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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digy의 Liam Howlett: Rave는 마땅히 받아야 할 인정을 못 받고 있다
Liam, 힙합, 90년대 레이브, 투어에 대해 입을 열다
글 & 인터뷰: Thomas H Green 사진: Andrew Cotterill | 2019-02-07
클럽컬처의 거장 The Prodigy는 레이브 생존자들이다. 그들의 콘서트와 음반에 레이브의 미친 에너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1992년 데뷔앨범만 빼고 그들의 앨범 여섯 장 모두가 UK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2018년 발매된 7집 ’No Tourists’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밴드의 전면에서 보컬과 춤, 하이프 담당은 Keith Flint와 Maxim Reality지만 음악을 책임지고 있는 것은 Liam Howlett이다. 에식스(Essex)에서 나고 자란 그는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친 경험과 일찌감치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힙합을 레이브 붐 때 접목시켰고, XL과 계약을 맺은 The Prodigy는 시대를 풍미하는 밴드가 되었다. 1997년에 낸 ’The Fat Of The Land’와 그 수록곡 ‘Firestarter’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지만 The Prodigy는 다른 뮤지션들과는 달리 2009년에 낸 `Invaders Must Die`로 열풍을 일으키며 받은 탄력으로 댄스뮤직의 정상의 입지를 유지해오고 있다. Howlett의 Kings Cross 스튜디오에서 그를 만나보았다.



신보가 마치 쓸 수 있는 장비 범위를 의도적으로 제한한 것 같은 다듬어지지 않은 느낌이던데...
확실히 그렇지. DIY 로파이를 의도했어. 내가 하고 싶었던 건 컴퓨터를 테이프기계처럼 쓰면서 이것저것 즉흥적으로 해보는 거였거든. 나는 컴퓨터 앞에 너무 오래 앉아 있는 걸 진짜 싫어해. 음악을 직접 하는 걸 좋아하지. 나는 플러그인이고 뭐고 그런 것들의 새로운 흐름에 별로 관심이 없어. 사운드가 다들 비슷비슷해지는 것 같아가지고.


신곡 ‘Timebomb Zone’에는 해피 하드코어 느낌이 좀 있더라.
당연하지. 이전 앨범 ‘The Day is My Enemy’는 상당히 극단적이고 폭력적이야. 그때 우리 밴드가 좀 열이 올라 있었거든. 이것도 박진감은 그때랑 똑같은데 스트리트 스웩이 좀 더 있어서 초기 때 느낌을 좀 살렸어. 좀 더 사악한 레이브로. 나는 내 뿌리가 진짜 자랑스럽거든. Rave는 마땅히 받아야 할 인정을 제대로 못 받고 있어.






‘Back to the 90s’ 파티나 TV 쇼를 보면 죄다 Oasis 대 Blur 아니면 The Spice Girls다. 약간 잘못된 묘사가 아닌가 싶다.
그렇지. 보면 주로 락이잖아? 그래서 우리가 이걸 다시 되짚고 싶은 거야. 레이브는 겁나 어마어마한 문화라고. 브릿팝은 사실 문화였다고 할 수도 없지.


미디어의 생산이었던건가.
맞아. Oasis가 나왔을 때 나도 팬이긴 했지만 난 기타음악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 Oasis의 펑키함이 좋았어. 그런데 Blur를 좋아한 적은 없어. 그런 쪽은 아예 취양이 아니었어. 처음에는 이스트런던 해적 라디오방송 외에는 듣고 싶은 게 아예 없었어.


