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종종 사운드트랙의 힘을 빌어 컬트적인 수준까지 구체화된다. 몇몇 대작들 중에서는 음악이 없었다면 그 빛이 다소 바래지 않을까 싶은 작품들도 있다. 블레이드 러너와 트레인스포팅도 그런 케이스인데, 특히 트레인스포팅은 OST 1집에 미처 실리지 못한 튠이 너무 많아서 이듬해에 2집이 나왔을 정도다.
비디오게임에도 배경음악이 딸려 나온다. TRON RUN/r은 Giorgio Moroder를 비롯한 다수의 Warp Records 아티스트들(Autechre, Plaid, Bibio, patten, Darkstar)이 음악을 맡았다. 그래서 최고의 일렉트로닉뮤직 사운드트랙과 영화음악을 골라 12위까지 순위를 매겨보았다.
트론: 새로운 시작
이 디즈니 영화 덕분에 Giorgio Moroder는 비디오게임 사운드트랙에까지 진출하게 되었다. 1982년작 트론(Tron)의 속편인 트론: 새로운 시작(2010)은 주인공 샘이 자신의 아버지가 20년 동안 갇혀있던 사이버세계 플린의 아케이드에서 펼치는 모험을 그렸다. 두 시간짜리 가상공간의 배경음악을 만드는데 댄스뮤직계의 원조로봇 Daft Punk만큼 적절한 아티스트가 또 있을까? Guy-Manuel과 Thomas Bangalter는 신스와 흥미진진한 기법으로 수놓은 아찔한 트랙들로 셀렉션을 엮어 실력발휘를 했다.
블레이드 러너
신스 위주로 만든 사운드트랙이라고? 넘나 좋은 것! 그리스 작곡가 Vangelis는 Ridley Scott의 디스토피아 블록버스터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 1982)를 위해 엄청난 음악작품을 만들어냈다. 이 사운드트랙이 일렉트로닉뮤직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은 말할 것도 없다. 브리스틀의 밴드 Massive Attack은 너무도 깊은 감명을 받은 나머지 2008년에 Heritage Orchestra와 함께 블레이드 러너 스코어를 재현하기도 했다. SF 팬들과 신스의 전문가들은 2018년 개봉을 앞두고 있는 블레이드 러너 2 역시 Vangelis가 맡아서 1편보다도 더 우아한 작품을 써주길 기대하고 있다.
드라이브
드라이브(Drive, 2011)의 사운드트랙은 최근 많은 주목을 받았다. Cliff Martinez의 원작을 포함한 트랙과 더불어 다수의 일렉트로닉 뮤지션들의 컷의 컬렉션이 극찬을 받으면서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만든 덕분에 사운드트랙이 영화보다도 먼저 떴다. 숨막히게 아름다운 촬영기법과 통통 튀는 신스가 주도하는 트랙의 컴비네이션이 눈과 귀를 동시에 즐겁게 한다. 폭력적인 장면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Kavinsky의 ‘Nightcall’을 배경으로 Ryan Gosling의 차가 네온빛깔 LA를 누비는 상징적인 오프닝 크레딧과 College의 ‘A Real Hero’를 배경으로 하는 로맨틱한 장면들이 잊혀지지 않는다.
한나
이때까지 사운드트랙을 맡은 경험이 전무했던 Chemical Brothers지만 Ed Simons와 Tom Rowlands는 지금까지의 경력을 살려 강력한 비트와 날카로운 인스트루먼탈로 암살 스릴러 한나(Hanna, 2011)를 탁월하게 보조했다. 느린 장면을 위한 부드러운 부분들이 있긴 하지만 `Escape 700`에 Chemical Brothers만의 별난 색깔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트레인스포팅
Ewan McGregor가 분한 렌턴이 마약거래로 친구들과 함께 번 돈을 가지고 줄행랑을 놓는 마지막 장면은 그야말로 눈이 부시다. 마침내 약을 끊을 준비가 되었고, 마침내 삶을 선택한다고 설명하는 렌턴의 내레이션에 배경을 깔아주는 Underworld의 `Born Slippy` 덕분이다. Lou Reed의 `Perfect Day`, Leftfield의 `A Final Hit`, Brian Eno의 `Deep Blue Day` 역시 트레인스포팅(Trainspotting, 1996) OST를 명반으로 만드는데 한몫 했다. David Bowie가 참여하지 않은 것이 너무도 아쉬울 뿐.
