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URES
테크노의 모든 것, A-Z
미래에 온 것을 환영한다
Marcus Barnes | 2018-10-14
80년대 중반, 디트로이트는 막대한 경기하락을 겪고 있었다. 이 시기 동안 ‘미국의 살인수도(murder capital of America)’라고 불릴 정도였다. 범죄와 가난이 만연했고 중산층의 대부분이 도시를 떠났으며 무계획적으로 도시확산된 지역들은 말 그대로 무너지고 있었다. 이런 삭막한 환경에서 태어난 것이 Juan Atkins와 그의 친구들이 그린 미래, 어쩌면 더 밝은 미래의 사운드트랙인 테크노음악이었다.

테크노음악은 초기 일렉트로의 영향을 받아 진화했다. Cybotron 같은 Atkins의 초기작은 `Planet Rock` 같은 선구적인 트랙들에 뿌리를 둔 Afrika 등 뚜렷한 미학에 초점을 맞췄다. 상징적인 라디오호스트 The Electrifying Mojo가 자신의 쇼를 통해 무수한 얼터너티브 음악을 선보이면서 Kraftwerk와 Depeche Mode 같은 아티스트들의 영향력 역시 Atkins의 아이디어와 합쳐져 테크노라는 결실이 맺히기 시작했다.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사운드는 이러한 초기 프로덕션에서는 찾아보기 힘들 때도 있지만 미래의 사운드트랙이라는 관념은 여러 테크노 프로듀서들의 작품에 내재되어 있다. 테크노는 80년대 말에 처음으로 존재하기 시작한 이래 몇 번의 기복을 겪어왔다. 현재 테크노는 일렉트로닉뮤직의 가장 대중적인 형태 중 하나다. 그 점에 비추어 Sven Väth, Nina Kraviz, Nicole Moudaber, Ben Klock, Richie Hawtin, Carl Craig, Marcel Dettmann 등 수많은 슈퍼스타를 배출한 이 음악의 역사를 A부터 Z까지 짚어보기로 했다.





A. Alvin Toffler
요즘 젊은 테크노세대들은 고개를 갸우뚱할 수 있는 이름인 Alvin Toffler는 선구적인 책 ≪미래의 충격≫의 저자다. 이 책은 80년대 디트로이트에 살던 젊은 Juan Atkins를 미래로 옮겨놓았고 테크노가 싹틀 수 있는 씨앗을 심어주었다. 공상과학을 향한 Juan의 애정으로부터 테크노의 기반을 닦은 통찰과 진보적인 이데올로기가 탄생했으며 Toffler의 책은 테크노음악의 형성기에 핵심적인 영감을 주는 원천이었다.

참고: ANUMBEROFNAMES, Anthony “Shake” Shakir, Aux88






B. Belleville Three
The Belleville Three는 학교친구 사이였던 Juan Atkins와 Derrick May, Kevin Saunderson을 일컫는 별명이었다. 이 트리오는 Juan의 주도 하에 신시사이저를 가지고 기술을 실험하며 최초의 테크노 음반들을 만들어냈다. 세 사람이 일렉트로닉사운드로 이것저것 시도하면서 만들어낸 것들이 오늘날 테크노의 청사진이 되었다. 세 사람은 각각 시대를 초월한 테크노 명곡들을 만들어내며 몇 세대에 걸쳐 전 세계에 영감을 주고 있다.

참고: Berlin, Basic Channel, Blake Baxter, Blueprint Records





C. Carl Craig
디트로이트 테크노 아티스트들의 ‘두 번째 물결’의 핵심멤버인 Carl Craig는 테크노뮤직을 구현하는 이상적이고 미래적인 정신의 전형이다. 그는 일렉트로닉사운드에 재즈부터 클래식까지 다양한 장르를 융합하며 경계를 확장함으로써 테크노의 진화에 힘썼다. 그는 최신 앨범 ‘Versus’를 통해 테크노를 어떻게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시키는지 완벽하게 보여주며 계속해서 음악적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참고: Carl Cox, Colin Dale, Cocoon, Charlotte De Witte







D. Detroit
그 모든 것이 시작된 발상지다. 경제적 환경과 음악적 영향력이 만나 테크노를 낳은 자동차의 도시다. The Electrifying Mojo가 다방면에 걸친 셀렉션을 플레이한 곳이며 Juan이 실험정신을 불태운 곳이며 자동차산업의 몰락이 실업을 낳고 그 모든 요소가 모여 새로운 형태의 음악이 나타나기 딱 맞는 환경을 만들어낸 곳이다.