아까 ‘밴드가 열이 올라 있었다’고 했는데...
다 그런 거지, 뭐. 남자 셋이 같이 커 가는 거지. 맨날 서로 붙어 가지고. 가끔은 진짜 빡세긴 한데 그래도 이번 앨범은 지난 번 거보단 훨씬 쉬웠어. 맨날 싸우는 게 나랑 Keith인데 지금은 괜찮아. 앨범을 만들려면 그런 시간도 필요해. 나도 걔네도 답답해. 생각을 해 봐. 걔네가 들어와서 보컬을 해 보는데 사운드가 꽤 괜찮은 거야. 그런데 그 다음 주에는 또 완전 달라. 그러면 그건 넣어두고 다른 걸 작업하는 거지. Keith랑 나는 함께 일하는 동료이기도 하고 베프이기도 해. 그 두 가지가 함께 어울리기가 쉽진 않아. 우리도 나름 그 중간점을 잘 찾아보려고 노력을 많이 해. 다만 여기에 들어올 때에는 친구 사이는 문 밖에 잠시 내려놓고 오는 거지.


‘No Tourists’는 무슨 뜻인지?
의식의 흐름대로 따라 가는 게 얼마나 쉬운 지에 대한 거야. 아마 폰 때문이겠지. 사람들은 탐험을 하는 법을 잊어버렸어. 패키지여행을 하다가도 삼천포로 빠졌을 때 미지와 짜릿함이 있다는 걸 상기시켜주는 거야. 어쨌든 해석은 자유지만.


사람들이 The Prodigy의 음악을 정치적 이슈에 대한 분노표출로 받아들이기도 하는데?
전혀 문제 없어. 90년대에 세르비아 애들이 ‘Firestarter’를 앤썸으로 삼더라고. 혁명의 사운드트랙으로, 자기들한테 엄청 의미 있는 곡이 된 거지. 그 얘기를 듣는데 울컥하더라고. 반군을 대표하는 건 언제든 환영이야. 대신 설교질을 하고 싶은 생각은 절대 없어.


이번 앨범도, 저번 앨범도 꽤 맹렬한 사운드인데, 항상 화가 많이 나 있는지?
난 아마도… 화가 좀 있긴 한 것 같아(웃음). 왜 항상 그렇게 느끼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모르겠어. 그게 뭐든 간에 신경은 안 꺼. 어쨌든 그 덕분에 음악을 쓰고 나 자신을 표현하는데 도움이 되니까. 나는 음악에 텐션이 있어야만 흥미가 가거든.


The Prodigy의 음악에는 상당량의 힙합이 꼭 들어간다. 처음에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힙합 아티스트가 누구인지?
Public Enemy 했던 The Bomb Squad. 가사의 (Nation of Island 리더 Louis) Farrakhan이나 Malcolm X에 딱히 공감을 했던 건 아닌데 그 외에 다른 것들이 와 닿았어. 보이스 사운드라든지, 귀에 때려 박히는 비트라든지. 그리고 Paul C. 비록 살해당했지만 Ultramagnetic MC들의 비트와 뉴욕의 수많은 힙합 음반들을 탄생시킨 주역이었지. Marley Marl은 뛰어난 프로듀서야. 그러다가 Wu Tang이 나왔는데 금 체인이며 돈이며 그딴 것들을 다 걷어내고 다시 스트리트 정신으로 가식 없이 하더라고. 나랑 내 Chelmsford 크루는 Kiss FM의 Westwood를 듣곤 했는데 하루는 그가 ‘재밌는 거 해보러 야머스(Yarmouth)에 가는 중’이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우리도 냉큼 가 봤지. 그때가 1989년이 딱 시작될 때였는데 완전 NWA ‘Straight Outta Compton’ 이었어. 좋았는데, 그러다가 Westwood가 마지막 튠을 트는데 애시드 하우스 파티가 된 거야. Lil Louis였는지 뭐였는지. 무슨 휘장 같은 걸 잔뜩 내리고 스트로브를 키고 말이지. 내 친구들은 “XX, 가자.” 했는데 나는 “나 이거 들어보고 싶어.” 그랬지. 힙합인들은 죄다 자리를 뜨고 무슨 좀비들 같은 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여들었어. 난 발코니에서 그 광경을 다 바라보고 있었어. 힙합은 늘 벽에 기대서 공연에만 집중하는 게 전부였다면 내가 거기서 본 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거였어. 춤을 추고, 소통하고, 여기저기 어슬렁거리면서 이야길 하는 거 말이야. 음악이 어떻게 그렇게 심플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됐어. 1시간 동안 지켜보다 떠났지만 그걸로 충분했어…


