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뮤직 팬들은 주말마다 변화무쌍하게 차려 입고 파티로 향하지만 이 포용과 사랑과 진실함이 가득한 씬에서도 어둠을 틈타 문제를 일으키는 도둑들과 악당들이 있는 것이 슬픈 현실이다.
매번 사람들로 빼곡하고 주의 산만한 공간에 있어야 하는 DJ들과 출연자들은 절도범들의 먹잇감이 되기 일쑤다. 아티스트들이 반드시 지니고 다녀야 하는 랩탑과 짐, 여권, 다양한 고가의 음악장비는 작은 기회도 놓치지 않는 교활한 약탈자들이 군침을 다시는 목표물이다.
신참 로컬 DJ부터 세계적인 슈퍼스타까지, 아티스트들은 별의 별 방법을 동원한 이기적인 행위에 노출되어 있다. Nina Kraviz, Damian Lazarus, Grandmaster Flash, Eats Everything, Umfang, Matthew Dear, Kerri Chandler, Magda, DJ Paypal 등 유명한 DJ들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사유품을 도난 당하는 가슴 아픈 일들을 겪어야 했다.
모르는 사람이 와서 DJ의 USB나 음반, 헤드폰을 훔쳐간다는 것도 애석하고 기운 빠지는 일이지만 몇몇 절도사례는 아티스트의 지갑뿐만이 아니라 자신감과 창작품에조차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히기도 한다.
Mixmag은 그런 트라우마를 겪은 세 명의 아티스트를 만나 이런 부담스러운 상황과 악질적인 행위를 뒤따르는 정신적 고통을 심도 있게 파헤쳐보았다.
Daedelus
LA 일렉트로닉뮤직씬의 거물 Alfred Darlington (aka Daedelus)은 기상천외한 프로덕션과 기술에 정통한 퍼포먼스 기법으로 LA의 alt-electronic 배출에 있어 혁명적인 기폭제의 역할을 한 아티스트다.
2014년에 LA에서 열린 성대한 New Year’s Eve 파티에서 공연을 한 Daedelus는 몰래 백스테이지에 들어온 누군가에 의해 백팩을 도난 당하며 가장 소중한 물품들을 잃어버리는 불운을 겪었다. Daedelus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직접 겪어보지 않고 누가 그런 순간을 대비할 수 있겠어. 오랜 세월에 걸쳐 내 에너지가 고스란히 담긴 내 리미티드 에디션 Monome랑 몇 가지 소지품, 그리고 그 다음에 호주투어를 가야 했는데 여권까지도 다 털렸어. 기분이 진짜 진심으로 더럽더라.”
Daedelus는 한 해가 바뀌는 날 밤의 혼돈 속에서도 베뉴 곳곳과 주변지역을 뒤지다가 새벽 6시가 되어서야 집에 돌아가 인터넷에 공고를 올렸다. 팬들은 그가 도난을 당했다는 게시물에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끼리 서로서로 동네 전당포를 확인해보자고 독려하고, 갖가지 경찰조서를 샅샅이 뒤지고, Daedelus에게 자신의 장비를 주고 싶어 하기도 했다. Daedelus는 말한다. “만감이 교차하더라. 내가 속한 커뮤니티에서 그렇게 엄청난 응원과 도움을 받으니 그걸로 족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씬의 사람들이 대체 어떤 동기를 가지고 있는 건지 궁금해지더라고. 단 한 명의 악질적인 행동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을 의심하게 된다는 건 정말 소름 끼치는 일이었어.”
음악업계에서 정신건강은 DJ들과 공연자들이 절대 피해갈 수 없는 문제다. 눈코 뜰새 없는 공연일정과 기나 긴 밤, 어김없는 마약문제, 사람들의 높은 기대감과 이따금씩 불거지는 소셜미디어 입씨름도 모자라 장비와 개인소지품을 코 앞에서 도난 당하는 경험까지 겪다 보면 음악적 열정과 창작정신을 한결같이 유지하기가 정말 어렵다.
