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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XIMUM LEVELS: 일렉트로닉뮤직의 글로벌현상을 일으킨 주역, AVICII
EDM의 혁명을 일으킨 스웨덴의 프로듀서를 기리며..
Valerie Lee | 2018-04-23
EDM을 세계무대에 세운 ‘Levels’의 슈퍼스타 Avicii에게 삼가 조의를 표한다. 그가 28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면서 댄스뮤직커뮤니티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내 또래들은 Avicii의 첫인상이 어땠냐는 질문에 하나같이 애정 어린 미소를 짓는다. EDM을 정의한 그의 음악은 하나의 거대한 물결이 되어 미국을 덮쳤고, 미국을 넘어 전 세계의 십대들이 댄스뮤직에 전향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지금에서야 보면 그 현상의 규모나 Avicii의 영향력이 너무나도 확실하지만 그때 당시에는 나를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덥스텝부터 빅룸까지, 일렉트로닉뮤직에 새로운 변화만 있다 하면 모조리 흡수하면서 아르바이트로 힘들게 번 돈으로 페스티벌 티켓을 사고 네온나인으로 차려 입고 그랬다. 혁명이었고, 그 배후에는 Avicii의 ‘Levels’ 같은 트랙들이 있었다.

‘Levels’를 처음 들었을 때를 떠올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아무리 나와 함께 댄스플로어에서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이라도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우리 모두에게는 기억에 남는 그 장면이 있다. 사람들로 꽉 찬 댄스플로어에서 어렵게 따낸 자리에 바로 옆에는 친구들이 있고, 친숙한 4x4 비트가 잠잠해지면서 Etta James의 ‘Something’s Got A Hold On Me’ 보컬이 강렬하게 치고 나오는 바로 그 순간 말이다. 숨조차 내쉬면 안 될 것 같은 잠깐의 침묵을 Etta의 꿰뚫는 듯한 코러스라인이 집어 삼키고 나면 갑자기 거침없는 멜로디가 ‘Levels’의 그 유명한 브레이크다운으로 이어지는 ‘Levels’와의 첫만남은 그야말로 극적이었다. 물론 그 후로도 등장할 때마다 터져 나오는 박수갈채는 변함이 없었다.





‘Levels’는 Avicii, 본명으로는 Tim Bergling이 한 시대를 풍미한 그의 커리어 동안 제작한 가장 뛰어난 트랙으로 기억될 것이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태어난 그는 18살에 처음으로 음악제작에 흥미를 갖고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해적판과 리믹스를 만지작거리다가 점차 자신만의 음악을 직접 만드는 것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으며 영감을 얻은 아이티스트로는 Daft Punk와 Steve Angello를 꼽는다. 그는 Laidback Luke의 프로덕션 포럼에 들어가 프로모션 음악을 올렸고 Laidback Luke에게 일주일에 다섯 곡씩 보내기도 했다. Avicii는 Laidback Luke로부터 영감을 얻어 하우스뮤직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 바 있다. 결국 Laidback Luke는 자신의 셋에 Avicii의 초기작들을 넣은 최초의 DJ가 되었다.





멜로딕한 하우스뮤직의 영역에 자리를 잡기 시작한 Avicii를 처음으로 알아본 사람은 Tiësto와 Pete Tong이었다. Tong은 issuing Avicii의 첫 발매음반인 ‘ManMan’을 발행하기도 했다. 그 후 Avicii는 Pete Tong이 호스팅한 2008년 Radio 1 경쟁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Avicii는 2010년까지 Robyn, Little Boots, Dizzie Rascal 등의 트랙을 리믹스했고 ‘Seek Bromance’ 등 몇몇 싱글을 발표했으며 자신의 오리지널인 ‘Bromance’의 보컬위주 버전(featuring Amanda Wilson)을 업데이트했다.

그러고 나서 탄생한 것이 ‘Levels’ (‘Le7els’라고 표기하기도 한다)다. Etta James의 샘플링이 담긴 이 트랙은 일렉트로닉뮤직을 에워싸고 있던 장벽을 허물고 팝과 라디오의 영역에까지 이르며 Avicii를 일약스타로 만들어놓았다. Avicii는 2012년 Ultra Music Festival에서 클로징을 했고 팝뮤직의 아이콘 마돈나와 함께하며 UMF 라이브스트리밍 조회수 기록을 갱신했다. 곧 이어 Nicky Romero와 콜라보한 ‘I Could Be The One’ 역시 대성공이었다. 이듬해에는 Aloe Blacc가 피처링한 싱글 ‘Wake Me Up’의 포크와 EDM의 환상적인 조합으로 UMF의 메인스테이지를 다시 한 번 뒤흔들며 기념비적인 순간을 만들어냈다. 2013년에는 ‘Hey Brother’와 ‘Addicted To You’ 등의 대박싱글을 수록한 앨범 ‘True’를 발매했다.

음악이 우선이긴 했지만 Avicii는 프로덕션을 넘어, DJ들과 프로듀서들도 다른 스타뮤지션들과 마찬가지로 문화적 아이콘으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길에 앞장섰다. Avicii는 Calvin Harris가 플래시세례의 주인공이 되기 훨씬 전에 먼저 Denim & Supply 기업 Ralph Lauren의 모델로 활동했다. 2012년에는 Coachella의 신성한 라인업 상위에 올랐고 Snoop Dogg과 Dr. Dre 같은 타이탄들과 어깨를 견주어 대망의 클로징 슬롯을 따내기도 했다. DJ Hero를 따라 한 자신만의 플레이스테이션 비트매칭 비디오게임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Avicii는 우상이었다.