참고: Depeche Mode, Derrick May, Drexciya, Dave Clarke, Deutsch Amerikanische Freundschaft






E. `Energy Flash`
‘Energy Flash’는 뉴욕의 전설 Joey Beltram의 중대한 트랙이다. 재미있게도 Joey는 이 끝장나는 컷을 제작했을 때 본인이 하우스뮤직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2001년에 Channel 4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Pump Up The Volume: The History Of House Music≫에서 이렇게 시인했다. “나는 내가 색다른 감각을 가진 하우스뮤직을 만들고 있는 줄 알았어.” Joey의 명작은 R&S Records와 계약을 맺어 유럽 전역에서 성공을 거두었고 그의 또 다른 히트작 ‘Mentasm’의 성공을 위한 터를 닦았다.

참고: Eddie ‘Flashin’ Folkes, Ellen Allien, ‘E2-E4’





F. Ford Motors
자동차공장의 자동화는 테크노와 관련된 반복적인 비트에 핵심적인 영향을 미친 요인으로 평가된다. 되풀이되는 비트는 로보틱하고 프로그래밍된 느낌의 테크노의 핵심이다. 디트로이트의 경기하락의 중심에 있었던 Ford Motors 역시 뭇 테크노 프로듀서들로 하여금 메마른 도시의 고난으로부터 벗어나 미래를 바라보고 더 나은 세상은 꿈꾸도록 하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참고: Funktion-One, fabric, Frankfurt





G. Good Life
Kevin Saunderson이 Inner City (싱어 Paris Grey와 함께)로 선보인, 시대를 초월하는 명곡 ‘Good Life’를 통해 테크노는 타 장르의 차트에까지 등극하게 되었다. ‘Good Life’는 ‘Big Fun’에 이어 그들의 앨범 ‘Paradise’에 수록되었다. 1989년에는 UK 차트 4위를 달성했으며 2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Saunderson은 Larry Levan이 틀었을 법한 디스코 명곡의 매력을 재현하려는 시도였다고 말한다.

참고: George Clinton, Giorgio Moroder, Gary Numan






H. Hoover
Joey Beltram이 ‘후버(hoover)’를 발표한 날, 세상에는 아비규환이 펼쳐졌다. 혹 모르는 사람들이 있을까 봐서 하는 말이지만 청소기 후버를 말하는 게 아니다. 후버는 일정한 간격을 둔 여러 개의 발진기를 음조절 및 다량의 코러스로 조져 만든 사운드다. 후버는 자유롭고 격정적이며 무엇보다도 엄청나게 빨라서 제대로만 사용하면 듣는 이를 회오리바람처럼 휘감아버릴 수 있다. Beltram이 하우스뮤직을 통렬하게 해석한 ‘Energy Flash’에 이어 ‘Mentasm’은 금상첨화가 되어 Beltram을 (비록 그의 선택은 아니었지만) 테크노 선구자의 새로운 물결의 전선에 올려놓았고 레이버들은 자신의 신조로 삼을만한 시그니처 사운드를 얻었다. ‘Mentasm’과 Human Resource의 ‘Dominator’ 둘 다 비슷한 후버 사운드를 사용했으며 둘 다 1991년에 발표되어 다수의 모방자들과 개버 같은 파생장르를 낳았다.

참고: Halle Am Berghain, Helena Hauff, Hardwax, Head High





I. Industrial
본래 테크노가 미래를 바라보는 시야는 우주적이었다. 그 사운드와 테마는 우주 혹은 머나 먼 행성에서의 삶을 그리는 듯했다. 하지만 산업(industry) 역시 그 사운드의 초기 영향력에 중심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였다. 이것을 Throbbing Gristle과 Cabaret Voltaire 같이 테크노의 냉혹하고 디스토피아적 요소에 집중한 영국 아티스트들이 차용했고 ‘인더스트리얼 테크노’라는 사운드로 진화시켰다. Surgeon 역시 인더스트리얼 스타일의 핵심 주역이며 특히 스코틀랜드의 실세 Perc는 자신의 프로덕션과 Perc Trax 레이블을 통해 이 사운드의 불씨를 유지하고 있다.

