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URES
Derrick May: 우린 가난하지 않았어. 디트로이트 음악씬은 결코 가난하고 비참한 씬이 아니야.
테크노 레전드, 디트로이트와 오케스트라 작업을 말하다
Sophie Ronodipuro | 2019-09-16
별다른 소개가 필요 없는 Derrick May.

테크노 베테랑인 그는 Belleville Three의 멤버로 활동했던 파릇파릇한 시절에서부터 이어지는 길고 화려한 커리어를 자랑한다. 최근 오케스트라와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그는 8월 29일에 런던 Sounthbank Centre에서 오케스트라 협연을 진행했다.

May는 Dzijan Emin이 지휘하는 City of London Sinfonia 오케스트라와 함께 협연했다. May와 Emin은 테크노의 에너지와 May의 사운드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데 전념하고 있다. 덕분에 이번 런던 공연은 그 광경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였다.

본지가 May를 만나 이번 공연이 어떻게 이뤄지게 되었는지, `하이 컬처(high culture)`의 장벽을 어떻게 허물게 되었는지, 페스티벌 컬처에 대해, 또한 그가 테크노와 디트로이트를 대표하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노력해 왔는지 들어보았다.



각 오케스트라가 본인의 음악을 어떻게 자기들만의 스핀으로 연주한다고 생각하는지? 제일 좋아하는 편곡은?
사실 오케스트라에서는 스핀이나 관점을 잘 얻지 못해. 그 반전과 예측불허의 순간들은 나나 지휘자로부터 나올 거야. 그 외에는 오케스트라는 자신들이 보는 것에 반응하는 훈련이 너무 많이 되어 있어서 보는 것에만 반응하지 자기들의 느낌에는 반응하지 않아. 그래서 오케스트라와는 사전에 상의할 기회가 없어. "이봐, 이게 진짜 감동적이면 그냥 밀고 나가. 다 찢어버리고 그냥 한 번 해보자고!" 그런데 그들은 그러지 않아.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렇게는 안 해.


이런 퍼포먼스가 있기까지 어떤 창조적인 과정이 있었으며 그 과정에 얼마나 관여했는지?
일단 내 지휘자 Dzijan Emin은 공연시간 90분에 맞춰서 공연에 가장 잘 맞는 곡들을 고르는 작업을 수월하게 해내고 있어. 편곡까지 하니까 그냥 감독이 아니라 끝내주는 뮤지션인 거지.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은 Emin과 함께 일하는 거야. 편곡에 참여하는 게 아니라 어떤 곡을 사용해야 할지, 공연에서 그 음악이 어떻게 표현되어야 하는지, 어떤 곡을 마지막에 하고 어떤 곡을 중간에 할 지 이런 거 있잖아. 그리고 오케스트라에 대해서 아까도 말했지만 그들은 기대를 벗어나는 일은 하지 않아. 90분 넘게 연주하지도 않을 거고.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게 오케스트라 업계의 법칙이야. 90분. 이보다 시간이 넘어가는 건 사실상 불가능해. 그들이 하려고 하질 않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테크노 트랙을 연주할 생각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을 사람들도 있을텐데 오케스트라의 어떤 점에 매력을 느꼈는지?
이게 꽤 오래 된 얘긴데, 내가 처음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부터야. 완전 처음부터. 나는 내가 만드는 모든 것들, 내가 만든 모든 곡에 오케스트라가 있다고 느꼈어. 나는 `풍경음악(scenery music)`이라고 할 만한 곡들을 만들어. 그런 풍경음악에는 어떤 승리의 야망 같은 게 담겨 있어. 나는 고등학교랑 대학교 때 운동을 잘했어. 그리고 내 음악은 항상 내 어린시절의 꿈결 같은 행복감을 이야기해. 그걸 스트링과 멜로디로 표현하지. 그런 다음에는 어딘가에 가고 싶어 하거나, 어딘가에 있거나, 열심히 투쟁하는 감각이 있어. 나는 내 개인적인 삶에서부터 이런 것들을 음악에 직접 녹여 넣을 수 있었으니 운이 좋았지. 그리고 그건 내가 잘하는 것이기도 하고. 그때 내가 음악을 만들고 있었을 때, 내가 만드는 곡마다 오케스트라로 연주될 수 있거나 드라마나 영화의 OST로도 잘 어울린다는 이야기를 들었었어. 지난 30년 동안 이 생각을 해왔던 거지.