“그때 이런 생각들이 딱 들더라고. ‘내가 여기 왜 왔지?’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는 거지?’ ‘돈 때문인 건가? 아니면 뭔가가 더 있는 건가?’ 그 더 있는 뭔가라는 게 내게 너무 강력하게 다가와서 나는 예전보다 더 강력한 방식으로 이 일을 지속해나갈 수 있게 됐어. 덕분에 생존의 문제가 훨씬 더 큰 의미로 다가오게 되었거든.”
이제 음악계의 베테랑이 된 그는 이와 같은 비상사태를 이렇게 대비할 것을 권한다. “공연을 시작하기 전에 무대 뒤 기술자들과 보안요원들하고 말을 트는 습관을 들여. 그들을 문제해결을 위한 도구로 볼 게 아니라 사람으로 대하고. 서로 간에 이름을 알아두면 일이 빠릿빠릿하게 해결이 된다니까.”
Route 8
Lobster Theremin의 더스티하면서도 감미로운 사운드의 주인공 Gergely Szilveszter Horvath (aka Route8)는 로파이 하우스가 붐을 일으키는 동안 대박을 터뜨리며 댄스너드들과 유튜버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헝가리의 아티스트다. 소울 가득한 하우스를 제작하는 Route 8과 음울한 테크노를 구사하는 Q3A와 디스코 프로젝트로 어둔 밤을 밝히는 DJ Ciderman을 넘나드는 Horvath는 다재다능한 실력파 아티스트다.
2015년 11월, Route 8은 투어 파트너 Asquith와 함께 북미투어 데뷔차 디트로이트를 찾았다. 공연을 마친 후 프로모터의 자동차 안에 장비를 두고 잠시 식사를 하고 온 그들은 차에 도둑이 들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아, 안돼! 내 Elektron 장비!” 였지만 Route 8은 이내 Roland 그루브박스와 FNR 컴프레서, Yamaha 믹서, Macbook 랩탑, 옷, 미발매곡들이 들어 있던 백업 하드드라이브와 아버지의 둘도 없는 아날로그 카메라까지 다 털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국 투어 전 약속했던 라이브셋은 취소할 수밖에 없었고, Route 8은 그나마 남아있던 USB 스틱을 가지고 CDJ로 음악을 틀며 남은 투어를 마쳐야 했다. 그는 말한다. “그 신스들을 장만하는 건 내 오랜 꿈이었어. 그 일 이후에 투어를 마무리하는데 계속 허전하고 허탈하더라.”
도난사건으로 교훈을 얻은 Route 8은 그 후부터 고가의 복잡한 라이브셋업을 가지고 다니며 공연을 하기 보다는 자신의 DJ 셋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1년도 더 지난 일인데도 아직도 신스를 갖고 다니기 좀 그래. 그 일 때문에 아직까지도 라이브셋을 많이 안 하는 편이야.”
Route 8은 Elektron을 애용하는 다른 아티스트들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공항에 도착하면 호텔로 직행하는 게 좋아. 호텔방에 장비를 보관할 수 있도록. 귀중품을 자동차 트렁크에 보관하는 건 절대, 절대 금물이야. 잘 모르는 장소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군인들이 지키는 곳이라도 예외는 아니야. 제일 좋은 건 늘 신스를 옆에 끼고 있는 거고.”
Epic B
Riddim 뮤지션이자 브루클린에서 탄생한 서브장르 FDM (Flex Dance Music)의 선구자 Epic B는 뼛속까지 강타하는 댄스홀 뮤직의 선두주자다. 맨체스터의 레이블 Swing Ting의 눈에 든 Epic B는 NYC 스트리트 바이브와 하우스 풍 멜로디를 자메이카식으로 풀어가는 프로덕션을 선보인다.
얼마 안 된 일이다. 2018년 1월 31일, Epic B는 택시어플 리프트(Lyft)를 이용하던 중 돌연 교통사고를 겪고 인생이 통째로 뒤바뀌었다. 가까스로 부상은 면했으나 양아치 네 명이 사고현장에 접근했다. 혼란을 틈타 뭔가 챙겨보겠다는 심산이었다. 패거리는 Epic B에게 총구를 겨눈 채 아이폰 두 대와 현금 5백달러, Epic B의 작업물과 프로젝트가 들어있는 이동식디스크와 컴퓨터 두 대를 강탈해갔다.
