‘Black Lake’가 비탄의 바닥을 찍는 곡이었잖아. 내 무의식 어딘가에 ‘세상에서 가장 슬픈 곡을 쓸 거라면 세상에서 가장 기쁜 곡도 써야지’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 여기 아이슬란드에 있는 내 오두막에 돌아왔는데 좀 추워서 코트를 세 겹을 껴입고 호숫가에 누워서 하늘의 구름을 올려다보며 네 시간 동안 오디오북을 듣고 있었어. [티베트 사자의 서]였어. 그런데 책의 3분의 1은 카톨릭적이야. 선하게 살지 않으면 죽고 나서 어떤 굴에 들어가서 천 년 동안 불에 탄다고 하거든. 그런 내용이 좀 들어가 있어. 스스로를 채찍질해서 착하게 사는 거. 그리고 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어떤 부분은 유토피아적 삶에 대한 내용이야. 착하게 살면 라벤더와 호수와 공작새가 가득한 곳이 수십 킬로미터나 펼쳐진다는 거야. 결국 ‘Body Memory’는 죽음의 순간이 닥쳐올 때 나는 어떤 생각을 할까? 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마무리를 했어. 나 자신을 교훈하는 곡이야. 그걸 사람들과 조금이라도 함께 나눌 수 있으면 좋겠어. 절(verse)에서는 마치 머리를 쓰면서 게임을 하다가 신경과민이 되고 겁이 나다가 후렴에 가서는 몸의 기억이 치고 들어오면서 안정을 찾는 거야. 자녀양육이든, 사랑을 하는 것이든, 운명이든, 삶의 굵직굵직한 문제들에 있어서 자기 몸을 믿으라고 가르쳐주는 거지. 다 우리 DNA에 각인되어 있어서 마음을 놓고 몸의 기억에 맡기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본능적으로 알 수 있거든.”
그녀는 곡마다 개별적으로 어떤 ‘한 가지’에 대해 직접적인 영감을 얻기 보다는 다양한 원천에서 영감을 얻는다고 밝혔다. 그녀의 음악의 복잡성과 깊이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비결이다. “어쩔 때는 곡들이 세 가지 상황에 대한 것이면서도 하나의 특정한 정서에 초점을 맞추기도 하거든. 첫 번째는 자기 삶에 대한 정서일 수도 있고 두 번째는 친인척들, 세 번째는 영화에서 본 어떤 것일 수도 있어.”
1965년에 레이캬비크에서 태어난 Björk은 1977년에 자신의 이름을 딴 앨범을 낸 이래 뮤지션으로서 반향을 일으켜왔다. 그녀는 아이슬란드의 인디락 밴드인 The Sugarcubes에서 십대시절을 보냈으나 1992년에 밴드가 해체하고부터는 솔로활동으로 4천만 장 이상의 앨범 판매고를 올렸고 몇 번씩 월드투어를 했다. 2001년 아카데미 수상식에서 그녀가 입은 의상은 역대 최고의 오스카 의상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하지만 Björk이 어째서 우리의 세계에서 그렇게 중요한 인물인지 기억할 필요가 있다. ‘Post’부터 ‘Homogenic’을 거쳐 ‘Utopia’에 이르기까지, Björk의 지칠 줄 모르는 원동력이 되는 것은 한계를 뛰어넘고 언제나 음악적인 일관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그녀의 의지다. 영국의 선구적인 프로듀서 Nellee Hooper와 LFO의 Mark Bell (R.I.P.), 최근에 함께 한 Arca까지, 그녀는 누구와 함께 작업을 하든 늘 가장 최신의 동향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바닥’에 굳건히 버티고 선다. “‘Vulnicara’에는 열두 곡의 리믹스가 담겨 있는데 (프로듀서들의) 리스트는 당시 내가 함께 어울리던 사람들이야. 사람들도 내게 손을 내밀고, 나도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하지만 전반적으로 보면 유기적인 연관성이 있어야 효과가 더 좋아. 내가 내 본능을 따르지 않았거나 공통점이 별로 없는 사람과 콜라보를 했을 때는 결과물이 별로 풍부하지 않았거든.”
