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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elie Lens, 테크노 열풍을 일으키다
거침없이 질주하는 벨기에의 DJ/프로듀서
글: Annabel Ross 사진: Daniil Lavrovski | 2018-11-16

Amelie Lens의 팬들은 열성적이기로 유명하다. 그들이 무질서로 대변되는 Lens의 공연들에 몰려가는 통에 그녀의 공연은 늘 매진이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Lens가 진정 테크노를 사랑하는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스킬과 순전한 정서적 교감으로 풀어내는 전천후적인 테크노를 즐기기 위해서다. 소셜미디어에서는 그녀의 게시물, 영상, 그리고 사진마다 열광적인 반응 일색이다. 특히 Lens의 팬들은 공연장에 빈손으로 오지 않는다. 해바라기 꽃다발부터 ‘Amelie’라는 이름이 새겨진 현지 축구유니폼(지금까지 받은 것만 10벌), 세르비아에서 받은 베개, 우루과이에서 받은 ‘당신은 우리나라에 언제든 환영이에요’라고 적힌 거대한 깃발, 그녀의 음악에 어울리는 아트웍, 그녀의 모습을 직접 그린 재킷부터 그녀의 고양이들을 그린 그림(캔버스를 들고 남아메리카를 돌 수는 없었기에 Lens는 그림을 틀에서 잘라내 자신의 집에 자랑스럽게 전시해놨다), Belfast에서 받은 고양이 장난감들, 고양이장식이 있는 반지, ‘정말 감동적인 편지들’ 등 셀 수도 없다.


Lens는 말한다. “진짜 엄청나. 특히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들만 골라서 해준다니까. 정말 나를 실제로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이야.” 하지만 모든 작용에는 반작용이 따르는 법이고, 지난 2년 동안 Amelie Lens가 이룬 초고속 스타덤에 모든 사람들이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가 말한다. “내가 가장 사랑을 받으면서 가장 미움 받는 DJ라는 걸 어디서 읽은 것 같아. 그걸 보니까 ‘맞네, 나 그렇잖아’라는 생각이 들었지.”


그녀의 성공은 어딘지 모르게 `비현실적`이라거나 `거저 얻은` 것이라는 비판을 받을 때면, 특히 자신이 존경하는 선배들에게서 그런 평가를 받을 때면 마음이 쓰리다. 하지만 그녀는 이해한다. 윗세대 DJ들이 지금과는 다른 시대에 성장했다면 그녀는 발 디뎌본 적 없는 나라들에도 팬들이 있었다. 소셜미디어 덕분이다. Lens는 말한다. “모든 게 정말 빨리 이뤄졌어. 너무 빨리. 그러니까 이해가 가. 나를 증명하려면 10년은 더 걸리겠지만 난 그걸 해볼 생각이야.”


Amelie Lens는 자신의 고향 앤트워프(Antwerp)에서 1년에 딱 한 번 공연을 한다. 이번 공연 역시 그녀가 지난 18개월 동안 해온 다른 공연들과 마찬가지로 티켓이 매진되었다. 검은색 무지티셔츠 드레스에 닥터마틴 부츠를 신은 Lens가 Ampere 클럽의 덱 뒤에 서서 미소를 지으며 춤을 추는 모습에 관중은 넋이 나갔다. 앞쪽에 있는 한 여성팬은 자신의 티셔츠에 아멜리의 사인을 받고 싶은데 좀처럼 손이 닿지 않자 티셔츠를 휙 벗어 좀 더 가까이 있는 남성팬에게 건넨다. 그녀와 일면식도 없는 것이 분명한 이 남성팬은 아멜리가 전달받은 티셔츠에 자신의 이름을 휘갈겨 적는 동안 여성팬에게 자신의 티를 벗어주는 매너를 발휘한다. 이런 이상하리만치 친밀한 상황에 세 사람 모두 활짝 웃는다. 공연을 마치고 몇 분 간 팬들과 시간을 보내고 나면 Lens는 자신의 파트너이자 투어매니저인 Sam과 함께 택시를 잡아 타고 사랑스러운 고양이들 Winter와 Morris, Frank가 기다리는 집으로 향할 것이다. 내일이 오면 그들은 피렌체에서, 그리고 그 다음 날은 리스본에서 오늘과 같은 하루를 반복할 것이다.


