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URES
DJ OF THE YEAR : Nina Kraviz
치열한 자주성, 음악적 대담함, 애시드테크노부터 80년대 팝까지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성
글: Jeremy Abbott 사진: Dan Medhurst | 2018-01-25
암스테르담의 Rush Hour 레코드샵의 창문에 김이 잔뜩 서려 있어 안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창 안쪽에 누군가 손가락으로 그린 스마일 얼굴그림을 통해 잘 들여다 보면 땀에 흠뻑 젖은 댄서들이 청취코너 사이사이 희게 칠해진 벽모퉁이마다 빽빽하게 몰려있다. 선반에는 코트들이 쌓여 있고, 레코드 슬리브는 열과 습기 때문에 축축 늘어진다. 그런데도 밖에는 안에 들어오려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오후 7시, 어느 한 레코드 레이블의 매장점거가 시 차원으로 진행되는 Amsterdam Dance Event에서 가장 뜨거운 인기를 누리고 있는 중이다. 화제의 레이블은 바로 трип Recordings (трип은 `트립`이라고 읽는다)다. Nina Kraviz의 디제잉이 진행 중이다.

요즘 трип Recordings에서 밀고 있는 신인 Deniro를 대동한 그녀의 출연과 이번 파티에서만 들을 수 있다는 세 장의 익스클루시브 바이닐 공개라는 조건에 좁다란 골목길에 있는 이 특별할 것 없는 음반점이 점장 Antal의 표현을 빌자면 두 시간 동안 `땀범벅의 클럽`으로 탈바꿈했다. "다들 끊임없이 몸을 흔들더라고요!"

하지만 사람들이 Nina의 음악에 몸을 흔들지 않는 때가 있을까? 사실 그녀는 2017년 한 해 동안 또 한 번의 수직 상승기류를 탔다. 이비자의 슈퍼클럽들을 비롯해 Sónar, closing Exit, Timewarp, Awakenings, Mutek, Kappa Futur 등 페스티벌 헤드라인을 도맡으며 세계적인 무대들에 빠짐 없이 등장했고, 그런가 하면 Krakow의 Unsound 같은 실험적인 행사와 Robert Johnson과 De School 같이 좀 더 작은 규모의 베뉴의 친밀한 공연에도 열심을 냈다. 게다가 그 모든 것을 그녀 자신의 방식대로 해냈다. 오히려 그녀의 인지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그녀의 셋은 점점 더 그녀만의 색깔을 갖춰갔다.





무대가 커질수록 Nina의 셀렉션은 거침없다. 더 나아가 스탠다드한 드랍과 빌드에서 그녀의 말마따나 일렉트로닉뮤직의 `연속체`라고 하는 것을 더 심도 있게 탐구하는 중이다. Nina의 라이브를 아직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그녀의 2017년 Essential Mix부터 시작해보길 추천한다. DJ로서의 Nina를 정의하는 모든 것이 담긴 강렬한 믹스다. 그런 다음에는 Rinse FM의 Unsound에서 Mumdance와 함께 한 B2B 세션으로 그녀의 놀라우리만치 다채로운 색깔을 확인해보자. 반면 Nina가 Trip을 통해 낸 ‘Pochuvstvui’ EP는 프로듀서로 진화한 그녀를 완벽하게 대변한다.