소셜 네트워크
David Fincher 감독의 소셜 네트워크(The Social Network, 2010)는 페이스북의 탄생에 대한 전기적 드라마다. Trent Reznor와 Atticus Ross의 사운드트랙은 이 영화의 분위기를 완벽하게 포착하며 아카데미 상도 받았다. 약간 우울하다 싶은 피아노 멜로디를 뇌리에 박히는 편집증적 표면 텍스처로 감싼 ‘Hand Covers Bruise’ 등의 트랙들이 불신과 불안에 물든 회사 한복판에 있는 외로운 천재와 잃어버린 우정을 일깨운다면, 소란스럽고 질식할 것 같은 분위기의 ‘A Familiar Taste’는 성공의 오르막길에서 느끼는 중독적인 흥분을 반영했다.
블레이드 & 블레이드 2
New Order는 1983년에 `Confusion`을 발표하면서 이 튠이 12년 뒤에 The Pump Panel에 의해 격렬한 애시드 테크노로 다시 태어나 피에 굶주린 뱀파이어들이 광란의 피의 축제를 벌이는 배경음악으로 쓰일 줄 예상이나 했을까? Wesley Snipes 주연의 블레이드(Blade, 1998)의 이 블러드클럽 장면은 너무도 인상 깊어서 지난 할로윈에는 암스테르담에서 블러드 레이브가 열렸을 정도다. 블레이드 3부작은 Roger Sanchez, KRS-One, Gang Starr, RZA, Massive Attack의 튠으로 홈런을 날렸다. 경쟁작 드라큘라(Dracula)에선 못 듣는 거!
휴먼 트래픽
Human Traffic 명장면 Top 10 기사를 읽은 사람은 이 튠이 왜 여기서도 순위에 올랐는지 알 것이다. Pete Tong이 음악감독을 맡고 토르티야를 돌리는 남자 Matthew Herbert가 참여한 만큼 뭔가 끔찍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 이상 망할 수가 없는 것이다. 지프와 친구들이 황홀경에 빠진 채 불금을 보내는 동안 Fatboy Slim, Carl Cox, Armand Van Helden, Orbital, Dillinja의 사운드가 흘러나온다.
어택 더 블록
Joe Cornish 감독의 어택 더 블록(Attack the Block, 2011)은 지구를 침략한 외계인종이 런던 남부의 한 공영주택단지 주민들과 대결하는 내용으로, 요 근래 나온 공상과학영화 중 꿀잼으로 손꼽힌다.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Star Wars: The Force Awakens, 2015)의 John Boyega의 데뷔작이기도 한 어택 더 블록의 사운드트랙은 Basement Jaxx가 맡았다. 강렬하면서도 우주적이고, 살짝 유치한 느낌을 가미한 트랙들은 십대 갱단이 BMX를 타고 외계인들로부터 도망치며 폭죽을 가지고 맞서 싸우는 장면에 완벽하게 어우러진다. 고조되고 팽창되는 분위기에 백파이프를 쓴 것 같은 사운드의 ‘The Ends’를 들어보자.
메트로폴리스
Fritz Lang 감독의 메트로폴리스(Metropolis, 1927)는 복잡한 영상과 특수효과의 사용으로 시대를 훌쩍 앞서며 공상과학 장르에서 최고의 영화이자 진정한 명작으로 인정받는 작품이다. 물론 시대가 시대인지라 무성영화로 제작되었다. 이런 중대한 작품에 배경음악을 넣는데 선구적인 일렉트로닉 뮤지션 Giorgio Moroder만한 사람이 또 어디 있겠는가? 1984년, Giorgio Moroder는 새롭게 복원 및 컬러화한 메트로폴리스를 감독했으며 Freddie Mercury, Adam Ant, Bonnie Tyler 등 당대의 스타들과 함께 신스팝 사운드트랙을 제작했다.
우먼 인 더 문
Jeff Mills는 워낙 미래적이고 초현실적인 소재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인물인지라 많은 사람들이 그를 보고 사실은 외계인이 아니냐고 의심하거나 농담할 정도다. 이 테크노 마법사의 백카탈로그에는 공상과학적 영향을 받은 음악이 그득하다. 1929년에 개봉한 무성영화 우먼 인 더 문(Woman in the Moon)의 스코어를 재작업한 그의 앨범은 그 중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세 장의 CD에 담긴 32개의 트랙은 고전적인 요소에 뒤틀린 테크노 비트를 결합해 Fritz Lang의 명작에 딱 맞는 신비로운 배경을 깔아준다.
오블리비언
오블리비언(Oblivion, 2013)은 막대한 제작비로 만들어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다. M83이 이 영화의 빼어난 비주얼에 걸맞은 서사시적 사운드트랙을 녹음했다. M83은 대대적인 스트링과 고조되는 보컬, 점점 커지는 드럼패턴, 천상의 느낌을 주는 신스를 총동원해서 외계인의 위협을 받고 있는 지구를 구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Tom Cruise, Morgan Freeman, Olga Kurylenko의 이야기를 극대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