비교적 무명 아티스트였다가 2년 만에 테크노의 가장 핫한 자산으로 성장한 Lens의 전형적인 주말 풍경이다. 28살인 그녀는 Awakenings와 Drumcode 등 대형 페스티벌무대에 올랐고 Pan-Pot의 Second State에서 낸 세 장의 EP 등 다수의 EP를 발매했으며 자신의 레이블 Lenske를 시작했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을 통해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는 팬들이 수십만에 이른다. 본지가 몇 시간 동안 앤트워프 주변을 돌아다니며 알게 된 바로는 Lens의 폭풍 같은 성장은 극단의 노력과 몇 차례 몰아친 엄청난 행운이 만난 결과였다.





Amelie Lens가 처음으로 테크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5살에 벨기에의 명물 Dour Festival에 참석하면서였다. 그녀가 아늑한 카페에서 소이카푸치노를 홀짝이며 말한다. “내 친구들은 뭘 보고 싶은지 아주 목록을 만들어 놓고 있을 정도였지만, 난 별 관심이 없었어.” 그녀는 역시 평소대로 Berghain 패션을 완성한 모습이다. 오늘은 블랙 새틴 보머재킷에 검은색 리바이스 배기바지, 블랙레더 아디다스 운동화다.


어린 나이부터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Lens는 홀로 Dour를 방황하던 어느 날 밤, 테크노 텐트에 들어섰다. 그때 누가 공연을 하고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스피커가 터질 듯이 비트가 뿜어져 나올 때 받은 느낌만큼은 생생하다. “루프가 굉장히 많은 어두운 곡이었어. 하이라이트 같은 파트도 없었고. ‘뭐 이래’ 싶었는데 완전 맘에 들더라고.” 테크노에 첫눈에 반한 Lens는 그때부터 혼자 기차를 타고 벨기에 전역을 누비며 테크노공연에 다니며 십대시절을 보냈다. “대화를 하러 간 게 아니었기 때문에 누굴 만날 일도 없었지. 그냥 음악을 들으러 갔어.”


한 번은 Boys Noize 공연에 갔다가 다음날 아침 10시가 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당시 함께 살았던 Lens의 할머니는 걱정이 되어 죽을 지경이었다. Dour에 갔을 때는 할머니에게 캠핑을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갔다. “나 진짜 말썽쟁이였지.” 그녀가 웃음을 터뜨린다. “할머니한테 엄청 죄송해진다.”


Lens의 할머니는 Lens의 팬들 사이에서는 유명인사다. 지난 해 8월에 열린 Pukkelpop Festival에서 80살 먹은 Lens의 할머니가 Amelie의 셋에 맞춰 춤을 추는 영상이 퍼졌기 때문이다. Lens가 말한다. “할머닌 내가 뭘 하는 건지 잘 몰랐어. 친구분들한테 손녀가 노래를 하며 세계여행을 한다고 말하곤 했지.” 그래서 Lens는 할머니에게 직접 보여주기로 한 것이다. 해당 영상이 페스티벌 분위기를 타고 한 편의 브이로그로 인기를 끌자 어떤 사람들은 Lens가 의도적인 홍보활동을 벌인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녀는 말한다. “얼토당토않은 소리야. 할머니가 내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데.”


Lens의 어머니는 홀로 Lens를 키우다 32살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5살이었던 Lens는 어머니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했다. 그 후 6년 동안 Lens는 이모들의 집을 전전했다. 이모들로서는 각자의 가족과 괴로운 시기를 보내는 어린 소녀를 모두 감당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11살이 된 Lens는 할머니의 집으로 보내졌다.


그녀가 말한다. “지나고 보니 우리 엄마가 돌아가신 후 처음 6개월이 정말 중요한 시기였더라고.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제대로 설명해주는 사람이 없었어. 엄마에 대한 이야기 자체를 안 했어. 이모는 엄마가 천국에 갔다고 했지만 난 천국이 뭔지 몰랐어. 너무 혼란스러웠지.” Lens는 ‘차갑고 폐쇄적’이 되었고 사람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지 못했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잠도 잘 못 잤고 잘 먹지도 못 했어. 완전 엉망진창이었지.” 한 동안은 그녀 자신의 아이를 갖는다는 생각도 엄청난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자신의 자식들도 똑 같은 일을 겪어야 한다는 두려움이었다. “그 일로 정말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난 그 사실을 전혀 몰랐어.”