ADE가 끝나고 몇 주 뒤, 런던의 한 호텔 카페에 앉아 있자니 Nina와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그녀의 디제잉을 듣는 것과 비슷한 점이 많다는 사실이 문득 와 닿는다. 그녀와 대화를 하다 보면 소재가 바뀌고 이리저리 뻗어나가는 듯하다가 결국 하나의 주제로 돌아온다. 호리호리한 체형에 깔끔한 단발을 하고 카모플라쥬 티셔츠를 입은 그녀의 보디랭귀지는 확실하고 풍부하다. 시선을 피하는 일은 거의 없이, 밝은 미소와 눈빛, 웃음으로 자신의 의견을 뒷받침한다. 그러다 좀 음울한 주제로 넘어갈 때면 그녀가 풍기는 분위기 자체가 변하고, 듣는 이는 그것을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된다. 대규모의 관중이라도 그녀의 몸짓 하나하나에 몰입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녀가 태어난 시베리아의 이르쿠츠크(Irkutsk)에는 공산주의시대의 거대한 고층건물들과 19세기에 차르(Tsar)로부터 추방된 정치적 망명자들이 지은 그림 같은 나무들집이 공존한다. 겨울에는 영하 35도까지 내려가고 여름에는 35도까지 올라가는 이곳에서 Nina는 음악을 매우 중요시하는 집안에서 자랐다. 락과 재즈, 팝뮤직, 그리고 물론 디스코 애호가였던 아버지가 수집한 음악들은 여전히 Nina에게 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그녀는 Mixmag 커버를 촬영하던 당시 Tina Turner의 팬이라는 깜짝고백을 하기도 했다). Nina는 의학공부와 치과의사 등 다양한 진로를 탐색하다가 디제잉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레어 그루브와 디스코, 펑크, 70년대 사운드트랙,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녀의 음악의 대부분의 근간이 되고 있는 애시드테크노를 구사했고, 그러다 2006년에 ‘Hi-Brow Dance’ (“애시드라고 클래식한 디스코야. 다양한 디스코가 듬뿍 들어있어.”)라는 믹스 CD를 발매했다.

그러나 그녀가 업계에 제대로 존재감을 드러낸 때는 MySpaceRocket이라는 다소 시대정신이 깃든 이름의 밴드에서 노래를 할 때였다. MySpaceRocket은 앨범을 한 장 녹음했는데 DJ 개척자이자 에딧의 대가인 Greg Wilson이 두 개의 트랙을 계약할 정도로 관심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프로젝트는 실패하고 말았다. 밴드의 역량은 트랙들을 발매할 수 있는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게 불가능했고, 직접 앨범을 마무리해보려는 Nina의 노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걔네가 그러더라. ‘안돼, 넌 그냥 노래나 하는 사람이잖아.’ 그래서 내가 그랬어. ‘노래나 한다니, 무슨 의미야? 내가 아이디어도 내고 곡을 만들어내는 과정에도 참여하잖아.’ 그런데 그래도 나한테 역할을 안 주더라고. 진짜 화났었어.”





상처가 다 아물지 않은 듯 보이지만 Nina는 이로 인해 큰 교훈을 얻었다. 자신의 음악적 운명을 개척하는데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말라는 것이다. “처음으로 곡을 만들어보고 나니 나는 밴드가 필요 없다는 걸 알겠더라고! 눈이 확 뜨이는 경험이었어.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서도 음악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한껏 도취되어서는 네 달 만에 정말 많은 곡을 만들어냈어.” Nina가 돌파구를 찾기까지는 그녀의 DJ 활동보다는 2008년에 Underground Quality를 통해 낸 ‘First Time’ EP와 그 뒤를 이어 Rekids를 통해 낸 ‘Pain In The Ass’, 그리고 물론 2012년에 Rekids에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낸 환상적인 데뷔앨범 ‘Nina Kraviz’ 등 그녀의 프로덕션의 역할이 컸다

Nina는 늘 자기 주장을 고수한다.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거쳐 가는 세계적인 무대들에서 공연을 하는 그녀를 보면 가히 원맨쇼라 할 수 있다. 그녀는 매니저도 두지 않고 투어도 혼자 하며 레이블도 직접 관리한다. “매니저들의 역할은 대부분 명확한 구조체계에 기반을 두고 있거든. 그런데 나는 구조체계에는 관심이 별로 없어. 그보다는 그 흐름에 관심이 많지. 내가 어떻게 느끼느냐, 직관적으로 기능하는 거야.”