하지만 엄청난 유명세와 성공에는 큰 책임이 따랐다. Marcus Dowling이 쓴 Mixmag 기사에 의하면 Avicii는 2011년부터 2016까지 261주 동안 전 세계를 돌며 약 220건의 DJ셋을 플레이했다.

로큰롤이 룰을 거부한다면 일렉트로닉뮤직에는 룰이란 게 아예 없다. Avicii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아마도 어쩔 수 없이 ‘락스타 DJ’의 삶을 살게 되었다. 그 220건의 DJ셋에는 220개의 그린 룸과 어리석은 향락의 밤이 뒤따랐다. Avicii는 2013년이 되자 불과 23살의 나이에 알코올중독에 의한 급성 췌장염에 걸렸고, 1년 후에는 극심한 복통 호소 후 담낭제거술을 받게 되면서 Ultra Music Festival 토요일 헤드라인 공연을 취소해야 했다.

정상의 자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은 날로 무거워져만 갔지만 그의 건강상태는 악화될 뿐이었다. 그는 2012년 초에 한 인터뷰에서 ‘너무 바쁘고’ ‘쉴 틈이 없어서’ 자신이 지금 어느 나라 혹은 어느 도시에 있는지도 잊어버릴 때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2013년 병원행 직전의) 오스트레일리아 투어 영상을 보면 Avicii가 페스티벌 공연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 해쓱한 얼굴과 멍한 표정으로 그 날이 무슨 요일인지도 모르고 투어매니저가 일정과 인터뷰를 확인해주는 동안 정신을 놓기 일보직전인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2014년에도 강행군을 계속했고 2015년에 발매된 소위 ‘완벽하다’고 하는 앨범 ‘Stories’를 완성하기 위해 장장 70개의 곡을 작업했다고 한다. 폭풍 같은 투어스케줄을 소화하는 와중에 Coldplay와 함께 또 다른 히트곡 ‘Sky Full Of Stars’도 탄생시켰다. Avicii는 GQ와의 인터뷰에서 공연에 대한 엄청난 압박으로 인해 심한 중압감을 느끼고 있으며 그에게 공연을 할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을 주는 것은 술뿐이라고 말했다.

25살 생일을 맞은 2014년부터 2015년 말까지 Avicii는 일상적으로 공연을 연기하기 시작했고, 그나마 하는 공연에서도 특유의 손짓에는 활기가 없었다. 하지만 그러한 명백한 징후들이 있었음에도 Avicii의 고속질주는 멈출 줄 몰랐다. 2016년, Inc Magazine은 Avicii가 유럽을 통틀어 여섯 번째로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이라는 기사를 냈다. 그는 Coldplay, Wyclef Jean, Jon Bon Jovi 등 거물급 아티스트들과 함께 일하면서 끊임없이 신곡을 발매했고 일렉트로닉뮤직의 경계를 넓히며 팝뮤직을 비롯한 다른 장르와 어우러질 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했다.





결국 2016년 봄, Avicii는 라이브공연 및 투어활동을 공식적으로 중단하겠다는 의사를 발표했다. 그는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다. "내가 너무나 많은 꿈들을 이룰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요. 우리 팀원들과 사랑하는 팬 여러분의 도움으로 내가 경험할 수 있었던 것들, 해낼 수 있었던 것들에 대한 감사를 영원히 잊지 않을게요.”

"한편으로는 절대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아요. 돌아올 수도 있겠죠.. 그게 당장이 되진 않겠지만요."

그는 8월 28일 Ushuaïa Ibiza에서 마지막 DJ셋을 펼쳤다. 그곳에서 5년간 해왔던 레지던시를 마무리하는 무대였다.

2016년 말 즈음, Avicii는 현대 일렉트로닉뮤직을 초월하는, 좀 더 역사적인 무게감을 가진 이름이었다. 그는 오랜 시간 함께 했던 매니저 Ash Pournourni와 그의 At Night 매니지먼트 팀과의 결별을 고했다. 그의 인스타그램은 슈퍼스타보다는 세계여행을 즐기는 보통 사람처럼 셀피들과 여행사진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이따금씩 작업실 사진도 올라왔다).





2017년 들어서는 대중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난 것이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듯했다. 그는 ‘AVĪCI’라는 제목의 새 EP의 일부를 공개하며 “다시 한 번 음악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진짜 신난다”고 했다. 투어 은퇴 이후의 Avicii의 여정을 동행하며 그의 작품활동에 포커스를 맞춘 다큐멘터리 True Stories도 나왔다.

EDM을 보는 관점이 어떻든지 간에, 마치 온 세상이 Avicii라는 젊은 슈퍼스타를 응원하는 것 같았다. 그는 프로듀서로서의 성공이 전혀 보장되지 않았던 18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그의 여정을 시작했다. 자신만의 직업윤리를 철저히 지키며, 프로듀서도 단순히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는 것 외에 훨씬 많은 것들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겠다는 결심을 지킨 Avicii의 유산은 일렉트로닉뮤직의 역사에 남을 뿐 아니라 너무 빨리 타버린 밝은 불빛에 대한 경종을 울려줄 것이다.



“언젠가 이 세상을 뒤로 하게 될 테니 기억에 남을 만한 삶을 살도록 해.
Avicii, ‘The Nights’ 가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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