그러나 어머니를 잃은 트라우마는 일분일초도 버리지 않고 가차없이 야망을 좇는 오늘날의 Lens를 있게 하기도 했다.


“나는 매주마다 이렇게 생각했어. ‘뭘 더 잘 할 수 있었을까?’ 내가 좀 더 안정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엄마가 돌아가시는 장면도 지켜보지 않았더라면 난 아마 좀 더 느긋한 사람이 되었을 거야. ‘다음 주에 하지, 뭐’ 하면서... 하지만 그랬다가 그 다음 주에 못 할 수도 있잖아! 난 지금 하고 싶은 거라고! 그리고 뭔가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 게 있으면 난 그걸 내 인생에서 없애 버려. 난 우울해질 시간도 없거든.”


Dour에서는 테크노 텐트 안에 들어선 것뿐 아니라 또 다른 일이 일어났는데 그것은 Lens의 인생에 크나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장신에 빼빼했던 15살 소녀는 텐트를 나서던 길에 모델에이전시에게서 스카웃 제의를 받은 것이다. 그녀는 말한다. "난 학교에서 예쁜 축이 아니었어. 키 크고 마른 애였지. 제의를 받고는 `엥?`` 이랬어."


하지만 막상 어린 나이에 시작한 리바이스 모델 일은 돈벌이가 확실했고, Lens는 할머니를 도와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들은 내가 모델이었다는 걸 가지고 뭐라 하지만 처음부터 DJ가 된 사람이 그렇게 많나, 뭐. 난 모델이 되기 전에는 화장실 청소부였어. 화장실 청소랑 모델 둘 중에서 고르라면 당연히 모델을 고르지.”


Lens가 10년 간의 모델 일을 딱히 즐거워했던 것은 아니었다. 특히 사람들이 이래라 저래라 하는 대로 따라야 하는 게 어려웠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늘 그렇듯이 그 일도 잘하게 되었다. 그녀는 파리에서 오랜 시기를 보냈고 장 폴 고티에(Jean Paul Gaultier)의 총애를 받았다. 그는 Lens를 ‘내 귀여운 벨기에 아이’라는 뜻의 ‘Ma petite Belge’라고 불렀다. 하지만 에이전시들은 디제잉이 Lens의 1순위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애초에 날 발견한 장소가 뮤직페스티벌이었으니 다들 알고 있었지.” Lens는 패션쇼 사운드트랙을 만들기도 했다. Lens는 한 번도 모델로 서본 적 없던 한 의류브랜드의 행사에서 공연을 해달라는 제의에 베이징까지 간 적도 있지만 베를린에서 팝 음악을 틀어달라는 다른 클라이언트의 제의는 거절했다. “난 그런 음악은 안 한다고 말했지.” Lens는 이미 다크한 하우스뮤직과 테크노에 푹 빠져 있었다.


그녀는 금요일이면 DJ 공연과 겹치지 않도록 모델 일을 거절하곤 했다. 런던에서 유명 사진작가 Tim Walker와 촬영을 하다가 앤트워프에 온다는 Raresh를 보러 슬그머니 셀프조퇴를 한 적도 있다. 막상 앤트워프에 도착해보니 Raresh의 공연은 그 다음 날이었지만. 한 번은 fabric에서 DJ Hell의 사운드에 무아지경에 빠져 있다가 자꾸만 전화가 오는 것을 무시하다가 문득 보니 전화벨이 아니라 알람이었다. 그날 아침 Harrods 촬영이 있었던 것이다. “클럽에서 촬영장으로 직행했어. 그들은 내가 원래는 얼마나 말이 많은지도 모르고 그냥 나를 엄청 느긋하고 차분한 애라고 생각했던가 봐. 나랑 다시 촬영을 잡더라고.” 그녀의 웃음보가 터진다.


테크노와 사랑에 빠진 지 3년 후, Lens는 Sam의 도움을 받아 디제잉과 트랙 프로덕션을 배우기 시작했다. Lens가 18세 생일을 맞던 날 밤 클럽에서 만난 두 사람은 공통된 음악취향을 바탕으로 유대감을 쌓아갔다. "Sam과 함께 스튜디오를 정말 많이 찾아갔어. Sam한테서 배우면 이해가 더 잘 됐거든. 유튜브 영상을 보기만 하는 것보다 뭐가 어떻게 되는 건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어. “난 직접 에딧을 만들어보기 시작했어. 다양한 킥을 넣은 올드스쿨 트랙들이었지. 그렇게 프로듀싱을 시작하게 된 거야.”