“곡 작업하던 걸 다 잃었지. 무(無)에서부터 시작해야 돼.” Epic B가 사건 후 작성한 GoFundMe page 글이다. 비슷한 일을 겪은 다수의 아티스트들이 꾸준히 활용해오고 있는 모금사이트(GoFundMe)를 통해 Epic B는 도난 당한 물품들을 교체하기 위한 기금 3천 달러를 일주일도 안 되는 시간에 모았다.
그는 말한다. “The GoFundMe를 하면서 복잡한 심경이었어. 마음이 좀 불편하긴 했는데 나는 도움이 필요했거든. 내 친구들과 지인들뿐 아니라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사람들까지 기부와 나눔을 해주는 것을 보면서 진짜 고마웠어.”
Mixmag이 지금까지 피땀 흘려 해온 프로덕션에 ‘리셋버튼’을 눌러야만 했던 심경을 묻자 Epic B가 먼 곳을 응시하며 대답한다. “리셋버튼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르겠지. 오랫동안 모아온 사운드의 양도 엄청나고 아직 끝내지 못한 곡도 많은데 그걸 다시는 되돌릴 수 없게 됐어. 처음으로 돌아간 느낌이야. 그래도 옛날에 쓰던 컴퓨터와 하드드라이브에서 찾아낸 거랑 친구들이 공유해준 게 있으니까 토대는 마련된 느낌이야. 여기서부터 쌓아가면 되겠지. 덕분에 내게 주어진 것에 더 집중하게 된 것 같아.”
우리가 알고 있고 우리가 사랑하는 댄스뮤직 사운드를 뒤로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헤아릴 수 없는 시간과 두 번은 없을 창조적 노력의 산물을 한 순간에 잃어버린다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물리적인 장비를 잃는 것보다 더 괴로운 일이다. Epic B는 위에서 말했듯이 세상이 안겨준 백지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건설적인 마음가짐으로 다시금 열의를 불태우는 것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비결이라고 말한다.
댄스뮤직 커뮤니티가 안전한 장소를 구축하고 유지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긴 하지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원천봉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치게 순진하다. 도둑질과 같은 악질행위를 저지하고 아티스트 대신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진심으로 아티스트를 생각하는 것은 프로모터들과 보안요원, 관객들, 전반적인 양심적인 사람들의 책임이다. 더욱이 아티스트들은 우리에게 즐거움을 안겨주려고 온 사람들이다. 아티스트가 즐겁지 않으면 우리도 즐겁기 어렵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이 즐거운 하룻밤을 보내려면 팀웍을 발휘해야 하지만 아티스트가 감당해야 하는 책임이 가장 무거울 뿐이다. 다행히 DJ들이 클럽에서든, 집에서든, 길에서든 도둑들로부터 자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주변환경을 잘 알아두고, 귀중품은 눈에 띄지 않는 곳에 금고에 넣어 보관한다. 장비에 추적장치를 달고, 도난물품이 인터넷 중고시장에 뜰 때를 대비해 구매기록과 장비 일련번호를 기록해둔다. 백스테이지 스탭과 친분을 쌓고 출입구의 위치를 확인해둔다. 필요하면 인터넷에서 도움을 요청하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백업을 게을리하지 말 것.
이 중 백업하기는 단순히 도난방지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자기 음악을 주기적으로 안전한 위치에 백업하는 것은 Ableton 등에 들인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비극을 예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백업하는 습관을 들이지 않으면 복잡한 오토메이션과 두 번은 만들어낼 수 없는 스타일을 영영 잃어버리는 취약점이 남는다. 극심한 좌절감과 심리적 충격을 받고 싶지 않다면 백업은 필수다.
Daedelus는 말한다. “단지 물건 도둑 맞는 문제가 아니야. 작업실에서도 하드 백업을 안 해놨다가 뭐가 잘못되면 도난 당하는 것과 다를 바 없지. 그 도둑이 자기 자신이라는 게 문제지만. 그렇게 되면 정말 괴로운 일이야. 우리는 다 각자만의 이야기에서 주인공이잖아? 그런데 스스로가 믿지 못할 내레이터로 전락한다면 그건 정말 최악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