오케스트라와 테크노뮤직은 오해도 자주 받고 메인스트림으로 진입하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똑같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듯 하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이 둘이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지?
글쎄, 모르겠네. 오케스트라는 400년 전부터도 굉장히 높으신 부류들이 듣는 음악이었지. 좀 더 교양 있고, 교육받은 고객들이랄까. 그래서 이게 원래는 다른 의도가 있었던 거였는지는 모르겠어. 나는 오케스트라는 항상 굉장히 특정한 커뮤니티로 스스로를 에워싸 왔다고 생각해. 그 커뮤니티는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즐기는 것에만 관심이 있고, 또 이게 변할 일은 없을 거야. 그들도 알고 있고, 그 점을 즐기니까 그 사회의 일원이 된 거지.

이제 그런 사람들이 많이 남지는 않았고 대부분 70대 말이거나 80대 중반이야. 더 이상 외출도 잘 안 하는. 그런 사람들이 이제는 더 이상 오케스트라에 힘을 실어줄 수가 없고, 이게 오케스트라가 일렉트로닉뮤직 아티스트들에게 손을 뻗은 하나의 이유인 거지. 우리가 그걸 하고 싶다는 야망이 있었다 해도 그건 언제나 꿈일 뿐이었고, 오케스트라를 독점적으로 고수하던 세대가 늙기 전까지는 딱히 어떤 수단이나 기회, 초청을 할 방법이 없었던 거야. 이제는 오케스트라도 문을 열어서 젊은 세대에게 손을 내밀 수밖에 없었지. 굶주리고 있으니까. 그들은 실제로 굶주리고 있고 살아남기 위해 뭐든 하고 있어.

그러니까, 교향곡은 인기를 얻고 싶어 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지금도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 하지만 그들에게 다른 선택권이 없다고 봐. 손을 내밀고, 이전보다 훨씬 많은 인기를 창출해야지. 하지만 다른 점이라면 나는 그들이 여전히 진실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아티스트를 대표하고, 단순히 곡 하나가 아니라 실제의 아티스트 한 사람을 대표하는 높은 수준을 추구하고, 그들 뒤에 서고 싶어 하지.


다른 DJ들도 오케스트라와 함께 퍼포먼스를 했는데 이런 움직임이 씬에 어떤 변화를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이렇게 장르를 넘나드는 퍼포먼스에 밝은 미래가 있다고 보는지?
사실 Jeff Mills는 정말 인정 받을 만하지. Jeff랑은 17살 때부터 알고 지냈어. 둘 다 디트로이트 출신이기도 하고. 라디오 방송에서 공연을 하건, 각자 여러 가지 쇼를 하건, 파티를 열건, 우리는 항상 어떤 형태로든 동시대에 활동을 했어. 둘 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 강력한 운동의 일부분이었지. 그리고 한 번도 뭘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어. 그냥 하고 있었던 거지. 제 2의 본성 같은 게 되어서 그냥 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속 해왔을 뿐이야. 하지만 Jeff가 먼저 한 건 사실이고, Jeff는 모든 인정을 받을 자격이 있지. Jeff가 최초는 아니야. 우리가 음악을 만들기 훨씬 전부터 이걸 해온 일렉트로닉뮤직 아티스트들이 있었어. 하지만 지난 20년 동안은 Jeff뿐이었고 Jeff가 잘하기도 진짜 잘했지. 나한테 영감을 주더라고. 사실 일종의 경쟁이기도 했어. 나도 내 음악을 가지고 꼭 해보고 싶었던 건데 "젠장, Jeff한테 졌다!"라는 생각이 들었거든.

내 말은, 우리가 이걸 하고 있기 때문에, Jeff가 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걸 하고 있는 것 같아. 그런데 그들이 정말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쪽에 어떤 소속감을 가지고 음악을 만든 것 같지는 않아. 일부는 우리가 말한, 그냥 상황에 따라가야 하기 때문에 하고 있는 것 같아. 그게 좀 걱정돼. 여기에 들어가는 노력과 수고, 이것만의 아름다움을 격하시키는 일이거든.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건 보고 싶지 않지만 기회주의자들이 이 망할 열차에 일단 뛰어오르고 보는 것 같은 경우들도 좀 있어. 나는 제대로 된 사람들이 자기 음악으로 기회를 얻는다고, 그래서 이게 끝나버리기 전에 세상이 이걸 제대로 들어볼 수 있다고 믿고 싶어.