어쩌면 구조체계나 기대치를 거부하는 것이 DJ로서, 아티스트로서, 한 인간으로서의 Nina를 정의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스탠다드한 싱크와 EQ, 빌드, 드랍을 쓰지 않고 디제잉을 하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과, 아티스트로서 작품에 대해 얼마든지 혹독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취약성을 떠안는 것, 자신의 관중으로 하여금 댄스뮤직의 역사와 유산을 점점 더 깊이 있게 감상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서 말이다. 그리고 일단 하나의 역할을 완수했다고 느끼면 그녀는 이내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Nina는 몇 년 전 Cherrymoon Trax의 ‘The House Of House’를 재작업하는 등 자신의 셋에 독특한 클래식 트랜스 뱅어를 끼워 넣기 시작한 적이 있다. 그 완성품은 댄스플로어를 완벽한 광란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고, 수많은 다른 DJ들이 너도 나도 그녀의 방식을 모방했다. 하지만 Nina의 셋은 지체 없이 새로운 형식을 취했다. “여러 사람이 같은 걸 하면 재미가 덜하잖아. 그럴 때 나는 오히려 뭔가 새로운 걸 해야겠다는 자극을 받아. 나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예술이 흥미진진하고 짜릿한 거라고 생각하거든. 그러니까 예술이 미스터리하고 신비로운거지.”

물론 올해의 DJ가 되는 것의 현실은 그런 신비주의보다는 좀 더 단조로울 때가 많다. 수많은 팬들의 무리와 혼잡한 암스테르담 한복판을 걷다 보면 수많은 댄스뮤직 팬들의 버킷리스트 상위권에 Nina Kraviz와 함께 셀카를 찍는 것이 있음이 분명해진다. 클럽 안에서는 팬들의 그러한 바람이 더욱 강하게 표출되지만 그녀는 사진을 찍자는 요청의 90퍼센트 정도를 흔쾌히 받아들인다. “난 내 팬들을 굉장히 존중해. 하지만 한 가지 룰을 가지고 있는데, 내가 상호작용할 수 있는 사람들하고만 사진을 찍어. 최소한 1분은 시선을 맞출 수 있는 사람들 말이야.”

DGTL Festival의 거대한 베뉴의 수용인원은 1만 명에 달하는데 오늘 밤 티켓은 완전히 동이 났다. Nina가 동료 테크노 제왕들인 Modeselektor, Ryan Elliott, Jon Hopkins와 함께 헤드라이너를 맡았다. 그녀는 새벽 다섯 시가 되어갈 때 즈음 무대에 올랐다. 베뉴는 여전히 사람들로 빽빽하다. ADE의 정신과 Nina의 새벽 공연은 모두를 댄스플로어에 붙잡아놓기 충분하다.




공연하기 쉬운 시간대는 아니다. 너무 부드러우면 관중의 에너지가 푹 꺼질 수 있고 너무 강하면 파티가 끝나기도 전에 집중력을 잃을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관중을 읽어야 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Kraviz는 관중의 기대치나 바람을 곧이곧대로 맞춰주는 DJ가 아니다. “사람들이 나에게서 뭔가를 기대하면 늘 이상한 기분이 들어. 속에서 뭔가 반항심이 올라오면서 정반대로 하고 싶어진다니까.”

Nina가 즉흥 플레이를 펼친다(그녀는 셋을 미리 준비하는 법이 없다). 그녀는 자신의 음악을 통해 자신을 투영하고, 한 장소에 머물러있기를 거부한다. 그녀의 셋에는 뮤턴트 테크노와 파워하우스, 사람들로 하여금 긴장을 놓지 않게 하기 위한 변화구 한두 가지가 어우러져있다. Mathew Jonson의 ‘Deconstruction’의 dBridge 에딧이 페이스를 180도 전환시킨다. Kraviz의 지식의 깊이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Nina는 각 순간에 알맞은 음반을 찾기 위해서라면 시대를 가리지 않는다. “음악은 세대를 이어주는 연속체야. 30년 전에 만들어진 음악이라도 새로운 맥락에서 다시 완전해지면서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거든.” 게다가 Nina의 DGTL 셋은 그녀가 작년 초에 암스테르담 Dekmantel Festival에서 구사한 셋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때 그녀는 당시 최고의 하우스와 디스코, 펑크를 선보인 숲 속 파라다이스 Selectors Stage의 오프닝을 맡았었다.