그때 하우스 파티에 꽂혔던 것인지?
그때 나는 올드스트리트(Old Street)의 잡지사 Metropolitan에서 일하고 있었어. 어느 날 아침 출근길에 레이브에서 돌아오던 친구를 만났는데 걔가 이러더라고. “야, 너 진짜 여기 같이 가 봐야 돼. 완전 장난 아니야.” 결국 몇 주 뒤에 파티에 가게 되었는데 그게 그 해 내내, 그리고 1990년까지 이어진 거야. 나도 Acid(LSD)를 하곤 했지만 나는 늘 신중했어. ‘그거 세 개 줘 봐. 어떻게 되는지 보자’는 식은 아니었지. 조심스럽게 시작했어. 나는 그전까지는 Weed만 했기 때문에 나한테는 새로운 영역이었거든. 아무튼 몇 달 밖에 안 했지만 마음이 완전히 열렸어. 닳고 닳은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덕분에 영감을 더 잘 얻을 수 있었지. 가장 좋았던 건 나가서 약을 하는 게 아니라 음악을 듣고, 음악을 쓰러 집에 돌아오는 거였어.


나중에 세게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을 때 에식스 전원의 한 맨션을 사서 수영장을 검은색으로 칠했다고 들었다.
응, Merks Hall이야. 2층짜리 건물인데 집 내부 전체를 검은색으로 칠했어. 원래는 Keith 옆집에 살았어. 헛간과 독채가 딸린 부동산을 매입했는데 그 모든 걸 Keith랑 같이 했어. 그렇게 나란히 살다가 어느 날 내가 길을 따라서 운전하고 가다가 들판 건너편에 있던 그 집을 본 거야. 숲 속 한 가운데 있는 이 정신 나간 집에 왠지 모르게 끌리더라고. 결국 사버렸지. 그 집에 딸려 있는 땅이 커서 나는 오토바이를 타고선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소음을 내며 돌아다닐 생각에 신이 났지.


The Prodigy하면 자동차, 오토바이, 스피드, 속력이 연상되는데…
90년대에는 늦은 밤에 말도 안 되는 스피드로 달려도 경찰 헬기가 따라오거나 하는 일이 없었어. 사실 바이크 레이싱은 Keith가 더 좋아해. 나로서는 길에 있을 때가 아니면 늘 음악을 해. 앨범을 끝내더라도 난 여기 와서 비트를 쓸 거야. Keith는 바이크레이싱을 하면서 무대에서 얻지 못한 아드레날린을 얻어. 우리가 옆집에 살 때 하루는 내가 집안에 있었는데 마당 건너 Keith의 집이 보였어. 그런데 울타리 위로 Keith의 머리가 요리조리 떠다니는 거야. 얘 뭐하나 싶어 봤더니 고카트를 만들어서 지가 만든 트랙 위로 타고 있더라고. 완전 웃겼어.


투어 경험이 많은데, 건강을 지키는 자신만의 비결이 있는지?
투어에 돌입할 때 몸 관리를 하는 편이야. 이번 앨범으로는 정신이상이 오기 직전까지 나 자신을몰아붙였어. 아침 9시에 여기 와서 12시까지 일하고, 두어 시간 잔 다음에 밤 12시까지 일하고, 집에 가서 새벽 4시까지 일했어. 하루에 4시간만 자고 스튜디오에서 낮잠을 조금 자면서 아드레날린에 의지하는 말도 안 되는 생활로 내 정신을 푸시했어. 매일 똑 같은 시간에 작업을 하면 어떻게 색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겠어? 내가 하루에 뽑아낼 수 있는 최대 생산량이 얼마인지, 잠을 어느 정도까지 안 잘 수 있는지, 각기 다른 시간에 잠자리에 들면 어떻게 될지… 내가 다 해봤는데 사람이 완전이 미치더라!



’No Tourists’는 Take Me To The Hospital/BMG를 통해 발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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