최근 Jeff Mills는 댄스뮤직이 원래는 천성적으로 정치적이었으나 점점 바뀌어서 이젠 너무 중산층의 음악이 되었다고 말했는데,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가 말했지만 우리는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어. 가난한 아이들이 아니었지. 디트로이트 음악씬은 결코 가난하고 비참한 씬이 아니야. Juan네는 부자였고, Kevin네도 꽤 부유했어. 나는 한부모 가정에서 자랐는데 외동이었고 우리 어머니가 나를 혼자 키웠지만 자동차회사에서 비서로 일하셨어. 나는 좋은 학교들에 다녔고, 좋은 동네들에서 살았어. 굉장히 괜찮은 아이들과 어울렸고, 굉장히 거친 아이들한테서도 많이 배웠어. 가난한 동네에서 산 적이 없었기 때문에 불쌍하게 자라지 않았어. 우리 모두 마찬가지야. 우리가 흑인이고 디트로이트 출신이고 뭐 그런 것 때문에 가난하고 모자란 흑인 아이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긴 한데 우린 전혀 그렇지 않았어. 우리는 항상 이 음악에 대해, 우리가 이걸 어떻게 하고 싶은지에 대한 시야를 가지고 있었어. 비전이 있었지. 우리는 작가 Alvin Toffler나 그런 사람들을 믿었어. 이런 통찰력을 주는 다른 일렉트로닉 음악들을 들었고, 지적인 공상과학 영화와 소설에 푹 빠져 있었지. 우리는 갈 곳 없는 불쌍한 흑인 아이들이 음악을 한 케이스가 절대 아니야. 음악에 대한 아이디어를 망할 하늘이 툭 떨어뜨려준 것처럼 거저 얻은 것도 아니라고. 옛날에는 기자들이 우릴 보러 올 때마다 건방지고 모욕적인 이 질문을 꼭 했어. "어떻게 이 음악을 만들게 되었나? 어떻게 한 거냐?" 이걸 어떻게 했냐니 그게 무슨 말이야? 늘 그런 식이었는데 결과는 긍정적이긴 했지. 기자들은 매번 놀라고 감명을 받았고 우리는 매번 말을 잘했거든. 그 사람들은 우리가 비참하고 가난한 환경에서 멍청하게 자란 게 아니라는 걸 굉장히 빨리 깨달았지. 가난과 가깝게 살긴 했지. 디트로이트에서 살았으니까. 갈등과 슬픔, 투쟁에 둘러싸여 살았어. 분노와 광기, 원한에 이웃해서 살았지. 하지만 우리는 그걸 굉장히 예언적인 방법으로, 동정하고 공감하는 태도로 흡수했어. 그게 우리 같은 사람들과 디트로이트 시의 스토리의 배경이 되었지. 우린 우리의 도시와 그 투쟁을 전하는 시인이자 연설가, 작가가 된 거야.

그래서 Jeff가 중산층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때 나는 그가 음악의 관점에 대해 말한 거라고 생각해. 댄스뮤직을 지지하는 사람들, 아마도 새로운 관중들이 댄스뮤직의 뿌리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거지. 노동자계층의 정신이 배제되고 있는 거야. 그런 투쟁이 음악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은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이 뭔가를 위해 투쟁하지 않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이걸 기억해. 우리는 음악을 만드는데 아무도 우리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부터 투쟁해야 했어. 우리가 첫 음반을 냈을 때 아무도 우리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아무도. 그때는 세계적인 DJ 같은 것도 없었어. 존재하지도 않았지. 디트로이트 음악에 대한 기사를 쓰는 음악잡지도 없었어. 우리가 해낼 거라고 아무도 믿지 않았고, 우리는 그 어떤 사랑도, 존경도 받지 못했어. 우리가 이걸 해냈다는 건 전세계를 상대로 해냈다는 거야! 사람들은 이걸 이해하는 것도, 최소한 있는 그대로 보는 것도 어려워해. 하지만 이해를 해줘야 해. 처음에는 둘, 그랬다가 셋, 그랬다가 여섯 명이 된 거야. 망할 전 세계를 상대로 말이야!


