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안녕하십니까? Derrick May님. 드디어 한국에 오셨습니다! 예전 2003년 02pro를 통해 내한한 이후, 13년이 흐른뒤 이렇게 RBMA로 다시 오시게 되었습니다. 정말 오랜만의 Gig이였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의 팬들의 반응이 Derrick May님의 예상보다 훨씬 뜨겁지 않았습니까?
한국 대단했어! 사실, 처음 시작할 땐 좀 걱정했었어. DJ Booth 셋팅이 좀 수상했거든. 셋팅이랑 기술적인 부분에서 좀 더 보완할 점이 필요 한 것 같아. Booth가 꽤 불편했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니까 견딜만 햇어. 관객들은 정말 환상적이였어! 사람들이 100% 음악에 몰입한 게 느껴지더라고. 그냥 한국 여자 꼬시러온 외국인들도 꽤 있던걸로 기억해. 플레이하면서 플로어보니까 한국애들은 음악에 쩔어있엇고, 외국애들은 여자를 신나게 꼬시고 있더라고 하하! 그런데 걔네들도 잘 놀면서 분위기를 띄워주는데 한몫 한거 같아. 시간이 조금 지나고 다시 살펴 보니까 그 외국인들이 여자를 잘 꼬셨는지 안 보였고, 한국인들만 진짜 즐기고 있더라고. 그래서 사람들이 끝까지 남아서 음악을 즐겼다는 사실이 되게 인상적이었어. 내가 뭘 플레이하든 사람들이 함께 마지막 까지 남아 주었다는 것이.
Q. 마스터께서는 예정된 공연 시간이였던 00:30-02:30분 셋트를 훌쩍 넘기고 4시간에 가까운 롱셋으로 팬들에게 굉장히 좋은 선물을 주셨습니다. 이에 음악팬으로서 너무 감사합니다. 이렇게 셋트를 연장해주신 건 어떠한 이유에서였습니까?
당연한 거지. 느낌이 좋으면 좋은 거니까. 그리고 기분 진짜 끝내줬다니까! 너무 좋았어.
Q. 오늘 공연의 주된 셀렉트를 CD를 사용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Vinyl로도 섞어서 플레이 해주셨습니다. 평소에 바이닐과 CD를 섞어가며 하는 플레이를 선호 하시는 편입니까? 그렇다면 평소에 USB를 쓰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맞아, 난 물리적으로 접촉하는 게 좋아. 뭔가 잘 모르는 상황에서 기대감을 가지고 추측한다는 것도 좋고. 나는 똑 같은 트랙을 두 번은 절대 안 보거든. 나는 무작위로 하는 게 좋아. 내가 어떤걸 선택해서 플레이할 지 나도 모르는 거야. 내가 CD들을 막 넘길 때 있잖아. CD마다 내가 적어둔 방식이 있거든, 근데 내가 다음 곡을 생각하고 고르다가 갑자기 다른 곡을 발견해서 ‘오, 대신 이걸 플레이 해야겠다’ 라고 할 때도 많아. 그러니까, USB를 쓰면 가끔 너무 기계적인 느낌이잖아. USB 플레이가 문제라는 건 아냐. 근데 그건 신세대 DJ들이 하는 거고 나는 그냥 랜덤으로 하는 게 좋아. 추측을 하면서 긴장을 늦추지 않는 게 나는 이게 좋아.
Q. 마지막 즈음에 당신의 오랜 벗인 Carl Craig의 트랙인 At Les (Carl Craig - At Les (Christian Smith`s Hypnotica Remix)를 바이닐로 올렸을 때 감동이 대단했습니다. 평소 이러한 친구들의 (Juan Atkins, Kevin Saunderson, Carl Craig 등등) 트랙들을 자주 플레잉 하시는 편이신가요?