두 사람은 앤트워프에서 Matterhorn이라는 파티시리즈를 시작했고 Lens는 Rosalie de Meyer와 함께 한 Soren(두 사람은 뮌헨의 한 파티에서 DJ Hell과 함께 공연을 하게 되기도 했다)과 자신의 어머니의 이름인 Renee 등 다양한 예명으로 디제잉을 시작했다.


그리고 Lens는 모델 일과 디제잉, 프로듀싱을 병행하던 와중에 Sam과 함께 오트밀 회사인 Baerbar까지 차렸다. Lens는 건강에 매우 관심이 많다. “슈퍼마켓에 갔다가 엄마들이 자기 아이들에게 쓰레기음식을 사주는 걸 보면 정말 속상해. 처음에는 학교에서 팔 만한 건강한 스낵바를 만들고 싶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컵에 오트밀을 담아 팔게 된 거야.”


두 사람은 앤트워프에 3층집을 샀다. 1층에서는 오트밀을 만들었고, 2층은 음악스튜디오였고, 3층에 침실이 있었다. 그런데 오트밀이 출시하기 무섭게 히트를 쳤다. Baerbar에 빗발치는 수요를 맞추기에는 두 사람의 집이 너무 작았다. “우리는 모든 걸 직접 하곤 했어. 어느 날 밤은 컵에 과일과 오트를 담다가 너무 힘이 들어서 울었던 적도 있어.” 그녀가 웃음 짓는다.


이 시기에 Lens는 본명으로 디제잉을 시작했고 페이스북 페이지와 SoundCloud 계정을 만들어 팟캐스트를 올렸다. 몇 달 동안이나 여러 레이블에 트랙을 보냈지만 아무 성과가 없던 어느 날, 이탈리아의 레이블 Lyase가 ’Exhale’을 발매하고 싶다고 연락해왔다. Lens의 트레이드마크인 공기 반 소리 반 보컬이 두드러지는 밀도 높은 앳모스페릭 트랙이었다. 베를린의 듀오 Pan-Pot 역시 ‘Exhale’을을 듣고 계약의사를 밝혔지만 Lyase에게 선수를 빼았겼다. 그래서 Pan-Pot은 Lens에게 연락해서 그녀의 다음 음반을 계약하고 싶다고 말했다. Pan-Pot의 Thomas Benedix는 Lens의 ‘거칠면서도 신선한 사운드’에 마음을 빼앗겼다고 말했다. “내가 보기에 Amelie는 90년대의 올드한 애시드사운드를 부활시키고 있었어. 소싯적에 이렇게 에너지 넘치고 속도감 있는 테크노를 듣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완전히 잊고 있었어. 그리고 Amelie가 거기에다가 자신만의 신선한 영향력을 불어넣는 방식이 너무 좋았어.”


“처음으로 스카이프 통화를 할 때 울었어. 그냥 너무 행복해가지고.” Lens는 Pan-Pot 멤버들을 ‘가족’이라고 부른다. ‘Exhale’의 팬이 된 유명인사는 그들만이 아니었다. MaceoPlex도 합세했다. Lens는 말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직 되게 작은 공연들에서 음악을 틀고 있었어. 그런데 누가 Maceo의 공연영상과 함께 ‘요, 이 트랙 네 거 아니야?’ 라고 묻는 메시지를 보내왔어. 나는 울음을 터뜨렸고 Sam이 들어와서 ‘왜 그래?’ 라고 물었어. 나는 그냥 이렇게 외쳤지. ‘이것 좀 봐!’”


2016년 9월, Lens가 처음으로 Pan-Pot과 함께 공연을 하기 시작하던 어느 날, 그녀는 덱 뒤에서 정신을 잃었고 Pan-Pot은 그녀를 집에 돌려 보냈다. “진짜 너무 속상했어.” 하지만 그것은 그녀에게 꼭 필요했던 일종의 경고였다. Lens와 Sam은 즉시 Baerbar를 그만뒀다. “그 어떤 공식발표도 없이 그냥 접었어.” 그리고 그녀는 에이전시에 전화를 걸어 모델 일도 그만 두겠다고 말했다. “회사에서 잘 됐다면서 엄청 축하해줬어. 아마 샴페인도 땄을 걸. ‘드디어 결심이 섰구나!’라고 해주더라고.”