앞으로 테크노씬이 어떻게 진화할 거라고 보는지?
이제는 더 이상 기준이란 게 없어. 이 업계의 90%가 재능이 없다 보니까 누가 뭘 하든 재능이 있다고 여겨질 수 있어. 그들 잘못은 아니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해도 무시하는 게 아니야. 내가 부정적이거나 비관적인 게 아니야. 그냥 있는 그대로 말하는 거라고. 아직 멋진 것들을 해내는 창의적인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지금 최전방으로 뛰어드는 사람들은 더 큰 기계의 부품일 뿐이야. 장면을 연출하는 과정의 일부이고, 장면이라는 거는 예를 들면 내가 오래 전부터 항상 경고해온 이 페스티벌들 말이야. 페스티벌들이 언젠가는 클럽씬들을 다 망가뜨려버릴 거라고 내가 계속 경고했잖아. 몇 년 전에 TV에서 인터뷰도 했어. 암스테르담에서 어떤 페스티벌에서 차 뒤에 앉아서 바로 이 이야기를 그대로 했지. 내가 계속 말하는 게, 이런 페스티벌이 이대로 계속된다면 클럽씬을 다 망가뜨리고, 우리는 진짜 창조성, 진짜 아트의 지역적이고 젊은 발전적 무대를 잃게 될 거야. 관중을 위해 웜업 공연을 하는 젊은 DJ들 말이야. 온갖 젊은 크리에이터들이 모여서 춤추고, 웃고, 사랑을 나누고, 서로 알아가고, 파티가 끝나곤 함께 뭘 먹으러 가고. 또 며칠 뒤에는 동네 카페에서 만나서 친해지고, 함께 스튜디오에 가서 작업하고.. 아니면 같이 앉아서 연극이나 책을 위한 아이디어를 나누고, 그것도 아니면 자기들만의 파티를 열고 싶어하고... 그 모든 걸 잃게 될 거야. 그런 애들이 Tomorrowlands나 그런 뭣 같은 것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걔네가 해낼 수 있다고 믿는 정신이나 믿음이 사라질 거거든. 당연히 경쟁 못하지. 어떻게 해? 이런 행사를 여는 사람들은 음악계 출신들이 아니야. 대학에서 MBA 딴 사람들이라고. 물류에 대한 개념도 있고 재정적인 야망도 있는데 댄스뮤직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그들은 한 명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지, 사람들이 그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닌지를 기준으로 라인업을 짠다고. 그러니까 이건 굉장히 다른 거야. 그리고 홍보회사들은 여자든 남자든 세계 방방곡곡에서 자격미달인 사람들을 끌어 모아서는 이 음악을 대표하게 하면서 마치 그 사람들이 세계 최고인 것처럼 꾸며내고 있어. 그나마 남아있는 미디어를 동원해서, 또 TV에 출연시키는 방법으로 말이야. 망할 돈이나 많이 벌겠다는 분명한 목표로 하는 사업 위의 사업인 거야.


테크노뮤직과 디제잉의 길을 이끌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DJ들과 프로듀서들이 있는지?
총대를 매고 질주하는 디트로이트 아티스트들이 분명 있긴 해. 그 중 한 명은 일렉트로와 댄스뮤직의 사이에 있고. 자칭 Drummer B라고 하는데, 내가 그의 이야기를 하는 건, 굉장한 재능과 인내심을 가지고 있고 디트로이트 같은 도시에 있을 때에만 나올 수 있는 수준의 스킬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야. 그는 디트로이트의 음악적 유산과 엄청나게 재능있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고, 그 자신만의 것에 대한 신념도 있어. 디트로이트 사운드의 요소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기만의 사운드도 가지고 있지. 디트로이트 스타일에만 의지하지도 않아. 우리를 깜짝 놀라게도 해주고, 댄스뮤직을 가지고 뭔가 재미있는 시도를 하기도 하면서 방향을 돌려서 곧장 일렉트로로 달려가기도 해. 내가 25년 전에 Carl Craig에 대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 한계가 없고, 자기가 하는 일로 달까지도 갈 수 있을 사람이라고. Drummer B도 정도로 재능이 있는 사람이야. 그런데 그는 이제 막 시작했고, 이제는 업계가 변해서 땅에서 도약을 하는 게 거의 불가능해. 예전처럼 재능만 있으면 즉각 인정받고 발굴되던 기회가 이제는 없어.


이 프로젝트를 끝냈으니 이제 라이브공연을 한층 더 발전시킬 새로운 아이디어와 컨셉이 있는지?
나는 아직도 영화계에 진출하고 싶어. 아직도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이 음악을 알릴 기회를 갖고 싶고. 아직도 이 음악을 대표하고 싶고, 아직도 동기와 영감을 얻고 싶어. 그러니까, 맞아. 나는 확실히 좀 더 많은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싶은 야망이 아주 커. 그리고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음악을 들려줄 기회를 얻는 모습도 보고 싶어. 그 방법이 오케스트라 협연이건, 영화나 텔레비전 협업이건 말이야. 오프브로드웨이 프로덕션이나 오프 중에서도 오프 브로드웨이의 공연과의 협업도 진짜 꼭 해보고 싶어. 그건 정말 해보고 싶은 거야. 조만간 Brian Eno를 만나는데, 정말 기대돼.



법인명 : 주식회사 비엔엘컬쳐스 / 신문사업등록번호 : 서울, 아03924 / 신문사업등록일 : 2015년 10월 06일 / 사업자등록번호 : 279-86-00099 / 법인등록번호 : 110111-5843580 / 대표이사 : 홍유석, 이순섭 / 발행인 : 장태환 / 편집인 : (주)비엔엘컬쳐스 / 발행소 : 서울시 강남구 삼성로 150, 107-105 / 발행일자 : 2016년 4월 4일 / 전화번호 : 070-7772-4444 / 대표이메일 : info@bnl-global.com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유석 / 특허등록번호 : 41-0375139-00-00 / 상표등록 제41-0375139호
Copyrights 2016 Mixmag Korea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