왔다 갔다 해. 고전에만 너무 박혀있지는 않아 나는, 고전만 고집하는 것은 그닥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디스코에서 하우스까지 장르마다 다양한 선곡이 좋아. 친구들 음악도 플레잉 하긴 하는데, 내 친구들 곡은 이제 다 고전이 되었어....하하하! 나는 고전음악을 하는 아저씨로 기억되긴 싫거든! 그게 나한테는 좀 중요해.
Q. 플레이가 시작되고 30분 정도가 흐른 2시경부터 Bring Down The Walls가 플레이 되었을 시점에 분위기가 최고조로 올라가기 시작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Mr.G의 Gibe Thanx로 넘어가면서 까지 정말 무아지경의 시간이였습니다. 이날의 플레잉의 구성은 현장의 계신 팬분들의 반응에 대한 피드백으로 즉흥적인 셋의 구성이었습니까?
정확하게 봤네! 내가 말한 게 바로 이부분이야. 모든 트랙들은 관객들과의 교감이 유지됐거든. 정말 한국이 인상 깊었다니까. 나는 솔직히 한국에서 관객과의 교감을 많이 기대하지는 않았어! Bring Down The Walls도 내 속으로는 “아 몰라, 이거 틀 거야! 사람들 어떻게 되나 한번 던져 보자”라고 생각하고 올려놓는 순간 관객들이 다들 덥석 받아먹더라고. 완전 나와 하나가 된 그루브가 시작됐어. 그러다 내가 사운드시스템 볼륨을 낮추고 EQ를 높일 수가 있었는데, 그러니까, 약간 좀 깔끔하게 정돈을 해서 사운드시스템에 효과를 좀 줄 수 있었거든. 그렇게 긴장감 만들어 놓고 베이스가 딱! 나오니까 다들 미쳐가지고, 그래, 내가 다 봤다니까. 사람들 다 미치는걸! 와우!
Q. 이날의 많은 관객들은 당신의 그 유명한 전설적인 곡 Strings Of Life가 탄생되던 1987년 전후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또 이 사람들은 당신의 "High Tech Soul" 정신을 따르는 요새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당신을 너무나 느껴보고 싶어했던 관객들이었습니다. 당신의 음악적 크리에이티브가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 이러한 사실에 대한 느낌이 어떻습니까?
내가 느끼는 건 정말 엄청나다는 거지. 지구를 돌아서 중국, 한국, 베트남, 호주, 아프리카… 각지의 팬들을 가까이서 만날 수 있다는 건 정말 나에게 있어서 분에 넘치는 행복과 감사야. 게다가 처음 보는 사람들과 음악으로 교감하게 되고, 그런 교감이 뭔지도 몰랐던 시절에 그 모든 게 시작된 거잖아. 일부러 계획한 적도 없고. 내가 전세계에서 군림하려고 음악을 만든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음악을 만드는 이유가 여자들이나 만나려고 하는 건 아니거든. 그러니까 교감이라는 것은 굉장히 아름다운 경험이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가 없어. 지금 그 자리에 어떻게 해서 올라 왔는지, 어떻게 해서 지금과 같은 사람이 되었는지 말로는 설명을 못하잖아. 그건 종교가 있든 없든 거의 영적인 거거든. 그리고 나는 Strings Of Life 플레이 안 해. 다들 왜 안 하냐고 묻는데, 나 빼고 다들 플레이하니까. 하하! 난 라이브로만 하지.
Q. 사람들은 어떠한 주제를 분류하고 차별화하기를 좋아합니다. 물론 한국인들도 예외일 수는 없죠, 테크노라는 하나의 `정신`적인 문화적 행태를 다시금 구별하고 정의합니다. 디트로이트 테크노, 미니멀 테크노, 덥테크노, 베를린 테크노, 프렌치 테크노 등등으로 나눠 버리고선 각자 장르적 특성에 치우친 사람들이 누가 더 낫냐고 하면서 순위 메기기를 하곤 합니다. 또 변절자라고 손가락질 하기도 하고요. 테크노라는 문화의 방향이 이러한 것들을 반대하는 문화인데 말이죠. 테크노문화를 창조해낸 사람으로써 이러한 몇몇의 극단적 행동을 보이는 사람들의 행동에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테크노 문화를 즐기기 시작한 젊은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어떠한 태도라든지 마인드가 있나요?
