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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정복한 호주 청년 Flume
멜로디팝 감성의 혁신적 일렉트로니카에 귀의한 Flume 열풍
글: Louise Brailey 사진: Kevin Lake | 2016-05-18

투어버스에 오르는 Harley Streten의 태도가 황당할 정도로 느긋하다. 24살 청년의 구릿빛 피부가 버스의 황갈색 실내장식과는 조화를, 흰 야구모자와는 대비를 이룬다. 밖에서는 Flume 크루가 오늘밤 런던의 유서 깊은 Roundhouse에서 열리는 티켓완판 공연 준비로 분주한데 중간색조로 물든 버스 내부는 온통 황금빛이다. 누구보다도 가장 놀란 건 그 자신이다. 그가 의자 깊숙이 몸을 파묻더니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아까도 이 생각했어. 뭔데? 나 왜 이렇게 느긋한데?” 6시간 뒤면 쇼타임이다. 이번 주 초에 자신의 레이블을 통해 2집 앨범 ‘Skin’의 완성판을 출시한 이후 처음으로 서는 무대다. Zen의 급습과 관련 있는 건지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받은 메일함에 음반 압축파일 받고서, 아이튠즈에 넣어놓곤 이랬지. ‘좋아, 끝났다’.” 소년 같은 얼굴에 안심한 기색이 역력하다.


Flume이 대세로 떠오른지 4년이 지났지만 그 반향은 여전하다. 2012년에 호주의 독립 레이블 Future Classic을 통해 출시된 데뷔앨범은 그 어떤 마케팅이나 홍보전략으로도 불가능한 자연발생적인 성공을 이뤄냈다. 그는 업계의 수문장들이 잠시 한눈을 파는 새 스리슬쩍 자리를 잡는데 두각을 나타냈다. 정작 자신은 무료로 사용한 SoundCloud와 음악블로그를 상품화하는 방법을 고안해내며 유명세를 탔다. 능란하고 날랜 손재주로 멜로딕하면서도 듣기 편한 파티 팝에 실험적인 힙합의 생소한 텍스처와 반구조를 접목한 나른한 사운드를 선보이는 이 내성적인 호주청년의 성공을 달리 설명할 방법이 있을까? 그의 약진이 선뜻 믿겨지지는 않지만 통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특별할 것 없이 평범했던 그는 음악계의 핫한 재원으로 거듭났다. 모국에서는 골드레코드를 달성하고, 자신의 색다른 비전을 Lorde와 Arcade Fire, Disclosure 리믹스로 옮기면서 팝과 댄스뮤직 세계시장을 개척했다. 한 마디로, 일이 요상하게 전개됐다. “음악으로 성공을 하면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어. 투어 같은 거 하면서 신체적으로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이제 중요한 인물이라는 거지. 막 점점 더 유명해지는데 인격이 바뀌게 된다니까. 그게 자신의 삶이 되는 거야. 되게… 쩔지.” 그가 약간은 경직된 웃음을 짓는다.


그리고 이제 세상은 다시 한 번 열광할 참이다. Flume은 어마어마한 기대를 받고 있는 후속작 발표에 발동을 걸고 있다. ‘Skin’은 으레 2집 앨범이 거치게 마련인 험난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가 소리친다. “장난 아니었어! 이건 그냥 사람들 혼을 빼버리는 것 같아. 나도 완전 압도당했고.” 그런가 하면 표준시간대를 호텔로비마냥 들락날락하게 될 대규모 투어 일정도 있다. 그의 새 라이브공연이 개막하는 것을 보려면 Coachella까지 기다려야 하지만 Flume의 유럽 팬들은 오늘밤 공연에서 처음으로 그의 신작을 무더기로 듣게 될 것이다. Annie Mac이 보증한 리드싱글 ‘Never Be Like You’는 호주에서 이미 Zayn Malik의 ‘Pillowtalk’를 제치고 차트 1위를 거머쥐었다. 또한 서브제로 힙합 튠의 티저는 요즘 한창 핫한 래퍼 Vince Staples가 피처링했다. 그러니까, 보다시피 조짐이 좋다.