그때 그 세 시간짜리 마스터클래스는 디스코의 진가를 보여주는 화려한 쇼였다. Nina로서는 자신의 사운드의 완전히 색다른 면과 그 끝을 알 수 없는 레코드백을 자랑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녀가 Charlie의 ‘Spacer Woman’을 우리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트랙들과 엮어낼 때는 마치 비트 하나하나가 햇살에 반짝이는 듯했다. 하지만 Nina가 2017년 한 해 동안 어떤 것을 경험했는지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녀가 얼마나 완벽주의자인지 깨닫게 된다. “나만한 자기평론가도 없을걸!” 그녀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한다. “나한테는 뭔가 특별한 걸 제공하는 게 너무 중요해. 물론 사람들은 이러겠지. ‘와, 너무 좋았어. 진짜 재미있었어.’ 하지만 나는 내가 어떻게 했는지 알잖아. 좀 더 잘 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 때는 약간 책임감을 느껴. 가끔 공연이 제대로 되지 않은 날에는 기분이 엉망진창이지.”



런던의 Field Day 페스티벌이 바로 그런 때였다. Nina는 1만 4천 명이 모인 The Barn에서 14년 만에 런던에 모습을 드러낸 Aphex Twin의 바로 앞 순서를 맡았다. 그녀의 커리어 중 손에 꼽힐 정도로 특별한 공연이 되었어야 했는데 기술적인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손에 꼽힐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은 공연이 되고 말았다. “거기 사람들은 좋은 시간을 보내려고 온 거잖아. 기대를 하고 왔는데 내가 부응해주지 못한 거지. 그런 일이 생기면 내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처럼 느껴져.”

그때를 떠올리며 인상을 쓰던 Nina가 특유의 스피릿으로 교훈을 찾아낸다. “그런데 그거 알아? 그래도 만약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서 그때의 상황을 바꿀 수 있다고 해도 난 안 갈래. 모든 경험을 통해서 뭔가 새로운 걸 배울 수 있거든.”

잠시 말을 멈춘 그녀가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더니 그녀가 그렇게나 감탄을 자아내는 아티스트임을 보여주는 말을 한다. “내가 지금까지 달려올 수 있었던 것은 이 일이 너무 재미있고 짜릿해서야. 음악에 대해 그런 흥분감이 없으면 안 돼. 나는 벼랑 끝에 서야만 창의력이 발동하거든. 뭔가 어떤 정서적인 경지, 혹은 엔진을 발동시키는 아드레날린 같은 게 있는 것 같아. 나는 그게 내가 DJ가 된 것의 전부라고 생각해. 음악에 있어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감정이야. 덱 뒤에 서 있는 것도 결국 사람이라고.”

2017년 동안 Nina Kraviz가 상승기류를 타는 데에는 그녀의 디제잉뿐 아니라 그녀의 레이블의성공도 한 몫 했다. 2014년에 탄생한 Трип (Trip)은 발전을 거듭해 댄스뮤직에서 가장 독특하고 변화무쌍하며 시각적으로 심오한 레이블로 자리잡았다.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방식으로 음악을 발매하며, Трип이 내놓은 음악들은 훨씬 더 스케일 큰 작품들 사이에서도 뚜렷하게 구별된다.

레이블 이름의 비화는 꽤나 단순했다. “내가 여행을 좋아하거든.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고 거기에 녹아들기 위한 노력을 해. 나는 호기심이 정말 강한 사람이야. 여행계획을 짤 때면 잔뜩 흥분이 돼. 가끔 일이 너무 힘들어도 여행을 한다는 생각 자체가 정말 좋아.”