Lens는 음악에 전념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눈썹이 휘날릴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Richie Hawtin은 ADE 2017에서 그녀를 보고는 그야말로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녀는 대부분 남성들로 이뤄진 DJ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는데 대표들은 다들 그 자리에 서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어. 음악을 틀려고 하는데 사람들이 뒤에 꼼짝 않고 서 있는 거 난 그거 진짜 싫어하거든. 너무 거슬려! 그래서 나는 댄스플로어에 가서 춤을 추기로 했어. 내가 있던 곳에서는 Amelie가 안 보였고, 나는 그녀의 음악 속으로 빨려 들어갔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강력한 테크노 음반들이 어우러진 믹스였어. 거칠지만 하드하지 않게, 빠르게 고동치면서, 최면적이었고 에너지가 넘쳤지. 너무 거칠지도 않으면서 춤 추는 대신 행진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을 주지 않는 테크노 셋을 듣는데 솔직히 기분 너무 좋더라. 분명 강렬한 믹스였는데 그 기본 바탕에 재미와 중독성이 있는 그루브가 있었어.”


Pan-Pot의 레이블에서 발매된 작품을 통해 Lens에게 마음을 빼앗긴 Adam Beyer는 그녀가 `독특하고 순수한 형태로 시대를 초월하는 테크노`를 구사한다고 묘사한다. "그녀를 보고 있으면 그 열정이 느껴져. 그런 에너지를 가진 DJ는 몇 안 돼. 그게 바로 `잇` 요소지."


Lens는 자신도 Richie Hawtin처럼 본인의 커리어의 모든 측면을 통제하는 것에 집착한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내 에이전트(벨기에 하셀트의 Labyrinth 클럽의 UgurAkkus)가 나랑 계약할 때 ‘당신은 아무것도 못 얻을 거야. 내가 다 거절할 거니까!’라고 말했던 적이 있어.” 지금 그녀의 스케줄을 생각해보면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처음에 그녀는 공연오퍼를 자주 거절했다. 특히 특정한 목적지에 팬층이 충분히 두텁지 않다고 생각되면 공연을 잡지 않았다.


“나한테는 타이밍이 전부야. 그런데 어떤 곳에서 공연을 하는 게 아직 너무 이르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되게 많았어. 그러면 내 페이스북 페이지와 통계자료를 들여다보곤 했고, 어떤 나라들에서는 공연을 하는 게 너무 불안했어. 아무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거든. 그런 요청들이 어디서 오는 건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나라에서 공연 헤드라인을 맡는다는 게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내가 이해를 못 했던 것 같아.”


렌즈는 스스로에게 엄청난 압박을 가한다. 그녀는 각 도시마다 어떤 아티스트들이 가장 인기 있는지 낱낱히 조사하고 그에 맞춰 셋을 바꾼다. 베뉴 오너들에게는 그들의 클럽에서 최고로 좋았던 날이 언제였는지, 어땠는지 물어본다. 자신이 오는 날이 더 좋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 그녀는 준비를 한다. 자신의 순서 전과 후에 누가 공연을 하는지, 클럽의 레이아웃은 어떤지, 클럽이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연구한다. 자신이 공연하는 시간에 맞춰 자신의 셋을 손보고, 덱 위에 오르기 전에 최소 20분 정도를 들여서 관중들을 관찰하기까지 한다. 운에 맡기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시 앤트워프. 그녀의 셋이 끝나자 앞쪽에 있는 사람들은 땀에 흠뻑 젖어 있다. Lens의 셋에 소강상태는 없다. 끝 없이 춤을 추는 혜택만이 주어질 뿐이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강철 같이 매서운 드럼 클래터와 락 느낌이 진동하는 기타라인에 보컬로 화룡점정을 찍은 미발매 트랙을 선보인다. 곡이 페이드아웃되자 관중은 양손을 번쩍 든 채 클럽이 떠나가라 환호를 하고, 휘파람을 분다. 그들의 얼굴은 하나 같이 ‘하트 눈을 발사하는 이모티콘’ 같다.


우리의 DJ도 관중에게 백만불짜리 미소로 화답한다. 자칭 통제광이라는 Amelie Lens, 그녀는 지금 인생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그냥 봐도 알 수 있다. 저 미소는 진짜니까. Amelie Lens는 진짜다. 그리고 지금 그녀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Amelie Lens는 11월에 Lenske를 통해 Basiel’ EP를 발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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