참고: Inner City






J. Jeff Mills
선견지명을 논할 때 Jeff Mills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테크노 아티스트는 많지 않다. 기술적 재능을 갖춘 이 천재는 자신만의 디제잉 스타일을 구축하고 ‘The Bells’ 등 명작들을 만들어냈을 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하나의 세계를 창조했다. 또한 장르의 한계를 넘어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 영화음악을 만들고, 전 세계에서 라이브공연을 하며 일렉트로닉뮤직을 보는 전통적인 관념을 깨뜨리고 자신의 음악적 프로세스에 진정 진화론적 정신을 주입하고 있다. 테크노 안팎으로 혁신을 탐구하는데 철저하게 헌신하는 입장을 고수한다.

참고: Joey Beltram, Jaydee





K. Kraftwerk
테크노의 대부다. 이 독일의 4인조가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일렉트로닉뮤직도 없었을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이 신시사이저 음악으로 장난치길 좋아하고 그들 자신의 ‘독일성’을 풍자하는데 몰두한 덕에 Juan Atkins를 비롯해 디트로이트의 많은 이들이 지대한 영향을 받은 프로젝트가 태어날 수 있었다. Kraftwerk가 James Brown을 일렉트로닉하게 해석한 것이 모터시티 디트로이트에서 먹혔고, Kraftwerk로부터 영감을 얻은 디트로이트의 음반들은 다시 유럽에서 먹혔다.

참고: Kompakt Records, Knights Of The Jaguar, KMS Records





L. Lost
1991년 런던, Steve Bicknell과 그의 파트너 Sheree는 획기적인 테크노나이트 Lost를 시작했다. 테크노를 사랑하고 테크노에 헌신한 그들은 Richie Hawtin과 Jeff Mills 등 기라성 같은 아티스트들과의 평생 가는 관계성을 쌓았다. 그들은 Basic Channel로 하여금 그들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라이브 퍼포먼스를 하게 했고 제대로 된 런던 테크노 ‘씬’을 일으켰다. Lost 전까지는 씬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던 것이다. Lost 파티는 테크노 러버들을 위한 온상이 되었고, 그 영향력은 오늘날에까지 미치고 있다.

참고: Love Parade, Legowelt, LFO






M. Metroplex
Alvin Toffler의 책에서 영향을 받은 Metroplex Records(Toffler가 만들어낸 미래어 ‘metrocomplex’에서 이름을 땀)는 Cybotron에서 Model 500으로 갈아타는 Juan Atkins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졌다. 첫 릴리즈는 1985년의 ‘No UFOs’였고 ‘Night Drive’가 그 뒤를 이었다. Metroplex는 처음 탄생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모든 것의 최초라는 타이틀을 유지하며 30년 동안 가장 영향력 있는 테크노 레이블의 역할을 감당해오고 있다.

참고: Maurizio, Model500, Monika Kruse, Music Institute, Mad Mike Banks, Movement Festival, Mathew Jonson





N. Neil Rushton
보통 노던소울 운동과 관련 지어질 때가 더 많은 Neil Rushton의 유산에는 영국의 일렉트로닉뮤직 팬들에게 디트로이트의 사운드를 소개하는데 앞장 선 컴필레이션 ‘Techno! The New Dance Sound of Detroit’가 있다. 당시로서는 결정적이었던 이 컴필레이션은 생각만큼 대중적인 인기를 끌지는 않았을지 몰라도 거의 종교에 가까운 명작이다. 결정적이라는 수식의 끝을 달리는 Juan의 ‘Techno Music’도 수록되었으며 Blake Baxter, Anthony ‘Shake’ Shakir, Kevin Saunderson, Eddie ‘Flashin’ Fowkes 역시 피처링에 참여했다.

참고 : Nicole Moudaber, New Order, No UFOs, Nude Photo





O. Omen
유럽은 테크노가 진정 꽃을 피운 곳이다. 테크노가 미국에 처음 등장했을 때는 사람들의 응원도, 이해도 얻지 못했지만 유럽인들은 훨씬 더 빠르게 테크노를 ‘터득’했다. 프랑크푸르트의 클럽 Omen은 테크노 광들을 위한 허브가 되었다. 1988년부터 1998년까지 10년간 운영되는 동안 Sven Väth의 커리어의 기폭제가 되었고 독일의 테크노씬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려놓는 촉매제가 되었다.