이 모든 게 실험적인 사이드프로젝트에서 출발한 것이라는 점이 더욱 빛을 발한다. 그 자신도 Flume이 이렇게 유명해질지 몰랐다. “나로서도 진짜 꽤 충격이었어.” 상황이 예측대로 흘러갔다면 우리는 Harley Streten가 자신의 친구 Chris Emerson과 함께 시작했던 훨씬 직설적인 하우스프로젝트인 What So Not에 대해 인터뷰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에 비해 Flume은 헤드폰을 위한 프로젝트였다. 그가 초기를 회상하며 말한다. “나는 되게 차갑다고 생각했던 비트였는데 페스티벌의 사람들은 거기에 맞춰 열정적으로 춤을 추고, 노래도 따라 부르고, 음, 따라 부르려고 시도하는 거야. 진짜 신기했어.”


시드니 교외의 그림 같은 Northern Beaches에서 태어난 Streten은 어려서부터 일렉트로닉뮤직 팬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어린 Streten에게 프랑스 뉴에이지 Deep Forest를 자장가로 틀어줬다. “그게 다 끝날 때까지 안 잤어. 끝까지 다 듣고 싶었으니까.” 플룻 선율 가득한 ‘Skin’의 전조를 들어보면 그의 어린시절이 얼마나 큰 심리적 발자취를 남기고 있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수 년 후, Streten은 친구와 함께 주말마다 도시를 누비며 피짓하우스(fidgit house) 파티를 찾아다녔지만 디지털 세대인 그의 실제 클러빙은 역시 대체로 Napster와 Kazaa에서 제공하는 온라인 정보의 영향을 받았다. 결국에는 당연히 The Prodigy와 Daft Punk가 있었지만 예측불어의 와일드카드도 있었다. DJ Hixxy 등 잘 알려져있지 않은 하드코어와 동네 형이 전해 준 Ministry of Sound 트랜스 컴필레이션 앨범들이었다. “그 안에는 행복감을 주는 성질이 담겨 있었는데 그게 내 심금을 울렸어.” 그가 말을 잠시 멈추더니 잇는다. “내가 듣던 음악이 좀 끔찍하긴 했지.”


학교에 음악적 취향이 같은 친구는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유치한 괴롭힘을 더러 당하기도 했다. “고등학생 때는 그것 때문에 놀림받았어. 별명이 ‘Techno beats(‘테크노에 얻어맞은’이라고 해석) Harley’였어.” Streten은 그런 놀림에 아랑곳하지 않았고, 12살에는 시리얼 상자에 사은품으로 들어있던 프로덕션 소프트웨어를 가지고 자신의 방에서 자기만의 비트를 만들어냈다. 그게 그의 음악적 첫사랑인 색소폰을 대체했다. 심지어 그의 음악선생님은 Streten이 음악수업용 비트를 만드는 것도 허락해줬다. 비트를 색소폰으로 연주하는 것이 조건이었다. 하지만 색소폰의 한계가 너무 분명하게 드러나자 그는 9년 동안 배워왔던 악기를 결국 내려놓고 말았다. “한 번에 한 음밖에 못 내잖아.” 분명 농담 같은데 표정이 완전 진지하다.





아마 색소폰에는 밴드가 있어야 더 효과적이라는 말이겠지만 그에 비해 Streten은 좀 더 혼자 노는 타입으로 보인다. 3년 만에 하는 인터뷰 태도가 정중하다. 솔직하지만 자기 이야기를 대놓고 하지는 않는다는 게 느껴진다. 그도 인정한다. “난 좀 조용한 편이었지. 그래서 이 자리에 있는 것 같긴 해. 쿨한 사람들하고 어울려다니기만 했으면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이 모든 [제작] 스킬을 갖추지 못했을 수도 있었을 거야.” 그러나 조명, 드럼 패드, 키보드, 컨트롤러가 잔뜩 배치된 리허설 무대의 Flume은 놀라우리만치 편안해보인다. 물론 늘 이랬던 건 아니다. 십대 시절에는 그의 첫 프로젝트 HEDS와 Harley School Kid의 일렉트로 하우스부터 뭄바코어, What So Not의 쿵쾅대는 하우스까지 다양한 예명과 음악적 스타일을 쉴새없이 종횡무진했다. 그는 오랫동안 활동적인 레딧(Reddit) 유저였기 때문에 그 증거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가 피드백으로 포스팅한 트랙들을 지금도 검색해볼 수 있다. 또한 그는 Flume 사운드를 형성하는데 도움을 줄 음악을 찾기 위해 서브레딧 r/futurebeats(와 전반적인 블로고스피어)를 이잡듯 뒤졌다. 그중 특별히 한두 명의 아티스트가 사운드의 기초가 되었다고 한다. 그가 말한다. “[Flying Lotus의 곡을] 처음으로 들어본 트랙이 ‘GNG BNG’였는데, 넋이 완전 나갔었지.” 게다가 코스믹 팝의 미스터리맨 Jai Paul의 영향력은 더욱 강력했다. 특정 연령대의 블로그 독자들에게 여전히 신비롭고 신성시되는 인물로 남아있는 영국인 프로듀서 Jai Paul의 음악을 처음 들은 Streten의 반응은 ‘세상에, 이게 뭐야?!’였다고 한다. “리듬하고 플로우가 더 없이 완벽하게 느껴졌어. ‘BTSD’는 기본적으로 Flume 프로젝트 전체의 기초가 된 곡이야.”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음악으로 먹고 사는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위해 대학교 진학의 기회를 걷어차곤 기다리는 동안 갖가지 구질구레한 일을 했다. Hard Rock Cafe에서 웨이터로 일하던 중 Future Classic이 진행하는 대회에 ‘Sleepless’ EP의 데모판으로 출전하면서 마침내 기회를 잡았다. “그때 2등했어. [웃음] 그래도 그걸로 계약을 따냈지”