Nina가 탄생시키고 포르투갈의 아티스트 Tombo가 그려내는 Трип의 미학은 음악과 그 음악을 만들어내는 아티스트간의 정서적 끈에 꿈에 나올까 무서운 낙서 같은 그림을 결합한다. 음악에 있어서 레이블이 추구하는 것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고 있는 인재들을 발굴하는 것이다. Deniro, Biogen, PTU, Exos, Roma Zukermann 등 독특한 테크노와 일렉트로, 애시드를 구사하는 수많은 DJ들과 프로듀서들이 그 수혜자다.

네덜란드의 Deniro는 2014년 Dekmantel에서 Nina를 처음 만났다. “보통의 레이블들은 유명한 사람들만 취급하려고 하는데 Nina의 레이블은 그렇지 않다는 게 진짜 좋아. Nina는 항상 자기만의 스타일을 가진 신인을 찾고 있어. Nina를 보면 내 트랙에 대해서 내가 느끼는 감정을 똑같이 느낀다는 생각을 하게 돼.”

Deniro의 ‘Organezized’는 Trip의 초기 EP인 ‘De Niro is Concerned’에 수록되었고, 최근에는 일곱 개의 트랙이 담긴 EP ‘Mendoza’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Trip의 가장 큰 성공은 아마도 Bjarki일 것이다. 아이슬란드의 프로듀서인 그는 ‘I Wanna Go Bang’으로 2015년에 크게 성공하며 Trip의 괴상하고 평범하지 않은 작품들이 어떻게 수많은 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Moodymann부터 Skream까지, 모두가 ‘I Wanna Go Bang’을 틀며 Bjarki와 Trip 모두의 인지도를 높였고, 덕분에 더 많은 작품이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다. Bjarki는 ‘I Wanna Go Bang’ 이후로 Trip에서 세 장의 앨범을 냈으며 Trip은 스무 장에 가까운 EP를 발매했다.







2017년, Biogen, PTU, Deniro의 EP들은 ‘Hessdalen’, 와일드한 일렉트로를 새롭게 시도한 Volruptus의 5곡짜리 앨범 ‘Hessdalen’이 그러했듯 때로는 사람들의 신경을 건드는 심히 혁신적인 일렉트로닉뮤직으로 정해진 틀을 깨부쉈다. 그러한 발매작들과 더불어 Trip만의 독특한 미학의 두 번째 가지가 뻗어 나왔으니 바로 독특하고 색다른 레이블 파티였다.

전세계의 이상하고 놀랍고 엉뚱한 장소에서 벌어지는 Trip 파티는 평범한 파티들과 정반대의 노선을 걸으며 마찬가지로 유니크한 아티스트들의 사운드를 선보인다. 헬싱키에서는 급수탑 꼭대기에서 레이브를 펼치기도 했고, 샌디에이고 항공우주박물관에서는 Kraviz와 Bjarki가 머리 위에 로켓을 두고 파티를 벌이기도 했다. 아이슬란드 외딴 곳의 동굴 레이브는 말할 것도 없다. 한편 Nina의 두 번째 레이블 GALAXID는 Species Of Fisher, Solar X의 앨범들과 일본의 화가 Keiichi Tanaami와의 아트웍 콜라보로 돌아올 준비를 마쳤다.

인터뷰를 마친 우리는 또 다른 레코드샵, 런던의 Kristina로 향했다. 오너인 Jason Spinks이 특별히 늦게까지 문을 열어둔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테크노를 비롯해 Nina가 좋아하는 Dance Mania의 희귀곡들로 그녀를 맞이했다. Nina는 눈을 빛내며 자그마치 두 시간 반 동안 레이저 포커스로 트랙을 틀거나 각 선반마다 빼곡한 음반들을 체계적으로 훑어보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관중도 없고 셀카도 없이, 오롯이 댄스뮤직의 역사만을 탐닉하는 Nina Kraviz는 마치 물 만난 고기 같았다.



Nina는 1월 27일에 암스테르담의 Awakenings, 2월에는 런던과 브리스틀에서 열리는 Junction 2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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