참고: Ostgut Ton, Omar S, Opal Tapes, Octave One





P. Plus 8
Richie Hawtin과 John Acquaviva의 레코드 레이블 Plus 8은 1990년대 테크노의 중요한 배출구 역할을 했다고 인정받는다. 테크노 본연의 정신에 충실한 Plus 8의 중심에는 혁신과 이상적인 관점이 있었다. Daniel Bell, Kenny Larkin, Ken Ishii, Speedy J 등 인정 받는 테크노 거물 다수가 Plus 8을 통해 데뷔작을 발표했다. Plus 8은 새로운 세대의 사운드를 형성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테크노 미학에 좀 더 미니멀하게 접근하는 Hawtin의 레이블 M-nus도 Plus 8에서부터 시작했다.

참고: Plastikman, Peacefrog, Planet E






Q. Quenum
영향력 있는 테크노 인사 Quenum의 길고도 화려한 경력 중에는 Luciano와 함께 세운 Cadenza (와 Cadenza 레이블의 첫 발매작 ‘Orange Mistake’의 제작)가 있다. 이색적인 과거로 테크노씬에서 가장 흥미로운 캐릭터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Quenum은 아프리카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브레이크댄스와 힙합을 사랑한데다가 런던과 제네바에서 지내면서 음악에 눈을 떴다. 그는 트라이벌 느낌의 테크노 시리즈로 90년대 말에 테크노씬에 한 획을 그은 듀오 Access 58의 멤버이기도 했다.

참고: Quantec, DJ Qu






R. Richie Hawtin
Plus 8, M-nus Records, 요즘에는 ENTER.의 수장을 맡고 있는 Richie Hawtin은 테크노음악과 기술을 새로운 영역으로 꾸준히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다. 디트로이트와는 호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캐나다 윈저(Windsor)에서 살고 있는 Richie는 테크노 선조들과도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었으면서도 테크노에서 가장 인정 받으며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본인만의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는 20년 이상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으며 테크노뮤직 및 그의 뒤를 잇는 세대들에게 변함없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참고: Rhythim Is Rhythim, R&S, Rephlex





S. Slam
스코틀랜드의 유명한 듀오로, 그들의 고향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도 동일한 사랑을 받고 있는 테크노의 제왕이다. Stuart McMillan과 Orde Meikle은 글래스고에서 ‘얼터너티브’ 음악에 대한 애정으로 뭉쳤다. 레게, 초기 일렉트로닉, 펑크 등 반항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 가리지 않고 몰두했다. 그들은 함께 디제잉을 시작했고 이내 그들만의 나잇파티 Black Market에서 비슷한 취향을 가진 파티피플들을 대상으로 그들이 좋아하는 모든 음악을 틀었다. 그때부터 그들은 성공가도를 달리며 승승장구했다. ‘Positive Education’의 발매로 스코틀랜드의 테크노 제왕이라는 입지를 굳혔으며 그 명색은 25년 동안 조금도 바래지 않았다.

참고: Sharivari, Surgeon, Stacey Pullen, Steve Rachmad







T. The Electrifying Mojo
The Electrifying Mojo aka Charles Johnson이 없었으면 테크노도 없었을 것이다. 디트로이트의 WJLB (후에 WHYT로 변경) 라디오호스트였던 그는 탁월한 선곡능력으로 유명했으며 The Belleville Three, Carl Craig를 비롯한 디트로이트의 혁신적인 아티스트들과 대중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레퍼토리는 Parliament Funkadelic부터 Prince, Depeche Mode까지 다양했다. The Electrifying Mojo의 이름으로 수많은 업적을 쌓았는데 그 중에서도 디트로이트 라디오에 Prince와 Kraftwerk를 소개한 것으로 널리 인정받는다. 또한 Juan Atkins의 초기 테크노 녹음작업을 도와 그 사운드를 디트로이트 대중에게 전파하는데 일조했다.