2012년 가을, Transgressive 레이블 설립자 Toby L은 호주 워킹홀리데이 중 우연히 Flume의 Sleepless를 접했다. “그는 언더그라운드 일렉트로닉뮤직의 가능성의 변수를 바꿔버렸어. 작은 공간에서도 유니크한 제작 스타일뿐 아니라 뇌리에 남는 진보적인 작곡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다는 게 여실히 드러났지. 나는 완전 마음을 뺏겼고. 그와 함께 해야겠다는 건 고민할 것도 없는 결정이었어.” 바로 다음 날 Future Classic에 찾아간 그는 가벼운 술자리에서 영국과 유럽 계약을 체결했다. 결국 그렇게 된 거였다.


Flume이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호주에서나 세계적인 음악 풍조에서나 그 어떤 트렌드나 대세도 따라가지 않는 아웃사이더였다는 사실은 굉장히 흥미롭다. Flume의 음악은 호주의 메이저 방송국 Triple J Radio를 등에 업는 것을 시작으로 빠르게 퍼지기 시작했다. 그가 호주 출신이라는 사실 자체가 새로웠다. 특히 문화적 감성이 딸리기로 유명한 미국에서는 더욱 그랬다. 그가 웃으며 말한다. “걔네 머릿속엔 Steve Irwin밖에 없나봐. 무슨 헛소리를 해도 믿어. ‘응, 나 어렸을 때 캥거루 타고 그랬어.’ 이런...” 그보다 중요한 것은 아마 그의 사운드가 Flume 특유의 멜로딕한 감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다양하고 변덕스러운 시대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유연함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그의 음악은 랩 블로그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고, 그러면서도 EDM이나 팝 주류의 지지를 받을 정도로 듣기 편하고 멜로딕했다. Roundhouse 공연을 찾은 한 팬은 Flume의 음악이 가진 폭넓은 호소력을 완벽하게 요약했다. “Flume의 음악은 아무 때나 틀어도 돼. 일하고 있든, 클럽에 있든, 친구들이랑 놀든. 언제든지 그냥 딱이야.” 게다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경로로 뜬 Evian Christ 같은 영국인 프로듀서들이 온라인 언더그라운드에 매인다 싶을 때 Flume은 변칙적이고 자주적인 느낌이었다. 그가 당시를 회상한다. “난 아무 단체나 씬에 속해있지 않았지.” Flume에게 그의 뒤를 잇는 씬이 형성된 것을 느끼는지 물어보았다. “이것 때문에 정말 음악 풍조가 바뀐 것 같긴 해. 호주에서 특히. 허세부리고 싶은 게 아니라 진짜 그런 것 같긴 해. 나도 완전 신난다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일에 한 가지 단점이라면 교묘한 표절곡들이 줄줄이 따라붙는 거다. 그가 말한다. “1년 전쯤에 호주에 내 사운드랑 비슷한 곡이 엄청 많이 나왔어.” 그래서 신경이 쓰이는지? “한편으로는 진짜 짜증나지. 몇 년을 고생해서 새로운 컨셉트를 들고 나오는데, 그러니까, 요즘엔 다들 드롭을 이렇게 하니까 나는 이렇게 다르게 해봐야지, 그러고 곡을 하나 내면 여기저기서 내 걸 다 같다 붙이는 거야.” 하지만 웬만하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내가 한 곳에 안주하고 옛날 기법에 매달리지 않는다는 뜻이니까. 계속 새로운 걸 가지고 나와야 한다는 거지.”