항상 어딜가나, 이름이나 숫자를 붙이고 싶어 하는 애들이 꼭 있다니까. 그런 애들은 언제까지고 있을 거야. 하하! 이걸로 돈 벌고 싶어하는 작자들이 이걸 규격화하고 싶어 하지. 아주 초기에 우리가 이 음악을 만들고 있을 시절에는 저널리스트들이 하루 종일 물어댔어. “이게 이름이 뭐냐, 뭐라고 부르냐.” 우린 그게 왜 중요한지 이해가 안 됐지. 우리한텐 그냥 뭔가에 대한 음악이 디트로이트에서 왔고 테크노면 디트로이트 테크노였거든. 음악의 이름을 넘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음악의 심장, 도시였단 말이야. 디트로이트가 우리에게 중요했어! 그래서 우리한테는 이게 늘 그냥 "디트로이트 음악"이었어. 그때는 디트로이트 `테크노`가 있기도 전이었어. 근데 그걸로는 충분하지가 않았나봐? 저널리스트라는 작자들한테는 말이야. 그래서 Juan Atkins가 그냥 그걸 `테크노 뮤직`이라고 이름 붙여 주었어. 그게 되게 짜증나. 근데 이쪽 업계만이 아니라 우리가 하는 게 다 그렇지. 입는 거, 사는 거, 애들 키울 때도 다 마찬가지야. 다 규격화 하려고해. 딱지 붙이기 좋아하지!
Q. Derrick May에겐 생소할 수도 있겠지만, 당신의 친한 친구들인 Juan Atkins, Kevin Saunderson과 디트로이트에서 `테크노` 음악을 창조하여 세상에 알리고 있을때, 한국의 몇몇 뮤지션과 DJ들(달파란, 가재발같은..)도 당신들의 리듬과 사운드에 동참하여, 한국에도 꽤나 깊은 테크노 문화가 형성되었었습니다. 그런데 20세기말, 대형 미디어등을 통해 변질되면서 테크노 뮤직이 많이 쇠퇴하게 되었고, 한국에서는 이제서야 다시금 그 정신과 분위기를 젊은 프로듀서들이 재해석하여 만들어가는 중 입니다. 마치 당신들의 어린 시절처럼 말이죠. 이러한 움직임을 만들어가고 있는 프로듀서들에게 그들이 잃지 말아야 할 뮤지션으로서의 `정신`과 `영혼`에 짧은 조언 부탁 드립니다.
업계에서는 돈이 되겠다 싶으면 음악이 창조된 근원을 찾아서 우리와 함께 작업하는 게 아니라 그걸 대중을 위한 포괄적인 걸로 바꿔버리려고 해. 근데 그게 통하진 않았지. 지들이 뭘 하는지 모르니까. 왜냐면 음반업계가 무너졌고 그 힘 있던 쓰레기 같은 작자들이 이제 다 손을 뗐거든. 지금은 머저리 같은 인터넷 회사나 운영하고 있지 않겠어?
젊은 프로듀서들에게 해줄 조언은, 꽤 간단해. 그냥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 듣지 말라고. 자신에게 제대로 집중하고, 제대로 싸우라고. 다수를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 절대! 그들 중의 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믿지 마! 사람들이 비웃는다고 해서 너희가 이상한 병신이 되는 건 아니야. 그건 그냥 걔네가 너희를 이해 못한다는 뜻일 뿐이야. 걔네는 절대 못 가는 곳에 너희가 가고 있다는 뜻이고. 근데 그게 진짜 아름다운 거거든. 남들이 하는 얘기 왈가왈부? 그거 다 병신같은 소리야! 그냥 너 자신을 믿어! 어떤것을 만들던 행동하던 그게 바로 크리에이티브야!
Q.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에게 데릭메이가 당장 들어보라고 추천하는 곡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