참고: Tresor, The Scene, Transmat, Tangerine Dream





U. Underground Resistance
Jeff Mills, Robert Hood, ‘Mad’ Mike Banks가 Underground Resistance라는 동맹집단을 결성하면서 테크노는 전투적인 색깔을 갖기 시작했다. 함께일 때 세 사람은 겁 없었고, 원색적이었으며, 타협하지 않았다. 그들은 검은 마스크를 쓰고 공연했으며 그들 자신을 음악운동가라고 소개했다. UR은 하층계급, 특히 흑인들을 무력하게 만드는 정치경제적 환경에 대한 항의정신을 대표했다. UR은 90년대 초에 만연했던 테크노 상업화에 반대하며 메이저 레이블들로부터의 자립을 선동하기도 했다. 그들의 테크노뮤직은 이러한 하드코어 정신을 반영했으며 넌센스는 용납하지 않는 정치적인 동기의 테크노를 선보였다.





V. Vamp
벨기에의 선구자 Marcos Salon 일명 Outlander와 R&S 레이블의 또 다른 합작이다. 일렉트로닉뮤직에 대한 그의 실험정신과 New Beat는 레이브와 브레이크비트, 테크노에 걸친 막강한 야수를 탄생시켰다. Vamp는 1991년에 처음 나왔을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영향력을 과시하는 강력한 컷이다. 1991년은 ‘Energy Flash’와 ‘Dominator’ 역시 전세계의 댄스플로어를 평정하는 등 테크노에 있어 그야말로 의미 있는 한 해였다.

참고: Void Acoustics, Voices From The Lake, Virginia, vacant warehouses





W. Westbam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Westbam은 1991년에 베를린에서 최초의 Mayday 레이브를 시작한 장본인이다. 당시 독일에서 가장 큰 테크노파티라는 평가를 받은 Mayday는 5천 명 이상의 관중을 동원했으며 베를린에서 30년 넘게 건재하며 굴러갔다. 독일의 테크노와 일렉트로닉뮤직, DJ문화에서 빠질 수 없는 Westbam은 디제잉 관련해서 두 권의 책을 쓰기도 하며 다음 세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참고: Warp records, The Wizard





X. Aphex Twin
영국인 프로듀서 Richard David James는 완전히 새로운 각도에서 테크노세계에 발을 들이고는 테크노씬의 모든 것을 통째로 뒤엎어버렸다. 그는 실험적이고 이질적인 접근방식으로 테크노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그는 사운드디자인 측면에서 테크노의 지경을 넓혔으며 단 하나의 특정 스타일에 얽매이길 거부했다. 편안한 앰비언트에서 살 떨리는 인더스트리얼까지 그만의 색깔을 유지하는 그의 막대한 백카탈로그의 바탕에는 특이하고 혁신적인 프로모션기법이 있다.

참고: X-Stacy





Y. Yellow Magic Orchestra
Yellow Magic Orchestra는 Juan과 디트로이트 크루보다 몇 년 앞선 일본그룹이다. 일찌감치 테크노의 DNA를 가진 일렉트로니카에 진출했는데 그 영향력이 Kraftwerk만큼 명백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테크노의 탄생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The Electrifying Mojo가 YMO의 곡을 틀었으며 Carl Craig 역시 ‘Kings Of Techno’ 컴필레이션에 그들의 곡을 수록했다. 멤버 류이치 사카모토의 1980년 LP ‘B-2 Unit’의 ‘Riots In Lagos’는 또 다른 테크노 선조다.

참고: Yamaha DX7, Yoyo Paris





Z. ZTT
Trevor Horn과 그의 아내이자 사업가인 Jill Sinclair, 저널리스트 Paul Morley 소유로 1983년에 세워진 레이블 ZTT는 ‘Relax’로 대박을 친 Frankie Goes To Hollywood와의 계약으로 영국음악의 토대를 마련했다. 테크노와의 관련성이라면 808 State와 계약하고 영국 일렉트로닉뮤직의 초기 개척자들을 지원했으며 1991년에는 Derrick May와 흥미로운 상황을 연출했다. May가 친구들인 Juan Atkins, Kevin Saunderson과 함께 Intelex라는 테크노 수퍼그룹을 결성하고 싶어 했는데 ZTT가 그걸 덥석 문 것이다. ZTT는 Intelex를 디트로이트판 Pet Shop Boys로 내세웠지만 결국 계약은 성사되지 않았고 Intelex 프로젝트는 무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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