혁신을 향한 Flume의 결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단호하다. Roundhouse 공연에는 뭔가 신기한 구석이 있다. 어떤 것을 기대하든 그 모든 것이 충족된다는 것이다. 힙합 충만한 손놀림, Tumblr 비주얼, 사람들 어깨 위에 올라앉은 여자들 발에 리복 클래식. 조명 불빛이 눈부시게 쏟아지고, 사람들의 손은 하나같이 위를 향해 뻗어있다. 빛을 반사하는 기하학적 모양의 단상 위에 선 Streten의 유연한 몸매가 드라마틱한 실루엣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여기에 단절이 있다. 음악이 종종 외골격의 굴곡 혹은 무정형의 반중력으로 가득한 돌연변이의 영역으로 방향을 돌린다. 늘상 그런 것은 아니고 그래도 역시 Flume이다 보니 훅이 많이 남아있지만 꺾이지 않는 아이디어로 상쇄된다. Flume의 말에 의하면 이것이 바로 애초부터 그를 이끌어왔고, 지금까지도 잠에서 완전히 깨어나지 않은 충동, 팝의 정신을 가진 도전적인 사운드 설계에 귀의하고자 하는 열망의 발로이다. 그가 말한다. “그렇게 보면 내 관심사는 평범하지 않은 것 같아. 나는 팝음악과 실험적인 일렉트로니카를 사랑하니까. 일렉트로니카에서는 새로운 사운드와 텍스처가 가능한데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음악의 한계는 이것뿐이라고 생각해. 일렉기타가 처음 등장했을 때 다들 ‘우와, 대박!` 이랬잖아. 지금은 시간이 꽤 흘렀는데 이제는 프로덕션이 새롭지. 소리를 왜곡할 수도 있고, 어떤 러시아 애가 만든 플러그인을 가지고 음악을 만들 수도 있어. 기술은 20년 전만 해도 불가능했던 사운드를 만들어낼 수 있는 곳으로 우리를 데려다주고 있어.”


정말 그렇다. ‘Skin’을 조금만 들어보면 장르의 한계를 벗어나는 새로운 세대의 영향력을 확연히 느낄 수 있다. Flume이 현재 자신의 이상적인 컬래버레이션으로 PC Music 소속 Sophie를 언급하는 것도 당연해보인다. 가끔씩 명백한 주류의 물살을 타며 거친 소리들을 융합해내는 Sophie의 능력이 Flume과 비슷하다. Streten에게는 야망이 있다. 그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한다. “나는 주류 아티스트의 성공을 원해. 늘상 똑 같은 크기의 공연장에서 플레이하고 싶지 않아. 나는 성장하고 싶고, 내 음악을 보다 많은 관중들에게 들려주고 싶어.”


공연장의 열기로 보건대 확실히 그의 계획이 먹히는 것 같다. 투어버스로 돌아온 뒤, 화제가 팝뮤직으로 바뀐다. Flume이 씬에 등장했을 때만 해도 팝이 아직 프로덕션 이단아들의 능력을 깨닫지 못했었는데 이제는 Kanye West 같은 초특급 스타들이 Evian Christ와 Arca 같은 언더그라운드 인재들을 등용하며 가내공업을 시작하고, Sophie는 Charli XCX와 함께 일한다는 것이 재미있다. Flume도 그 쪽에 관심이 있다는 것일까? “완전. 내 음악만 만드는 건 좀 질렸어.” 그는 무엇보다 일렉트로닉뮤직의 황금기를 일궈가고 있는 일원이라는 점에서 의욕 충만해보인다. 분명 침대에 누워 지구 건너편에서 만들어진 괴상한 방송들을 듣던 어린 시절부터 꿈꿔왔던 것이리라. “요즘 사람들 가차없이 밀고 나가잖아. 가끔은 이런 생각도 했어. ‘앞으로 미친 짓들을 해낼 애들이 엄청 많을 텐데, 쉽지 않겠어.’” 그가 긴 숨을 내쉰다. “그래도 결국 다 괜찮아질 것 같긴 해.”



이번 달, ‘Skin’이 유럽에서는 Trangressive Records를 통해, 북미에서는 Mom+Pop을 통해, 그 외 지역에서는 Future Classic을 통해 출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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