여성 일렉트로닉 프로듀서들에게는 익숙한 문제겠지만 Björk은 자신의 음악을 창작하는 것에 있어서 그녀의 역할이 종종 (남성) 컬래버레이터들보다 축소되는 것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해오고 있다. 그녀는 2015년에 [Pitchfork]와의 인터뷰에서 제작과정을 직접 맡는 분량에 대해 설명하기 전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내 발언이 여성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나는 얼마든지 목소리를 낼 거야.” 오늘은 거기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이 따랐다. “어쩔 때는 내가 비트를 만들기도 하고, 어쩔 때는 편곡을 하기도 하고, 어쩔 때는 에디터의 역할을 하기도 해. 그때그때 다른 역할을 맡아. 어쩌면 다 내 탓인지도 몰라. 내가 직접 에디팅을 하는 사진을 절대 안 찍으니까. 하지만 나도 모든 곡의 구조를 직접 감독하고 에디팅 해. 컬래버레이터들의 비트를 사용할 때는 내가 그걸 에디팅해서 곡으로 만들고 내 편곡과 멜로디에 배치해. 그렇긴 해도 컬래버레이터들을 까다롭게 고르지. 수동적인 사람은 원하지 않거든. 내가 수동적으로 하고 싶지도 않고. 내가 최근에 자리를 박차고 서서 목소리를 냈던 순간들은 내가 콜라보를 가장 많이 한 앨범을 만들기로 결정한 순간이기도 해!” 그녀가 웃음을 터뜨리더니 말을 잇는다. “하지만 이 말은 해야겠어. 남자는 저작자가 될 수 있는데 여자가 저작자를 하려고 보면 어느 순간 물거품이 되어 버려.” 하지만 최근에는 상황이 좀 좋아지고 있지 않냐고 묻자 그녀가 대답한다. “응, 그런 것 같아. 사람들이 이제는 다양성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것 같아. M.I.A., [FKA] Twigs, Kelela (같은 아티스트들은) 자기 앨범의 방향성에 대해서 굉장히 확고한 비전을 가지고 있어.”
Björk의 첫 솔로앨범 세 장에 참여했던 영국의 뮤지션 Marius de Vries는 그녀의 성장을 지켜봐 온 인물이다. 작년에 [라라랜드] 음악감독으로 오스카상을 수상한 그가 있는 LA로 전화인터뷰를 시도했다. “Björk의 호기심은 끝이 없어. 때에 맞게 문화와 상호작용하기도 하고. 그녀의 궤도를 함께 도는 건 정말 놀라운 경험이야. 그녀의 곡도 곡이지만 Björk을 정의하는 건 호기심과 대담함의 조합이야. Björk은 아티스트적 완성도도 높고, 자신의 길을 추구할 수 있는 용기도 있어. Björk이 자기확신과 자부심을 찾아가는 과정을 지켜봤는데, 그녀는 배우는 속도도 빠르고 늘 자신의 운명을 직접 개척해나가야 한다는 관념을 가지고 있어. 특히 음악업계의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말이야. 게다가 Pro Tools의 달인이지!”
‘Utopia’는 대부분의 Björk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컨셉앨범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Utopia’라는 타이틀을 왜 좋아하는지 알아?” 그녀가 묻는다. “다들 한 번에 알아듣거든! 요즘은 트럼프며 브렉시트며, 완전 비상사태라고. 나는 환경과 지구온난화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중이거든. 트럼프대통령이 미국은 파리기후변화협약(Paris Climate Agreement)에서 탈퇴하겠다고 했을 때 진짜 망연자실하더라. 하지만 나는 요즘 다들 DIY가 정말 필요한 것이며 우리 스스로 유토피아를 발견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고 봐. 우리 모두 재활용을 하고 채소를 길러야 한다는 거지! 그리고 나는 만약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 유튜브 등 가장 부유한 테크기업 열 곳이 1조원씩만 낸다면 그게 10조원이 돼서 지구를 복원할 수 있을 거라고 봐. 진짜 그렇게 해야 하는 건데 말이야! 나는 다음 세대에 대한 믿음도 가지고 있어. 13살짜리가 바다의 플라스틱 쓰레기를 모두 청소하는 방법들을 발견하고, CO2를 흡수할 수 있는 곰팡이를 기르는 생물공학자들이 있는 마당이니까. 그러니까 언젠가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야. 내가 누구보다 낫다는 거는 아니야. 다만 뮤지션의 역할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거라고 생각해.”
시간이 다 되어가자 Björk이 커피를 다 마시더니 작별인사를 하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잠시 뜸을 들였다가 유토피아의 주제를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꺼낸다. “낙천적인 게 사실 편해. 인생의 절반은 어두울 거지만 절반은 밝을 거거든. 안타깝게도 어두운 것만 보면 모든 게 다 어둡게만 보일 거야. 밝은 것에 포커스를 맞추는 게 인생이 다 잘 풀리기만 할 것이고 어두움이 존재조차 안 한다고 생각해서가 아니야. 이 앨범에도 어두운 순간들이 있어. 하지만 밝은 것에 포커스를 맞추면 어두운 것은 자기가 알아서 할거야.”
이 말을 남긴 Björk은 자신이 하는 모든 것을 통해 세상을 좀 더 밝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자리를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